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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 cross] 대화의 역동성 읽힌다면 가장 잘 읽은 것
윤혜지 사진 최성열 2015-06-01

<씨네샹떼> 출간한 철학자 강신주, 영화평론가 이상용

이상용, 강신주(왼쪽부터).

강신주 철학자와 이상용 영화평론가가 <씨네샹떼>를 출간했다. 25주간 CGV아트하우스와 진행한 시네토크의 일부와, 그들이 이야기 나눈 영화에 대해 각자 ‘철학자의 눈’, ‘비평가의 눈’이라는 섹션으로 나눠 쓴 영화글들을 한데 모으고 정리한 책이다. ‘씨네샹떼’는 우리말로 옮기면 ‘영화에 대한 예찬’이라는 의미라고. 주관이 뚜렷한 두 작가가 하나의 영화를 논하며 어떤 갈등과 동의의 여정을 보냈는지, 두툼한 책 한권을 만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비화가 듣고 싶어졌다. 예상대로 두 작가가 들려주는 말의 색과 결은 성격만큼이나 사뭇 달랐다. 강신주 철학자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고,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숙고하며 천천히 말을 놓아두려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 말들은 큰 물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흘렀고 마침내 한곳에 도달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가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그 자리에 강신주 철학자가 함께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강신주_지금은 종영한 KBS <즐거운 책읽기>의 패널로 만났다. 만나보니 서로가 마음에 든 거다. 내가 민음사와 함께 이상용 선생님에게 뭐 하나 같이 하자고 제안했고, 이상용 선생님은 CGV아트하우스와 시네토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걸 합쳐보자는 쪽으로 얘기가 흘렀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강의들이 상당히 무식하다고 생각한다. 다들 눈 뜨고 있는데 왜 눈을 뜨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강의자는 온갖 고상을 떨고, 질문자는 영혼 없는 질문을 해대고. 얘기하다보니 천만영화를 없애자는 것으로 목표가 잡혔다. 그러려면 관객의 눈이 높아져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생산자를 통제하지 못한다. 소비자를 통제해야지. 전 국민의 영화 보는 안목을 높여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그런데 25주를 쭉 만나야 하잖나. 기본적인 신뢰와 애정이 없인 불가능한 일이었다.

-책 말미에 강신주 철학자는 먼저 여행한 사람들이 그 여행담을 들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과 같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어서 책을 썼다고 했다. 그 여행담을 어떤 방식으로 들려줄 것인가. 책의 구성에 관해 논의하고 공유한 내용이 있다면.

=강신주_요즘 영화책 중엔 지적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책이 너무 많다. 중국의 <본초강목>을 허준이 보고 우리나라 음식을 연구해 <동의보감>을 쓰지 않았나. 현재를 사는 한국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책이어야 했다.

이상용_지금까지 출판사와 극장이 연합해서 뭔가를 한 적이 없었다. 우리만의 현재적 문화를 현재적 시선으로 정리하는 책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오래갈 수 있는 책이 만들어지길 원했고, 최우선은 책을 잡았을 때 훅 읽히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강신주_우리나라 영화평론의 최고 문제는 너무 어렵다는 거다. 영화에 대해 진지하지 못하면서 독자와 관객을 무시하는 왜곡된 담론이 형성됐다. 평론은 작품과 독자 사이의 매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엔 스물다섯편의 영화를 소개했지만 그걸 다 읽을 필요도 없다. 한장(章)만 읽더라도 독자가 보고난 뒤 그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어야 했다.

-수많은 영화사의 걸작 중 스물다섯편을 추린 기준은.

=이상용_최소 100편을 뽑았고 그걸 4분의 1로 줄였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품, 작가라는 게 기준이었지만 논의하기 용이하거나 반드시 말해야 하는 영화를 고르기도 했다. 한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지만 안 고른 것도 있다. 마니악한 독자들이 보기엔 너무 보편적인 리스트라고 말할지 모르나 이 강의의 가장 큰 기준은 보편성이었다. 또 강의를 할 때 강신주 철학자와 서로 공유할 수 있고 쉬운 언어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기준의 하나였다.

강신주_모르면 어려워지고 알면 쉬워지는 거지.

이상용_어렵게 얘기하는 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시놉시스’ 챕터는 단순한 줄거리 나열에 그치지 않고 나름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영화의 무드에 맞춰 흥미롭게 쓰였더라.

=강신주_시놉시스는 민음사 편집자 유상훈씨가 썼다. 우리가 쓰면 어려워질 것 같았다. 짧은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우리와 상관하지 말고 글량만 맞춰서 써달라고 했다. 독자가 최소한의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분량에 편차가 심한 건 상훈씨의 취향이 개입해서다.

이상용_내용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건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란 거다. (웃음)

강신주_항상 주지시켰다. 상훈씨의 역할은 떡밥이라고. (웃음)

-영화를 잘 아는 독자도, 영화를 잘 모르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들이 추천하는 최적의 활용법이 있다면.

=강신주_매번 자연에서 배운다. 우리는 물 흐르듯 순리대로 구성하려고 애썼다. 어떤 독자는 토크 부분에서 뒤로 갈수록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더라고 말하더라. 그 말을 듣고 기뻤다. 나와 이상용 선생님의 생각이 서로 섞이고 있다는 걸 그 독자는 안 거다. 그리고 그 지점, 한 7, 8강부터는 강연할 때도 정말 행복했다. 책이 예쁘게 나올 거라는 예상도 그 무렵부터 들었다. 대화의 역동성이 읽힌다면 가장 잘 읽은 거다. 그런데 간혹 엄한 데 밑줄 치는 애들이 있다. (웃음) 그건 책 잘못 읽은 거다. 물론 각자 재밌게 읽는 포인트는 다를 거다.

-서로에 관해 프로젝트 시작 전 기대한 부분과 프로젝트가 끝난 뒤 남은 인상에 차이가 있다면.

=이상용_혼자 25주차 강의를 했다면 내용이 반복됐을 것이다. 아무리 지적•인문학적 경험이 풍성하다고 해도 다른 방향으로 툭툭 닿는 것이 있어야 한다. 강신주 철학자와는 토크를 시작하기 전에 그주에 다룰 영화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 사전에 줘야 할 페이퍼만 미리 건넸을 뿐 강연 시작 전에도 농담 따먹기만 했다. 강연이 시작되면 애초에 가졌던 계획과 다르게 강의 내용이 변한다. 강신주 철학자의 말에서 맞는 건 긍정하고 아닌 건 방어하거나 역공하는 과정이 펼쳐졌다.

강신주_다 애정이야 애정. 서로에 대한, 그리고 청중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다. 비싼 강연비까지 내고 들으러 온 고마운 사람들이다. 환불도 안 해줬을 거거든. 강연비 받으면 우린 바로 다 써버리니까. (웃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청중에게 주려고 했던 것 같다. 뭔가 계속 보여주려고 나중엔 커플티도 맞춰 입었다. (웃음) 다음 강연도 마찬가지다. 우린 환불이란 게 없다.

이상용_발을 담그면 끝장인 거다. (웃음)

강신주_나로서는 진정한 의미의 공저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필자만 모아놓는다고 공저가 아니다. 내 글 하나쯤 빼도 되거나, 다른 글 하나쯤 더 넣어도 된다면 그건 진정한 공저가 아닌 거다. 이 책엔 우리 두사람이 새끼를 낳은 것처럼, 내 글에 이상용 선생님의 흔적이 있고 이상용 선생님의 글에 나의 흔적이 있다. 내가 이상용 선생님의 소개말에 ‘나로 하여금 공저의 욕망을 불러일으킨 최초의 사람’이라고 쓴 건 레토릭이 아니다. 많은 걸 얻었다. 대등한 관계와 상호변화, 시너지, 그리고 존중.

이상용_책을 쓸 땐 두 가지 묘미가 있었다. 하나는 청중에게 전달해야 하는 언어로 쓰는 것. 또 하나는 강신주 철학자와 생각을 조율해가는 것. 책을 만드는 과정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 같았다. 25주차는 25회차였던 거고, 나와 강신주 철학자는 감독이다가 배우이다가 스탭도 됐다.

-7월23일 시작할 다음 프로젝트 <씨네루멘> 이전에 “맛보기”로 먼저 6월 첫주부터 ‘<씨네샹떼> 30금’을 시작한다고.

=강신주_<씨네샹떼>가 영화사를 훑는 작업이었다면 <씨네샹떼> 시즌2인 <씨네루멘>은 영화와 영화감독에 더 집중할 거다. ‘<씨네샹떼> 30금’은 금기를 다루는 프로젝트다. <씨네루멘>의 강한 인트로라고 봐주면 좋을 것 같다. 40분짜리 편집본을 보고 그걸로 토크를 한다. 또 이상용 선생님과 내가 각자 자극적이고 불쾌한 문제적 장면을 하나씩 택해서 그것이 왜 불쾌감을 주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거다. 참 남루한 사회다. 요즘 동시 <학원가기 싫은 날>이 문제가 되지 않았나. 애가 시를 썼는데 단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제거해버리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 시를 쓴 아이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은가. 우리는 금기에 대한 논의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를 얘기할 것이다. 이거 한다고 또 문제적 인물로 찍히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나는 괜찮은데 이상용 선생님까지 그렇게 비칠까봐. 아, 그런데 영화는 이상용 선생님이 다 골랐다는 걸 알아주길. (웃음)

영화 잘 모르는 사람도 읽기 편한 영화글

영화사의 걸작 스물다섯편을 두 가지 시선에서 들여다보는 책 <씨네샹떼>는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읽기에 편한 영화글이다. 인용된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수록된 시놉시스와 작가에 관한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조르조 아감벤의 <벌거벗음>을 인용해 “동시대 영화”를 논한다. “특정 시대에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사람, 모든 면에서 완벽히 시대에 묶여 있는 사람은 동시대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시대를 쳐다보지도, 확고히 응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을 ‘영화’로 바꾸어 본다. 다시 말하자면, “특정 시대에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 모든 면에서 완벽히 시대에 묶여 있는 영화는 동시대 영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문에 그 영화들은 시대를 쳐다보지도, 확고히 응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책은 4개의 장으로 글을 나누어 테크놀로지로서의 영화, 영화사적 경향과 영화 서사의 흐름, 정신의학적 관점에서의 영화보기, 현대영화에 깃든 삶의 성찰을 두루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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