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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게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신데렐라 <은밀한 유혹>

지연(임수정)은 친구의 배신으로 빚쟁이에게 쫓기는 신세다. 그녀는 마카오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서빙을 하며 지내는데 그녀의 급여로 빚을 갚기엔 역부족이다. 그녀가 마카오 부호의 간병인을 모집한다는 전단을 보고 솔깃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군다나 그는 한국인이라 한국어를 쓰는 지연에게는 더욱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그녀의 도전을 반긴 사람은 젊고 반반한 미남형의 남자 성열(유연석)이다. 성열은 회장(이경영)의 아들이자 유능한 비서이기도 하다. 성열은 지연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와 결혼을 한 뒤 재산을 자신과 반으로 나눌 것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거부하던 지연은 성열에 대한 호감과 새로운 인생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여 미지의 세계에 한발 내디뎌보기로 한다.

카트린 아를레의 추리소설 <지푸라기 여자>가 원작이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 위험한 거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여자가 미궁에 빠진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1964년 숀 코너리 주연의 동명 영화로 이미 한 차례 영화화된 바 있다. 영화 <은밀한 유혹>은 원작의 기본 모티브만 가져왔을 뿐 주제부터 캐릭터까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은밀한 유혹>은 누군가의 제안으로 신데렐라를 꿈꾸던 여자가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은 뒤 결국은 신데렐라가 되는 이야기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원작의 차가운 비극을 즐길 만한 오락거리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고 영화는 의외의 액션 신을 복병처럼 숨겨놓는다. 원작의 주인공이 인간관계가 모두 절연된 완전히 고립된 인물이었다면, 영화는 이를 희극으로 만들기 위해 매니저 혜진(진경)과 선원의 직원 유미(도희) 등 주변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한다. 이런 선택들이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던 매력을 대체할 만큼의 매력이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여성 캐릭터의 주체적인 선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은밀한 유혹>의 여성 캐릭터는 원작보다는 주체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주체성에 의문이 생긴다. 처음에는 성열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연출자처럼 보이나 결국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것은 회장이었다. 결국, 뒤에서 상황을 조정할 수 있는 주체는 두 남자이며 여성은 그들의 연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원작보다 수혜를 입은 캐릭터는 지연이 아닌 회장인 것 같다. <시크릿>(2009)의 윤재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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