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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두 얼굴의 사나이

하정우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지금껏 ‘하정우’는 존재하지 않던 카드였다. 그는 윤종빈 감독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생생한 페르소나(<용서받지 못한 자>(2005),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 <군도: 민란의 시대>(2014))였고, 나홍진 감독의 징글징글한 장르(<추격자>(2008), <황해>(2010))를 구현해낸 아이콘이자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2)이나 올여름 개봉할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서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선보인 동력이었다. <더 테러 라이브>(2013)로 신인감독 김병우의 지지자로 역할했던 그는, 최근 <허삼관>(2014)으로 자신의 연출작에 힘을 더하면서 ‘새로운’ 시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정우는 어느덧 한국 영화계에서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세계로 자리매김했고, 그 명확함이 곧 스코어로 연결되는 흥행 배우다. 인간 내면의 바닥, 선과 악의 원형에 대한 탐구와 상징으로 점철된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이런 하정우의 대중성을 대입시키는 건 조금은 낯선 일이다. 그런 지금의 하정우가 박찬욱 감독의 세계를 통과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글쎄. 그거야말로 감독님이 아시는 답변이 아닐까.” 사실 둘의 만남은 2015년 한국 영화계의 가장 뜨거운 사건이 된다. 그 파장을 본인 역시 모르지 않지만, 하정우는 오히려 부담에서 벗어나 지금을 즐기려 한다. “평소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했다. 블랙코미디적인 요소와 미장센, 음악적 선택 전 분야에 있어서, 나 역시 연출자나 배우로서나 감독님의 색깔을 항상 닮고 싶었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하정우가 박찬욱 감독에게 <아가씨>에 함께하자는 이야기를 들은 건 지난해 8월 <암살> 고사가 있던 날이었다. 이후 10월 초, 초고를 받은 바로 그날,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 합류할 것을 결정했다. “흥분되더라. 시나리오도 재밌고 캐릭터도 좋았다. 존경하는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이어서 그런 흥분이 배는 더했던 것 같다. 배우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아가씨>에서 하정우는 1930년대 한국과 일본의 그 풍경 속으로 진입한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김민희)의 재산을 노리고, 소녀(김태리)를 고용하고 이용해 아가씨에게 접근하는 백작 역이다. 원작 <핑거스미스>의 ‘젠틀맨’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 신사의 완벽한 매너를 체화한 채 두 여성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던 악인이었다. 출생의 비밀로 인한 두개의 이름, 두개의 운명을 가진 두 여인의 운명 사이에서 그는 초지일관 자신의 취할 바를 쟁취하는 인물이었다. 일말의 죄의식조차 없는 그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나 태도는 곧 돈을 갈취하기 위한 범죄에 불과했다. 백작은 그런 젠틀맨과 달리,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적 면모를 더한 캐릭터이고, 하정우는 그런 점에서 백작이 ‘원작과 가장 다른 캐릭터’가 될 거라고 말한다. “쇠냄새가 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겉으로는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 어둡고 모노톤인데 그 안에 인간적인 생생함이 있는 인물이다. <아메리칸 사이코>(2000)의 크리스천 베일 같은 이미지보다 조금 인간적인 부분을 가진 남자가 될 것 같다.” 가면 뒤에 숨겨진 양면성, 입체감이 주는 흥미로움이야말로 젠틀맨을 연기하는 흥미 지점이다.“겉으로 보이는 행동들 안에 있는 인간의 모자람, 추악함, 악마적인 마음, 이런 것들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간 범죄 스릴러, 액션, 멜로, 코믹 등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온 하정우의 모습들을 쉽게 모자이크해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전혀 예상 밖의 전환을 기대해보게 되는 지점이다.

감독과 배우로서 늘 쉬지 않던 멀티플레이어에게 지금 <아가씨>는, 지난 몇년간 배우로서 가장 긴 시간 준비하며 붙들고 있는 프로젝트다. “<암살> 촬영이 1월 말에 끝났는데, 6월 크랭크인 전까지는 온전히 <아가씨>만 생각하며 다른 활동은 일체 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일본에 며칠 갔다가 오늘 촬영 때문에 왔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일본 배경이라 일본어도 능숙하게 구사해야 한다. 백작 이미지를 위해 체중 감량도 병행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인물일까. 어떤 눈빛을 보낼까. 어떤 방식으로 언어를 구사할까. 지금은 그걸 체화하는 단계다. 감독님과 가장 많은 대화가 필요한 역할이다.” 어쩌면 하정우는 지금 진정한 변화의 순간과 맞닥뜨린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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