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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명가의 재건을 넘어 강한 제작사로 거듭나려 한다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15-04-16

싸이더스 픽쳐스 이한대 대표

여기저기서 제작자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한국영화 제작사 중 10년을 버틴 영화사조차 그리 많지 않은 걸 보면 영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닌 듯하다. 그 와중에 1995년 우노필름으로 시작해 20년을 버텨온 싸이더스 픽쳐스의 존재는 그 세월만으로도 눈에 띈다. 투자배급으로 전환하며 여러 부침을 겪었지만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싸이더스는 왕년의 제작 명가로 거듭나기 위해 새로운 행보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그 선두에 2012년 34살의 젊은 나이에 싸이더스 픽쳐스의 대표이사로 발탁되며 화제를 모았던 이한대 대표가 서 있다. 지난 20년이 앞으로의 20년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그의 비전과 전망을 들어봤다.

-사무실이 넓고 시원하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고 들었다.

=좀더 적합한 환경을 찾아서 옮겼다. 요즘엔 협업이 늘어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왔다. 회의실도 더 늘리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사실도 마련했다. 마음껏 영화 보면서 일하고 싶은 의욕을 자극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다른 건 몰라도 영화 보는 거랑 먹는 건 아끼지 않는다. (웃음)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국내에서 이 정도로 오래 생존한 제작사도 드물다.

=알다시피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 대표도 여러 차례 바뀌었고 단절의 시기도 있었다. 차승재, 김미희 대표가 이끌던 시기에는 웰메이드 상업영화를 만드는 제작 명가로 이름을 알렸고 KT가 투자한 이후 투자배급사로 전환하며 제작사업이 위축된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세 번째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제작에 집중하는 프로덕션으로 돌아가기 위해 심기일전 중이다. 명가의 재건을 넘어 위축된 제작환경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강한 제작사로 거듭나려 한다.

-싸이더스는 한국영화의 맥락과 함께해온 상징성이 있다. 제작사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시점에 명가의 재건을 기치로 내걸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크고 작은 문제가 있지만 당면한 업계의 문제는 중간이 없다는 거다. 투자환경도 빈익빈 부익부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참신한 신인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막상 영화가 잘돼도 제작사들이 워낙 파편화되어 있어 재투자도 원활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결국 제작사도 제작대행에 머무는 고용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거시적으로는 젊음과 다양성에 투자되고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거꾸로 말해 재능 있는 신인들이 기회를 얻고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도록 받쳐주는 게 제작사의 역할이고, 가능하다면 우리가 그런 버팀목 중 하나가 되고 싶다.

-2012년 대기업 직원에서 그룹 계열사 CEO로 전격 발탁되며 화제가 됐다. 부담도 적지 않았을 텐데.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를 향한 의지가 있었기에 기회가 생긴 거라 생각한다. KT에 있을 때 싸이더스에 대한 내부 시선은 적자투성이의 혹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그게 혹이 아니라 보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해온 사람 중 하나다. 자연스럽게 조금씩 관련 업무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고 결국 싸이더스를 책임질 자리까지 왔다. 사실 목표를 위해 10년 이상 버텨온 사람들이 적지 않은 곳이 영화계다. 그분들 모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의지를 가지면 이루어진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

-현재 제작 라인업을 살펴보니 질적, 양적으로 충실하다. 언제 이렇게 많은 프로젝트를 발굴했나.

=물론 두세달 만에 라인업을 뚝딱 만들 수는 없다. 모든 프로젝트가 누군가의 오랜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것들이다. 그동안 축적된 수십개의 프로젝트 중 경쟁력 있는 것들을 발굴하고 선별해서 8편을 꼽았고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우선 <타짜>는 3, 4부를 지속적으로 시리즈화할 계획이다. 리부트하는 작품으로는 <화산고-Zero>가 있다. 몇 부작으로 갈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스페인영화를 리메이크하는 <더 바디>는 젊은 신인감독과 함께 준비 중이다.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사극 장르물 <흐트러지다>도 있고 멜로 장르로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와 <너무, 일찍 눈사람>(가제)이 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멜로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시리즈물, 공포, 액션, 멜로, 사극까지 다양하게 준비 중이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추가할 예정이다.

-미처 빛을 보지 못한 프로젝트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제작 명가였던 싸이더스의 저력이라고 봐도 될까.

=싸이더스의 저력이라면 20년을 버텨온 브랜드, 그동안 제작했던 71편의 영화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아온 인맥이다. 수많은 명감독과 배우, 제작자를 배출한 회사이고 그 인연들이 아직 남아 있다고 믿는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회사를 구하려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의지들이 면면히 이어져 지금껏 싸이더스가 생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20주년을 기념하는 순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어 영광이다. 어깨가 무겁지만 향후 20년을 더 이어가기 위한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싸이더스가 추구하는 정신은 변함이 없다.

-8편의 라인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몇 가지 전략이 엿보인다.

=지금처럼 제작사가 위축된 환경에서 이를 타개할 방법은 협업이라고 본다. 지금 한국영화는 제작사들이 파편화되어 있어 힘이 실리지 않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 투자배급사는 완전히 완성된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완성된 패키지를 검토하는 게 투자사의 몫이라면 우리는 그 전 단계에서 조금은 부족해 보일지라도 가능성 위주로 검토하고 프로젝트가 성사될 수 있게 백업하려 한다. 좋은 시나리오들의 지원군이 되어주고 젊고 새로운 인력들의 파트너가 되어 프로젝트를 숙성시키려 한다. 가능성을 믿고 투자하는 강한 제작사가 목표다.

-<타짜>를 시리즈로 안착시켰고 애니메이션 <넛잡: 땅콩 도둑들>의 국내 배급도 맡았다.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고 다양한 경험치를 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배운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매 프로젝트가 생존이 걸린 전투다. <넛잡: 땅콩 도둑들>도 성공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치열하게 작업했다. <타짜-신의 손>도 마찬가지다. 시리즈는 어렵다는 부정적인 의견과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일이란 걸 증명해내야 했다. 삼진도 당할 수 있고 파울을 칠 수도 있지만 다음 타석에 들어설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언젠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다. 확장성도 넓고 제작자의 역량에 크게 좌우되는 장르라 제작자로서 욕심이 난다.

-영화를 즐겨본다고 들었다. 방에 가득한 사진들이 전부 인상 깊게 본 영화들이라고 하던데.

=대학 시절부터 어떤 형태로든 영화를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영화 서클도 만들고 토론모임도 운영했다. 좋아하는 영화, 존경할 만한 영화들을 볼 때마다 영화 사진을 출력해 붙이는 습관이 있다. 하나씩 붙이다보니 이제는 이 영화들이 나에게 메시지를 던져주는 일종의 부적처럼 느껴진다. 볼 때마다 자극이 된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할 텐데 하는 기분 좋은 압박감이 있다. 적어도 이 영화들을 볼 때마다 지금 영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후회되지 않는다.

-몇편을 소개해준다면.

=<인생은 아름다워>(1997)는 내 인생의 베스트 영화고, <굿바이, 레닌>(2003)도 사랑한다. 너무 많아 고르기 어렵다. 그 와중에 나름 취향이 보이긴 하는데, 가슴을 만져주는 이야기가 좋다. 영화관에 돈을 내고 앉아 있는 건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거 아닌가. 자연스럽게 공감되어 눈물이 나는 영화들이 좋다.

-앞으로 싸이더스의 목표가 있다면.

=앞서 언급한 것들을 다섯 글자로 요약하면 ‘강한 제작사’다. 젊고 재능 있는 영화인들의 든든한 뒷배가 될 수 있는 강한 제작사로 거듭나려 한다. 가깝게는 일단 올해 2편 정도는 제작했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투자자와 관객 모두에게 신뢰받는 제작사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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