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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반전이 있는 영화 <장수상회>
김성훈 2015-04-08

강제규 감독의 전작 중에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1996)는 전생의 사랑을 SF로 풀어낸 이야기였으며, <쉬리>(1999)는 서로에게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첩보 액션물로 그린 작품이었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2004)까지 잇따라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며 흥행 신기록 제조기라 불렸던 그가 <마이웨이>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영화가 <장수상회>라는 로맨스 드라마인 건 다소 낯설다(물론 <장수상회> 직전에 찍은 단편 <민우씨 오는 날> 역시 드라마 장르이긴 하다).

장수상회라는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성칠(박근형)은 깐깐한 남자다. 진열된 상품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다시 정리해야 성이 풀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조금이라도 보이면 버럭 소리부터 내지른다. 마을 재개발추진위원장 장수(조진웅)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재개발을 반대하고 있는 성칠을 설득하기 위해 미인계를 계획한다. 성칠 앞에 앞집 여자 금님(윤여정)이 나타난다. 성칠 몰래 집에 들어가 밥반찬을 해놓고 나오는가 하면, 그런 자신을 도둑으로 몬 성칠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밥이나 사라고 말하는, 우렁각시 같은 금님이다. 까칠한 남자 성칠과 이름만큼이나 심성이 곱디고운 여자 금님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전개된다. 성칠과 금님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한축이고, 마을 사람들이 재개발을 반대하는 성칠을 설득하는 게 또 다른 축이다. 성칠과 금님이 가까워질수록 형성되는 사랑의 감정과 이들의 관계에 언젠가 균열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복잡 미묘하게 교차된다. 감독은 인물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세 번째 축이자 이야기의 반전인 영화 후반부에 감동을 터트린다. 강제규 감독의 전작에 비해 이야기의 호흡이 꽤 느린데도 집중할 수 있는 건 이야기의 강력한 반전 때문이다. 반전을 눈치채지 못하게 이야기를 노련하게 끌고 갈 수 있었던 건 성칠과 금님을 연기한 박근형과 윤여정 덕분이다. 장수 역을 맡은 조진웅을 포함해 한지민, 황우슬혜, 문가영, 엑소의 찬열 등 조연진 또한 두 주인공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그런 점에서 <장수상회>는 새로운 시도를 하진 않지만, 가족영화로서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영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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