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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대단한 MT
김혜리 2015-05-21

ⓒ최우람 < URC-1 > 자동차 전조등, 전자장치 296×312×332cm, 2014

<트랜스포머>와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자동차가 캣워크에 선 모델이라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차는 묘지에서 부활한 좀비, 시체 조각을 이어붙인 프랑켄슈타인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는 350대 폐차 부품을 재활용한 차량도 나온다. 오로지 불모지에서 생존하고 전투할 목표로 변태한 기형의 ‘슈퍼 카’들은 질긴 생명력의 유기체처럼 보인다. 키네틱 아티스트 최우람의 <URC-1>은 150여개의 자동차 전조등을 주재료로 조형된 구체 조각이다. 호흡하듯 명멸하는 이 작품은 별 작명법에 따라 붙여진 제목에서 보듯 항성 같기도 하고 세포분열에 들어간 수정란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 작가는 자동차의 ‘눈’을 구하러 간 폐차장 풍경을, 죽은 동물이 해체되는 공간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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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요? 대장은 아닌데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돈을 대고 모두를 더 쿨하게 보이도록 하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에이지 오브 울트론>) 도입부에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들려주는 셀프 캐릭터 소개다. 차라리 업무 내용 설명처럼 들린다. <어벤져스>가 히어로들을 한데 소집해 팀명을 마침내 확정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결산이었다면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팀 내부에서 개별 히어로가 담당하는 역할을 확정하고 멤버 사이의 갈등과 애착의 작대기를 긋는 연결편의 성격이 강하다. “지상 최대의 MT”(Membership Training)라고 불러도 괜찮겠다. 실제로 조스 웨던 감독의 작업실 벽은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수사관의 그것처럼 덕지덕지 붙은 메모와 화살표로 빽빽했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여러 히어로의 개인사를 쌓아야 하고 감정선도 연결해야 하는 데다 바깥으로는 쉴드와 아스가르드를 챙기고 나아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세계와의 향후 랑데부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야기의 테두리를 이루는 여섯 인피니티 스톤의 향배도 잊어선 안 된다. 이처럼 공사다망한 관계로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140분 러닝타임은 인물끼리 함수관계를 요약하는 장면과 총력 액션 시퀀스로 여분 없이 양분된다. 호크 아이(제레미 레너)는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와 퀵실버(애런 테일러 존슨)에게 교사 역이고,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는 헐크(마크 러팔로)의 보모 역을 한다.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와 토니 스타크는 세계관의 대립각을 좀더 날카롭게 세운다. 인공지능 울트론(제임스 스페이더)은 토니 스타크가 가진 사고방식의 사생아이고 비전(폴 베타니)은 여기서 변증법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 버전이다. 대체로 독자 시리즈를 보유한 캡틴, 토니 스타크,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상대적으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반면 블랙 위도우, 헐크, 호크 아이가 더 많은 사건을 겪는다. 하지만 이중 누구도 <에이지 오브 울트론> 안에서 기승전결이 완결되는 스토리 궤적은 갖지 못한다. 이는 비단 <어벤져스> 시리즈뿐 아니라 미국 코믹스식 연속형 서사(serial storytelling)에 기반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 전체의 속성이라 할 수 있다. 마블 히어로 영화들이 악역의 이름을 자주 부제로 채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드라마는 물론 액션에서도 팀플레이에 매진한다. 어벤져스 군단이 폰 슈트러커의 기지를 습격하는 오프닝 시퀀스와 울트론과 결전을 벌이는 소코비아 전투에서 액션의 두드러진 특징은 (배구식으로 말하면) 리시브-토스-스파이크로 마무리되는 공조 공격과 (야구식으로 말하면) 유격수와 2루수의 키스톤 플레이로 상대의 공격을 걷어내는 수비다. 예컨대 캡틴의 방패로 토르의 묠니르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증폭하기도 하고, 헐크버스터 액션에서 보듯 아군끼리 역기능을 보완하는 장면으로 액션 세트 피스를 만들기도 한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에는 흡사 그리스 조각 ‘라오콘’처럼 무리 지어 사방의 적과 대적하고 있는 어벤져스의 대리석 군상이 등장한다. 다소 자아도취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조각품은, 소코비아 전투의 클라이맥스에서 등을 대고 둘러서서 울트론 군단을 물리치던 히어로들의 모습을 ‘우상화’한다. 조스 웨던 감독에게 이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즉각 떠오르는 극중 대사. “막강한 적과 어떻게 싸울 건데?”라고 반문하는 토니 스타크에게 캡틴 아메리카는 한마디로 답했다. “함께.” 지기 싫어하는 토니 스타크는 재차 물었다. “그러다가 지면?” 답은 같았다. “그것도 함께.” 궁극적으로 조스 웨던에게 어벤져스는 강해서가 아니라 함께 있기를 선택하기에 영웅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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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TV시리즈 <뱀파이어 해결사>(Buffy the Vampire Slayer)부터 <어벤져스> 후반작업 막간에 찍은 영화 <헛소동>에 이르기까지, 조스 웨던이 작가/감독으로서 꾸준히 입증한 강점은 앙상블 드라마를 쓰고 연출하는 솜씨다. 동지애와 팀워크의 묘사, 스크루볼 코미디에 문학적 야심이 가미된 대사, 심각함과 유치함을 양팔에 끌어안고 클라이맥스까지 고양시키는 구성력. 나열해놓고 보니 조스 웨던이 셰익스피어와 마블 코믹스를 공히 사랑한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도 내가 가장 즐긴 대목은 악당 울트론이 발호하기 전 어벤져스 전원이 평상복 차림으로 긴장을 풀고 어울린 파티 시퀀스였다. 특히 취기가 돈 히어로들이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들어보겠다고 시도하는 장면이 좋았다. 각자 단 몇초씩 할애된 숏에서도 캐릭터가 또렷해서다. 토니 스타크는 여의치 않자 로봇 팔까지 동원하고 나중에는 호승심에 반칙이고 뭐고 워머신(돈 치들)까지 가세한다. 브루스 배너는 놀이에 동참하되 가볍게 물러서는데, 자신의 통제 불가한 슈퍼 파워에 대한 쓸쓸한 감정이 희미하게 묻어난다. 블랙 위도우는 “난 내 힘을 증명할 필요를 못 느낀다”며 남자들의 힘겨루기를 편하게 구경한다. 모범생 스티브 로저스는 물론 정공법을 취하는데, 내내 느긋하던 토르가 캡틴이 묠니르를 쥐는 순간 혹시나 긴장했다가 역시나 실패하자 이내 안도하는 표정이 백미다. 조금 과장하면 <러쉬 더 라이벌> 이후 크리스 헴스워스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 싶다. 영화 전체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는 토르의 이 리액션은 영화 후반에 비전이 등장해 묠니르에 손을 뻗을 때에도 재연된다. 나아가 조스 웨던의 작가적 센스도 실감하게 된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토르는 그룹 가운데 이야기의 몸통에 잘 통합되지 않는 멤버다. 그에게 할애된 플롯이 거의 다 <토르: 라그나로크>(2017)를 예비하는 복선이라는 약점을 고려하면, 영화 전편에 걸쳐 잊을 만하면 웃음을 자아내는 묠니르 관련 러닝 개그는 웨든 감독의 영리한 보완책이다. (다음에 계속)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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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소풍 셈법

<산다>의 주인공 정철(박정범)이 일하는 된장공장에서 메주가 썩어 큰 손해가 난다. 사장은 공정을 서두르느라 덜 마른 재료로 생산을 강행했음을 내심 후회한다. 사장 딸 현경(박희본)은 아버지의 입을 단속하고는 일꾼들 앞에 나선다. “여기 계신 분들이 상의해서 원인을 찾아주세요. 어떻게 하면 다시 콩값을 만들지 결정해주시지 않으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하고 그러면 다들 겨울에 생활이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멀쩡한 듯 괴상한 어법이다. 사장이 제공한 중요 원인은 가려두고 누가 됐든 일꾼 중 한명에게 책임을 씌워 손해를 벌충하려 한다. 혐의로부터 오너와 그 가족은 쏙 빠진다. 그들은 스스로를 공장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망하면 곧 공장이 망하고 그러면 모두 실직하니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무사해야 한다. 어째 익숙한 논법이다. 집권 세력이 곧 국가이므로 그들을 흔들면 나라의 근간이 무너진다. 고로 책임은 권력자를 뺀 다른 곳에서만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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