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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학과는 학생들의 정체성이다
이예지 사진 오계옥 2015-04-16

건국대학교 영화과 비상대책위원회 김승주 위원장

건국대학교 영화과가 통폐합 위기를 맞았다. 영화학과와 영상학과를 통합하겠다는 학교쪽 발표에 학생들은 행정관을 점거하고 탄원서를 제출하며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건국대학교 학생 고경표, 이종석, 샤이니 민호, 걸스데이 혜리를 비롯하여 김태우, 이주승, 김유정, 김조광수 감독 등 영화인들이 ‘건국대학교 영화과를 살려주세요’ 피켓을 들고 동참 행렬에 나섰다. 학교의 통폐합 발표 직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결성해 활발하게 반대 운동을 개진 중인 영화과 10학번 김승주 비대위원장을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에서 만났다. 아름다워야 할 봄날의 캠퍼스는 여기저기 붙은 대자보와 입학하자마자 통폐합 통보를 받은 신입생들로 어수선한 광경이었다.

-학과 통폐합 발표에 영화과는 비대위를 결성하고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통폐합을 저지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진행 중인가.

=1인 시위부터 릴레이 단식, 행정관 점거 시위를 했고 해시태그를 이용한 SNS 시위도 진행하고 있다. 고경표 같은 경우는 학과에 대한 애착이 큰 선배라 먼저 1인 시위에 나서 첫 이슈화를 시켜주었다. 건국대 출신이거나 재학 중인 배우들뿐 아니라 수많은 영화인들과 일반인들도 동참해 응원과 지지의 뜻을 보내주고 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프랑스에서 지지표명을 해온 분도 있더라. 총학생회 차원에서는 대규모 학생총회 및 총장실에 통폐합안을 철회하고 학사개편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것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다. 대학구조조정 정책에 의해 건국대뿐 아니라 타 대학 예술대학도 위기에 처했다. 청주대 연극영화과는 총장이 사퇴할 때까지 싸웠고, 서일대 연극과는 폐과에 저항해서 살아남았다. 앞으로 타 예술대학들과 연대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 것이다. 현재 건국대를 비롯해 홍익대, 서울대, 국민대, 숙명여대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예술대학 비상대책위원회는 4월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출범할 예정이다.

-학교쪽에서는 학과명만 변경할 뿐 기존과 동일하게 커리큘럼을 확충하여 운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영화학과와 영상학과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영상과와 영화과는 태생부터 다른 과다. 영상과는 영상미술을 공부하는 과로 미대 입시를 준비해서 들어온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영화과는 연기전공은 연기 실기, 연출은 글쓰기나 비실기 전형을 통해 들어온 학생들이고. 너무 다른 과이기 때문에 전과도 불가능하게 만들어놓았는데, 이제 와서 합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학과는 학생들의 정체성인데, 손쉽게 그 정체성을 바꾸려고 하는 학교의 발상에 많은 학생들이 분노하고 있다. 학교쪽 주장은 추상적인 계획에 불과하다. 학점을 이수하여 졸업하기 위해서 다른 트랙의 수업을 듣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영상과 학생들이 연기수업을 들어야 하는 촌극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통폐합안을 따르면 정원의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지적한 바 있다.

=통폐합을 강행하면 정원이 16명 정도 줄게 된다. 영화과는 연출전공 한명이 한 학기에 한 작품씩 워크숍을 한다. 지금도 스탭을 꾸리는 게 쉽지 않은데 정원이 줄면 팀 작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또한 예술디자인대학에 칼날이 들어온 이상 다른 단과대의 정원도 축소해나갈지 모를 일이다.

-이번 사태는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에 의해 강행된 것인가.

=맞다. 대학구조조정 정책은 대학들을 줄 세워 B등급부터 인원과 학과를 줄이게 한다. 등급이 낮은 학교일수록 재정 지원을 못 받는다. 그 피해는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구조조정의 목적은 산업 수요 중심의 인재양성이다. 예술계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잉이라는 건데, 그럼 수요를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정책은 사회 전체의 문제를 대학에 돌리는 것이다. 대학이 취업학원은 아니지 않나. 근본적인 문제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인데. 정량적 평가 기준에 따르면 예술대학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재정 지원 사업을 따올 수 있는 학과의 정원을 늘리고 예술대학의 학과를 통폐합해 정원을 줄이는 것이다.

-지난 4월2일 열린 총학생총회에 참석한 2345명 중 2074명의 압도적 수가 통폐합에 반대했다. 이에 건국대는 변경된 학과 명칭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학생 참여 소통기구도 신설키로 했다는 입장을 3일 발표했다. 비대위를 비롯한 학생들의 입장은 어떤가.

=총장실에서 답변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갈등이 봉합됐다고 보도자료를 냈더라.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된 바도 없을뿐더러 소통기구도 총장 면담에서 만들겠다는 두루뭉술한 대답이었고 공식적인 문서나 답변은 없었다. 이 보도자료에 대한 공식 사과문을 홍보실에서 받았다. 총장실에서는 지난 6일 공식 답변이 왔는데, 원안을 고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학생들은 끝까지 반대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비대위원장이기 이전에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지금의 사태에 대한 심경은 어떤가.

=영화과에 대한 애정이 큰 학생 중 한명으로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더라. 영화과는 팀 작업을 많이 해서 유대감이 강하고 단합이 잘된다. 학교쪽에선 이렇게까지 영화과가 단합해서 들고일어날 줄 예상치 못했을 거다. 이런 영화과의 정체성이 통째로 없어진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대학의 연극영화과가 많다고 해서 학교마다 똑같은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다. 건국대 영화과에서만 배울 수 있고 이곳에서만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있는 거다. 이런 식의 통폐합은 예술의 다양성과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학교쪽에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통폐합안을 철회하는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학사개편을 학생들과 논의해서 결정하자는 거다. 학교쪽은 이 모든 과정을 공청회나 설명회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왜 학교 행정에서 학생들이 배제되어야 하나. 학생들도 학교의 주체다. 교육부 구조조정 방침에도 학생에게 사전 공지해서 의견 수렴하는 시간을 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사태와 관련해 영화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영화산업 전반에서 다양성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사라져가고 있다. 얼마 전 새로 발표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 좌석점유율 지원 사업만 봐도 그렇다. 결국 지원 대상에 선정되지 못한 영화들은 상영 기회마저 제한하겠다는 것 아닌가. 상업적인 영화도 있지만 지원 사업이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와 예술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안 보고 돈이 안 된다 해서 그런 영화가 없어져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이 사회에 만연한 경쟁논리에 의하면 그런 예술은 경쟁력이 없으니 사라져야 한다. 대학구조조정 정책에 따른 건국대 영화과 통폐합과 같은 문제가 영화산업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맞서야 한다. 나는 불과 지지난주만 해도 수업을 듣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목소리를 내니 이슈화가 되기 시작했다. 영화계의 많은 사람들이 영화예술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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