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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그들은 모두 평범한 학생이었다
허지웅(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민소원(일러스트레이션) 2015-07-23

<엑스페리먼트>에서 발견하는 ‘악의 평범성’

포도주를 먹는다 생각하고 먹어라. 교수가 말했다. 교수가 내민 병에는 동료들의 인분이 들어 있었다. 인분을 먹고 인간이 되라는 게 교수의 주문이었다. 그는 먹어야 했다. 그가 당한 고통은 인분을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시로 동료들과 교수에게 얼차려를 받았고 얼굴에 비닐봉지가 씌워진 상태에서 호신용 스프레이를 맞아야 했으며 피부가 괴사할 지경에 이를 때까지 야구방망이로 구타당하기도 했다. 며칠 동안 벌어진 일이 아니다. 그는 이 일을 지난 2년 동안 당해왔다. 교수가 지시했고 두명의 동료가 동참한 일이었다. 교수는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게 악마가 씌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일을 마주했을 때 대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왜 당하고 있었을까. 동료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였다. 충분히 폭행을 제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우선 권위와 위계에 의한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교수는 해당 분야의 권위자였다. 과거 지방 대학에 제자를 교수로 채용하게 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피해자 또한 교수를 통해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이어진 지속적인 폭행과 구타, 그가 느꼈을 끔찍한 모멸감, 더불어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상황들을 고려해보면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피해자는 각서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교수가 자신의 가혹행위를 발설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십회에 걸쳐 1억3천만원에 달하는 지급각서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이유들을 살펴보면 전화를 제때 받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식의 말이 안 되는 것들뿐이다. 각서는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강제성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교수는 네가 도망가면 네 부모가 갚아야 하고, 네 부모가 못 갚으면 너의 외할머니가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든 걸 철석같이 믿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어쩌면 먼저 떠올렸어야 하는 질문은 왜 당하고 있었을까, 가 아니라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였는지 모른다. 이 경우 가장 쉽고 간편한 답변은 늘 준비되어 있다. 교수가 미친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해자를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이코패스로 완전하게 구별하고 나면 납득할 수 없는 서사의 구멍들은 아주 선명하게 채워진다. 그는 왜 피해자에게 인분을 먹이고 폭행을 하고 고문에 가까운 체벌을 가했나.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에. 간단한 설명이다. 그러나 과연 삶이란 게 그리 명료하던가. 이를 단지 사이코패스의 문제로 구분하는 것은 이 사건에 포함된 어느 불편한 지점들을 무마하고자 하는, 단출한 사고의 결과물일 수 있다.

영화 <엑스페리먼트>(2001)는 어느 심리학자에 의해 벌어진 실험을 다루고 있다. 연구원들이 면접을 통해 스무명의 평범한 사람들을 모집한다. 이렇게 모집된 이들에게 간수와 죄수라는 역할이 주어진다. 이들의 일상은 24시간 카메라를 통해 관찰된다. 그렇게 14일만 지내면 상당한 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12명의 죄수와 8명의 간수가 나누어졌다. 실험 1일째, 모두가 즐겁다. 간수도 죄수도 진지하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간수는 권위적으로, 죄수는 반항하다가 결국 순응하고 굴종을 견디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변모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5일째. 첫 번째 살인이 벌어진다.

올리버 히르비겔의 <엑스페리먼트>가 국내 소개되었을 때 가장 흔한 반응은 “비약이 심하다”였다. 간수와 죄수의 역할을 나눈 것만으로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폭력이 발생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극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이것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엑스페리먼트>는 1971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벌어진 심리 실험의 내용에 기반한 영화다.

1971년 필립 짐바르도 박사는 모의감옥에서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은 이들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하루 15달러를 받고 2주간 실험에 참여할 학생들을 모집했다. 24명의 참가자가 모였고 무작위로 간수와 죄수 역할을 나누었다. 간수들은 법과 질서를 유지해야 하며 죄수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단 이틀 만에 폭력 사건이 벌어졌다. 태도가 불량한 죄수들을 독방에 가두고 옷을 벗기고 소화기를 뿌렸다. 잠을 재우지 않고 얼차려를 시켰으며 폭언과 욕설을 쏟아냈다. 죄수들은 눈빛이 흐려지고 행동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한 죄수는 정신쇠약 상태에 빠져들었다. 나흘째에는 간수들이 죄수들에게 동물이 성교하는 동작을 해보라는 주문을 하기에 이른다. 짐바르도 박사는 더이상의 실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실험은 다음날 중지되었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학생이었다. 훗날 짐바르도 박사는 <루시퍼 이펙트>를 통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일부 교도관들은 악의 창조자로, 또 다른 일부 교도관들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악이 번성하는 것을 방조했다. 한편 정상적이고 건강한 젊은이들 일부는 죄수 역할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버렸고, 남은 생존자들은 좀비 같은 추종자가 되었다.”

인분을 먹인 교수와 인분을 먹은 제자는 그들이 만들어낸 감옥 안의 간수와 죄수였는지 모른다. 교수는 ‘그래도 되는’ 그만의 감옥 안에서 자기 당위에 심취해 마음껏 폭력을 행사했다. 제자는 ‘그래야 하는’ 그곳에서 교수의 일상적인 폭력과 너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 앞에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방점은 저들이 영화 <엑스페리먼트>나 짐바르도 실험에 참가했던 학생들처럼 매우 특별하고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데 찍힌다. 저 감옥 또한 거기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어느 가정에, 어느 일터에, 어느 친구들 사이에서 스스로 간수와 죄수임을 부정하는 가운데 명백하게 존재하고 기능하고 있다.

요컨대 나도,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미 인분 교수이거나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럴듯한 상황과 환경이 주어지면 사랑을, 혈연을, 우정을, 금전을, 위계를 빌미로 악을 행사한다. 그 자신만이 그것을 악으로 인식하지 않고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 혹은 선의로 인식할 뿐이다. 악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저술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거론했다. 전범재판에서 목격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뿔이 난 악마가 아니었다. 평범하다는 표현이 아까울 만큼 평범한 사람이었다. 저 잔악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타고난 악마가 아니라는 데 한나 아렌트는 충격을 받았다. 아이히만은 그저 자기 자신의 끔찍한 행동을 객관적으로 살피지 않고 생각 없이 역할에만 충실했던 사람에 불과했다. 한나 아렌트는 그와 같은 상황 안에 있을 때 더욱더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악의 평범성 개념은 아이히만의 말년 인터뷰와 새로운 연구결과들을 통해 반박되거나 보충되고 있다. 그러나 위계와 시스템, 적극적인 동조자들이 발견되는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악의 평범성 논쟁, 그리고 <엑스페리먼트>가 남긴 가장 중대하고 어려운 화두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란 그렇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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