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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날것의 감각을 향해 쏘다

‘류승완이 사랑한 형사영화’,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4월29일부터 5월10일까지 상영

<블리트>

1930년대 할리우드는 공황기의 궁핍과 금주법 시행이라는 무법의 시대를 배경으로 갱스터 장르를 만들었다. 사운드는 난무하는 폭력을 사실적으로 드러냈으며 그로 인한 생생한 효과는 갱스터 집단의 싸움, 경찰보다 더 큰 권력을 지닌 범죄자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배어나오도록 만들었다. 아메리칸드림은 이 시대를 거치면서 산산이 부서졌고 안티히어로는 동시대에 만연한 악몽을 표상하는 인물이 되었다. 갱스터는 이후 탐정영화와 하드보일드, 누아르를 거쳐 경찰영화에 이식되었다. 1960년대부터 경찰영화는 범죄자를 쫓는 냉철한 경찰이나 범인보다 폭력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변형되면서 다양한 범죄 현장을 거침없이 횡단했고,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문제들을 보다 긴밀한 시선으로 포착하게 된다.

<들개>

영화의 전당에서 4월29일부터 5월10일까지 류승완 감독이 추천한 형사영화 14편을 상영한다. 이들은 권위에 복종하지 않거나 자신만의 규칙에 의거한 추적의 과정을 따른다. 그들은 폭력이 지배하는 범죄의 세계보다 더욱 강력한 처벌로서의 폭력을 양산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자, 동료를 위한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자기파괴적인 길을 마다하지 않는 자, 세상과 자신의 대결로 인식하는 자들이다. 류승완이 선택한 형사들의 행보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지만 이들의 집념과 끈기, 광기는 탐색과 추적을 거치면서 악몽과 강박증으로 얼룩진다. 그들은 임무 수행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애쓸수록 공동체를 위한 정의 구현과 법질서 수호라는 목표가 불만과 원망, 개인적인 복수로 변질됨을 깨닫는다. 사회나 조직을 위한 그들의 일은 시스템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지독한 염증과 허무의 길로 향하기도 하고, 제 스스로 세상과 맞대면하는 단독자의 노선을 택하기도 한다. 거칠고 과묵한 형사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블리트>(1968)는 스티브 매퀸의 고집스러운 표정과 자동차 추격 신의 긴장감과 리듬에 주목했고, 시드니 루멧의 인물 중심적인 세밀한 묘사와 주변 상황과의 불화를 섬세하게 관찰한 <서피코>(1973)는 경찰로서의 열정과 신념이라는 원칙이 내부비리에 맞서 어떻게 뒤틀어지고 분쇄되는지를 포착한다. 윌리엄 프리드킨의 <늑대의 거리>(1985)는 <소서러>의 괴물 같은 폭발력과 <광란자>의 정체성에 대한 집요한 시선이 만난 것 같다. 신분위장과 위조지폐라는 테마는 끝을 볼 때까지 추락하거나 도달하기 힘든 지점을 향해 질주한다. 아벨 페라라의 <악질 경찰>은 해리 캘러헌보다 진일보한 사악한 형사가 악행에 찌들어갈수록 구원과 용서의 길이 열릴 수 있음을 체험하는 과정을 따른다. 가차 없는 폭력과 구원이 사실적인 질감을 획득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들개>(1949)는 총을 잃어버린 신참형사가 전후 일본의 피폐한 사회를 횡단하면서 총의 행방을 찾는 과정에 집중한다. 흘러내리는 땀, 과밀하게 모여 있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불쾌한 습기, 발바닥이 바닥에 달라붙는 끈적거림과 같은 무더위의 흔적은 계절의 감각을 통해 처절한 추격전 아래 숨겨진 균열을 체화시킨다.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1997)는 겨울의 쾌청한 하늘과 바다의 청명함이 차가움이라는 감각을 형성하면서 죽음과 폭력을 근접한 곳에 위치시킨다. 주인공만큼이나 과묵한 이 영화가 뿜어내는 잔혹함은 <들개>가 관통한 전후 일본의 피폐함을 파고드는 노래와 음악을 정적인 그림으로 전이시켰다. 폭력과 추적, 냉혹한 인간의 운명과 역사의 소용돌이, 푸른빛에 잠긴 허무와 비극의 세계, 균질적인 질서를 거부하는 날것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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