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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리버
2001-03-15

<크림슨 리버>는 <쎄븐>을 연상시킨다. 암호 같은 단서를 흘리는 지능적인 연쇄살인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는 형사들의 게임 구도, 음산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그렇다. 시각적 이미지는 <쎄븐>보다 강렬하다. 첫 번째 시체를 클로즈업하는 오프닝부터 심상치 않더니, 갈수록 범행이 잔인해지며 신체 일부가 손상된 시체의 노출도 잦아지고 길어진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마주 보기 어려울 정도다. 사건의 배경도 광활한 알프스 산악 지대로 ‘버전 업’됐는데, 이는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다. 열린 듯 닫혀 있는 눈덮인 산악지대는 기이하게도 밀실 공포를 유발하고, 창조주의 권능을 얻으려던 인간의 어리석음은, 대자연 앞에서 발가벗겨진다.

<증오>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래, 마티유 카소비츠는 줄곧 평단과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행보를 보여왔다. 새로운 작가 탄생에 대한 기대에, 카소비츠는 자신의 우상은 스필버그이고 영화의 뿌리는 할리우드라고,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림슨 리버>는 그가 자신의 ‘할리우드 지향성’을 온전히 드러낸, 장르영화 데뷔작인 셈. 그렇다고 <크림슨 리버>가 카소비츠의 전작들과 무관한 것만은 아니다. <증오> <암살자(들)>에서 제기한 문제들, 인종과 계급 문제를 여전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나치 이데올로기에 현혹돼 혈통을 ‘개량’하는 지식인 그룹의 도착적인 엘리트주의 때문에 유전학적인 질병에 시달리는 등 보통사람들의 삶이 유린당한다는 얘기. 문제는 이야기의 짜임새와 전달 방식이다.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동명소설은 꽤나 치밀하고 방대한 내용이었던 듯. 각색 과정에서 감독은 취하고 버릴 것 사이에 갈피를 못 잡은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범행 동기와 타깃에 공감하기가 어렵고, 초반의 단서들이 유야무야되면서, 이야기의 밀도와 긴장감이 떨어진다. 코믹한 캐릭터와 에피소드도 무거운 주제와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해 생뚱맞다. 길을 잃고 방만해진 이야기를 막음하는 건 거대한 눈사태인데, 스케일로 드라마까지 커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온갖 장르가 뒤범벅된 정체불명의 블록버스터에, 카소비츠까지 손댈 필요가 있었을까.

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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