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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생동과 정적을 맑고 애잔하게 담아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정지혜 2015-06-10

전체 2장으로 구성된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묘하게 이어져 있다. 1장은 일본의 소도시 고조를 방문한 영화감독 태훈(임형국)과 통역을 맡은 미정(김새벽), 이들을 안내하는 공무원 유스케(이와세 료)로부터 시작된다. 유스케는 태훈과 미정에게 자신은 도쿄 출신으로 배우를 꿈꿨으나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연고 없는 이곳에 왔다며 뜻밖의 고백을 한다. 이어 시골 시노하라를 찾은 태훈과 미정은 현지인 겐지를 따라 폐교가 된 그의 모교를 방문해 어린 겐지의 사진을 보게 된다. 2장은 고조를 찾은 혜정(김새벽)이 도시 생활에 지쳐 아버지의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감을 재배하는 청년 유스케(이와세 료)를 만나 교감하며 진행된다. 이들도 시노하라의 폐교에 가 아마도 1장의 인물들이 봤을 사진을 보게 된다.

동일한 배우들이 두장에 걸쳐 다른 인물로 등장하지만 이들은 시간차를 두고 비슷한 경로로 고조를 둘러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목격하는 건 정체된, 늙어버린 고조다. 고조를 지키고,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노인들이다. 영화는 은근히, 때론 직접적으로 젊음과 나이듦, 삶의 생동과 죽음의 정적을 나란히 세운다. 특히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 뒤, 혜정과 유스케가 감정을 나누는 2장은 젊음이라는 생기가 약동하며 극적 기운을 북돋운다. 말갛고 일면 우아하기까지 한 영화는 그러나, 각 장의 끝마다 인물들에게 홀로 밤하늘의 불꽃놀이를 지켜보게 함으로써 애상감을 드리운다. 거대한 에너지가 한순간 폭발해 소멸하는 불꽃이 마치 인생에 대한 은유로 읽히는 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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