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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에 우아한 무늬를 새겨넣다 <스틸 앨리스>
김보연 2015-04-29

올해 50살의 앨리스(줄리언 무어)는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대학에서 언어학을 연구하는 교수이다.누가 보아도 부러울 것 없는 삶이지만 앨리스는 최근 건망증이 부쩍 심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병원을 찾은 뒤 자신이 조발성 알츠하이머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가족과 슬픔을 나누며 자신이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삶을 최대한 기억하려 하지만 어느새 자기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고, 그만큼 앨리스의 시간은 짧아져간다.

리사 제노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워시 웨스트모어랜드와 올해 3월 루게릭으로 세상을 떠난 리처드 글랫저 부부가 공동으로 연출한 <스틸 앨리스>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환자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영화이다. <아이리스>(감독 리처드 에어, 2001) 등 알츠하이머병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가 먼저 떠오르기도 하지만 두 감독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극적인 상황을 강조하는 대신 차분한 호흡으로 앨리스와 그 주변의 작은 현실을 꼼꼼히 그리는 데 방점을 찍는다. 이를테면 앨리스가 딸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은 척할 때 짓는 표정이나 가족들이 앨리스 몰래 주고받는 짧은 눈짓을 포착하는 연출은 <스틸 앨리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여기에 줄리언 무어와 크리스틴 스튜어트, 알렉 볼드윈, 케이트 보스워스 등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안정적인 연기로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줄리언 무어는 두말할 나위 없이 탁월한 캐릭터 해석을 보여주며, 철없음과 성숙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는 자칫 무기력한 슬픔으로만 채워질 것 같았던 영화에 작은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틸 앨리스>를 지지하게 만드는 건 어쩌면 ‘불행’이라 부를 수도 있을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면서도 모든 과장된 영화적 수사를 최대한 배제한 두 감독의 선택이다. 이 영화는 슬프지 않은 척 냉정한 태도를 꾸미지도 않고 양식화된 비극적 감정을 폭발시키지도 않는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슬퍼하며 관객의 기억에 앨리스의 시간을 새겨넣을 뿐이다. 이 선택이 <스틸 앨리스>의 단순한 이야기에 우아한 무늬를 새겨넣으며, 나아가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게 만든다. 그 모습이 영화 속 앨리스의 태도와 닮아 있음 역시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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