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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발견의 즐거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장영엽 2015-04-29

2007년, 시카고 역사에 대한 책을 쓰려던 존 말루프는 우연히 동네 경매장에서 15만장의 네거티브필름이 담겨 있는 박스를 구입한다. 그런데 그가 별생각 없이 구입한 이 박스에는 20세기의 거리 풍경이 담긴 매혹적인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직업은 사진작가, 이름은 비비안 마이어. 15만장의 필름을 남긴 이 사람은 누구이며, 그녀는 왜 자신이 기록한 이 수많은 사진들을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을까.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처음으로 발견한 존 말루프 감독이 <볼링 포 콜럼바인>(2003)의 프로듀서 찰리 시스켈과 함께 그녀의 흔적을 뒤쫓는 영화다. 역사작가이자 벼룩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물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자주 누려왔던 존 말루프 감독은, 수집가적인 기질을 살려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단서를 사려 깊게 채집해나간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의 미스터리한 면모다. 당대 여성들과 달리 남자들이 입을 만한 셔츠를 주로 입었고 넉넉한 코트에 펠트 모자를 쓰고 다녔던 그녀는, 뉴욕 출신이었으나 일부러 만든 억양을 사용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다르게 말했다. 누군가는 그녀가 모순적이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유별나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비비안 마이어가 비밀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녀 자신이 누군가에게 전하기도 했듯, 비비안 마이어가 살아가는 방식은 마치 ‘스파이’의 그것과 닮아 있다. 흥미로운 건 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된 방식 또한 그러한 그녀의 정체성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행동에 나서기 전, 대부분의 스파이들이 지난한 서류작업에 시달리는 것처럼 영화 제작진은 비비안 마이어의 네거티브필름뿐만 아니라 그녀의 옷과 편지, 영수증, 각종 서류들로부터 철저하게 자신의 사생활을 비밀에 감춰왔던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한 실마리를 유추해낸다. 이 영화를 보며 마치 탐정영화를 관람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그래서다. 비비안 마이어를 발굴해낸 감독 자신이 영화에 직접 출연해 추리극장을 진행하는 사회자처럼 그녀의 삶을 좇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상들을 풀어놓는 구성도 재미있다. 대상의 사회적 지위로부터 삶의 어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의미를 유추해낸 뒤, 다소 평이하게 마무리하는 결말이 아쉬움을 남기긴 하지만,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을 누리기에는 충분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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