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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 cross]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원칙”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중인 셰프 최현석

스타 셰프는 많았지만 ‘허세’ 셰프는 처음이다. “뼛속 깊이 혈액까지 셰프인 셰프”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내 요리가 맛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가 바로 셰프 최현석이다. 그는 요즘 올’리브의 <올리브쇼 2015>,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종횡무진 활동 중이다. 언제 어디에서 봐도 요리에 관해서라면 그의 자신감은 최고다. 실속 없이 기세만 등등한 건 절대 아니다. 간장으로 젤리를 만들고, 레몬으로 면발을 뽑아내는 등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남들이 해보이지 않은 창작 요리 수백 가지를 척척 선보여왔다. 오죽하면 ‘크레이지’ 셰프라는 닉네임까지 붙었을까. 입맛 까다로운 미식가들과 내로라하는 동료 셰프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허세기 가득한 입담과 재미난 퍼포먼스로 멋들어지게 요리하는 스타 셰프 최현석을 만났다. 요리 철학 역시도 똑 부러졌다.

-섭외를 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셰프의 스케줄 담당자가 받더라.

=나는 연예인이 아니고 요리사다. 그러니 내게 매니저가 있지는 않다. 내가 총괄 셰프로 있는 레스토랑의 마케팅 팀장님이다. 회사의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내 스케줄까지 관리해준다. 내가 셰프 업무를 하며 방송, 광고, 인터뷰까지 일일이 다 챙길 수가 없더라.

-방금 전에도 인터뷰를 하는 것 같던데. 오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신사점 식당으로 출근해 손님을 챙겨드리고 레스토랑과 관련된 미팅을 하나 했다. 이태원점으로 넘어와 인터뷰 하나를 마치고 지금 두 번째 인터뷰 중이다. 저녁에는 VIP 고객이 오신다고 해서 준비해야 한다. 이후 미팅이 하나 더 있고 영업을 마무리한다. 그러면 끝이냐. <케이윌의 대단한 라디오>의 게스트라 방송국에 가야 한다. 이 정도 스케줄은 약과다.

-지난해부터 올’리브 <올리브쇼 2014>,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올’리브 <한식대첩 시즌2> 등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셰프 최현석의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총괄 셰프로서 레스토랑 홍보에 신경을 쓰다보니 방송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올’리브의 <크레이지 마켓>에 출연한 게 인연이 돼 <올리브쇼 2014>에 출연하게 됐다. 처음 방송을 한 건 2007년 SBS 추석특집 <요리 왕중왕>이었다. 그때 2위를 했는데 뭔가 특이한 요리를 하는 셰프로 알려지면서 섭외가 들어왔다. <셰프 최현석의 크레이지 타임>도 그렇게 하게 됐다. 남들이 안 하는 요리를 하는 데다 내가 좀 웃겼나보다. 반응이 좋아서 시즌2까지 만들었다.

-요리 시작 전 앞치마를 격하게 턴다든가 손을 높이 치켜들고 양념을 뿌리는 등 허세기 가득한 액션이 인상적이다.

=앞치마를 그렇게 매는 건 요리를 잘해보자는 다짐과 다른 셰프들과 나는 다르다는 의미가 있다. 또 퍼포먼스는 이왕 하는 방송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다. 내가 개그 욕심이 있기도 하고. (웃음)

-‘허세 셰프’, ‘크레이지 셰프’라는 별명이 마음에 드나.

=‘허세’는 방송 활동으로 얻은 이미지를 반영한 말이니까 방송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사라질 거다. 하지만 ‘크레이지 셰프’라는 말은 정말 마음에 든다. 닉네임을 갖고 있는 셰프가 몇명이나 되겠나. 게다가 미친 요리사라니. 그만큼 내가 요리에 미쳐 있다는 뜻 아닌가. 열정보다도 훨씬 더 센 의미다. 이왕 할 거면 미친듯이 해야지. ‘크레이지’는 내 요리의 지향과도 연결된다.

-그 지향이라는 게 ‘남들이 안 하는 요리’를 통해 최현석만의 정체성을 선보이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지금까지 900여 가지의 창작 요리를 만들어온 것도 그렇고.

=일단은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그 후에는 이런저런 시도를 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신메뉴를 개발한다고 하면 머릿속에 그림이 딱딱 그려졌다. 그땐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스승님 밑에서 10여년간 배운 게 바탕이 돼 그걸 응용하는 것이더라. 그 뒤로는 책 보고 꾸준히 연구한다. 분자요리(음식의 질감, 식재료의 조직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맛을 개발한다)에 흥미를 느껴 많은 걸 해봤고 식재료들끼리 궁합이 맞는지 연구하길 좋아한다.

-특별히 자주 쓰거나 좋아하는 식재료가 있나.

=꽂히는 게 계속 바뀐다. 요즘은 장미. 바닷가재에 젤리, 크림, 캐비어 그리고 장미 소스를 곁들이면 꽤 잘 어울린다. 왠지 요리에 장미가 들어갔다고 하면 로맨틱하잖나. 빛깔도 향도 멋지다.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공부는 잘 못했고 잡기에는 능했다. 그림 그리고 운동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군 제대하고 밥벌이를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때 주변에서 ‘요리를 한번 해봐라’라고 권했다. 식구들이 다 요리사다. 아버지는 호텔 총괄 셰프셨고 어머니는 한식당을 하셨다. 형도 호텔 요리사고. 그렇게 나도 요리를 시작했고 20년째 해오고 있다.

-요리사라는 직업에 친숙해질 수밖에 없는 성장 환경이었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아버지가 일하는 호텔 주방에 가서 놀곤 했다. 주방에서 일하는 형들이 스테이크를 구워주면 바닥에 우유 박스를 깔고 앉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큰 호텔 주방이 내겐 익숙한 공간이었다. 그래도 내가 요리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요리를 가르쳐준 스승님은 어떤 분이었나.

=엄격한 원칙주의자다. 생각해보면 스승님으로부터 단 한번도 ‘이것과 이것을 섞으면 이런 맛이 난다’는 식의 배움을 받진 않았다. 대신 ‘먹는 것 갖고 속이는 놈이 제일 나쁜 놈이다’, ‘믹싱볼에 묻은 물기만이라도 제대로 닦으면 음식 맛이 달라진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물 한 방울이라도 아껴 쓰면 그게 다 네 주머니에 들어간다’와 같은 말씀을 무수히 하셨다. 식재료를 함부로 버리는 것도 되게 싫어하시고. 스승님 덕에 내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제대로 배웠다.

-지금까지 요리를 해오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방송으로 뜨기 전이었다. 엄마랑 같이 내 식당에 오던 아이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셰프 최현석의 크레이지 타임>의 팬이더라. 근데 몸이 좀 아파 보였다. 대놓고 잘해주면 그 친구 마음이 불편할까봐 슬쩍 아이스크림도 갖다주곤 했다. 아이의 어머니 말씀으로는 아이가 항암치료를 받느라 집에서는 밥을 잘 못 먹는데 여기만 오면 음식을 잘 먹는다고 하시더라. 또 한분은 일주일에 일곱, 여덟번, 하루에도 두번씩 식당을 방문하던 분이다. 오실 때마다 내가 새로운 요리를 해드렸다. ‘새로운 거 그만해도 된다’고 하셔서 되레 승부욕이 생기더라. 그렇게 몇년을 했더니 새로 개발된 메뉴가 500, 600개가 됐다.

-요리 외에도 관심 분야가 다양하다. 기타 연주, 그림 그리기뿐 아니라 블로그를 보니 대단한 피겨 수집가던데.

=어렸을 때부터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지금 갖고 있는 기타 두대에 <에반게리온>의 아스카와 레이의 이름을 붙여줬다. (웃음) 미대에 진학할까 생각했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도 즐겼다. 프라 모델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 때문에 모으게 됐다. 어렸을 때 집이 넉넉하진 못했는데 15살 생일날 아버지께서 철인 사오정 장난감을 사오셨다. 내 인생 첫 사치품이었다. 아무리 어려도 그게 내게 사치라는 건 안다. 그래도 너무 좋더라.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난감도 망가지고. 그때의 추억이 그리워 모아봤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초합금 세트도 있다. 내가 오덕이다, 오덕.

-애니메이션 덕후인 걸로 알고 있다.

=정말 좋아한다. 디즈니, 픽사, 지브리 등 스튜디오별로 정리해서 가족과 같이 보기도 하고.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2013)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변태스러울’ 정도로 그림의 디테일을 살려냈더라.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도 보면 안다. 그가 얼마나 디테일에 집착하는지를. 내가 덕후 기질이 있다 보니 그런 사소한 것에 힘쓰는 게 다 보인다.

-요즘 TV에 정말 많은 남성 셰프들이 출연한다. 요리하는 남자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훈남’ 셰프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그들이 멋있는 건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직업이 멋있는 이유는 뭘까.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먹는 것만큼 필수적인 게 없다. 요리사는 그 기본 욕구를 해결해준다. 게다가 굉장히 만족도 높은 플레이팅으로 먹음직스럽게 만들어낸다. 그러니 멋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셰프로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싶다면 방송을 더 하려고 하기보다는 요리를 더 파야 한다. 내가 요리사라는 이름을 달고 일을 하는 한 나의 요리 개발은 계속될 거다. 인터뷰 끝나면 빨리 가서 다음달 메뉴부터 확정지어야 한다.

-셰프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뭔가.

=기존에 운영하던 캐주얼 레스토랑을 정리했고 새로 열 계획이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 컨셉으로 문을 열어 더 많은 분들에게 내 요리를 맛보이고 싶다. 언젠가 해외에도 레스토랑을 낸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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