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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 cross] 저의 목소리가 궁금하지 않나요?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15-08-24

뮤지컬 <명성황후> 김법래

올해로 데뷔 20년차인 뮤지컬 배우 김법래가 최근 드라마와 영화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의 목소리 굵직한 국정원 국장과 <악인은 살아있다>(2015)의 비리 회장을 비호하는 킬러가 바로 그다. 현재 20주년을 맞이한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의 미우라 역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는 그를 찾아가 국내 뮤지컬 배우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지난 20년에 걸친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마치 뮤지컬 배우의 미래를 짊어지기라도 한 듯 묵직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그와 나눈 대화를 여기 옮긴다. 저공으로 날아들어 몸을 휘감는 그의 육성을 들려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초연 이후 20년이 지났는데도 뮤지컬 <명성황후>의 명성은 여전하다.

=처음 <명성황후>를 보자마자 오페라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여러 라이선스 공연은 많지만 이렇게 오래 사랑받은 국내 송스루(song-through) 창작 뮤지컬은 아마 또 없을 것이다.

-거의 10여년 만에 시해사건의 주모자 미우라 역을 다시 맡았다.

=예전에 지방 공연을 돌 때면 아예 박수를 안 치는 관객도 있었다. 극에 몰입해 화가 난 거지. (웃음) 확실히 뮤지컬이 대중화되면서 관객이 달라졌다는 걸 많이 느낀다.

-여타의 역할과 달리 미우라는 대사나 노래가 많지 않고 액션은 더더욱 없다.

=배우로서는 아쉽기도 하다. 노래다운 노래 한곡 못하니까. 하지만 등장만으로 관객을 압도할 수 있는 위압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와 외모, 체격이 적역이었다. 물론 악역이라는 게 한번 연기가 어긋나면 감정이 확 깨져버리니까 배우로서는 상당한 순간 집중력이 요구된다.

-홍계훈 장군 역의 테이를 비롯해 수많은 아이돌 스타들과 작업했다.

=테이는 홍계훈 배역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연습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연습장에 오면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내가 무서워서라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걸? (좌중 폭소) 사실 난 안 무서운 사람인데 다들 그렇게 무서워한다.

-데뷔 시절, 막내 김법래는 어떤 후배였나.

=다음에 공연할 뮤지컬 <신데렐라>를 연습 중인데 아까 연습장에서 함께 출연하는 SBS <K팝스타> 출신 백아연을 만났다. 개인 연습 중에 뭐가 잘 안 되는지 구석에서 울고 있더라. 그래서 “나도 막내 때는 화장실에 숨어 울기도 했다”고 다독여주다 나왔다. 당시에는 나처럼 성악과 출신 뮤지컬 배우가 거의 없었다. 대학 다니면서 성악만 전공했던 내가 갑자기 탭댄스를 배우고 다리를 찢어야 했으니 눈물이 날 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데뷔 이듬해에 <아틀란티스 2045>로 한국뮤지컬대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아무튼 상 덕분에 스스로 직업에 재미를 느끼게 됐다.

-무대에서는 어떤 스타일의 배우인가.

=친한 배우들은 무대에서의 나를 종종 무서워하기도 한다. 애드리브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삼총사>에서 맡았던 포르토스와 <잭 더 리퍼>에서 연기했던 돈 밝히는 기자 먼로 역할의 경우에는 코믹하게 풀어낼 여지가 있었서 애드리브를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유준상 형은 나와 함께 연기할 때 늘 애드리브를 기대했다. “오늘은 뭐 없냐?”면서. (웃음) 자기도 대본에 빼곡하게 애드리브를 써서 가져온다. 그는 준비하는 스타일이고 나는 즉흥적이다.

-무대 위에 올라 애드리브를 한다는 건 보통 내공이 아니고서는 어려울 것 같다.

=심각한 상황에서는 연기의 흐름을 깨뜨릴 수 있어서 위험하다. 작품과 캐릭터에 따라 해도 되는 상황이 있는 거니까. 그러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연기의 기본만 지키면 길을 잃지 않는다. 바로 상대의 대사를 들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 자연스럽게 리액션이 나온다. 가끔 엄기준이 정말 무서울 때가 있는데 그 친구는 상황에 안 맞는 애드리브를 툭툭 던질 때가 있다. 갑자기 객석이 썰렁해질 정도로. (웃음) 그럼 상대 배우들이 무서워한다.

-극장마다 상영 시스템이 다르듯 공연장의 구조 역시 모두 다를 텐데, 공간은 연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사이즈나 객석 수에 따라 연기의 톤을 달리 잡아야 한다. 서울 공연장을 예로 들자면,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은 층수가 높으니까 평소보다 시선도 더 높이 처리해야 하고 동작도 더 크게 펼쳐야 한다. 그런 건 계산하기보다 다르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몸에서 배어나오는 것 같다. 충무아트홀이나 LG아트센터는 다른 곳보다 연기의 폭을 낮춰도 된다. 관객도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를 보기에 좋아서 선호한다.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도 종종 작업한다. 해당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를 무대에서 떠올리지는 않나.

=원작을 일부러 안 본다. <캐치 미 이프 유캔>은 톰 행크스 연기를 좀 참고해보려다가 그에게서 뭔가를 가져오려 하지 말고 김법래스러운 새로운 연기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클라크 게이블의 체격이나 분위기가 나와 잘 맞아떨어졌다. 그 배우 역시 당시에는 거구라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하더라.

-공연 때마다 한국을 찾는 일본 팬들도 많다고 들었다.

=2009년 즈음, <잭 더 리퍼>로 처음 일본 공연을 갔다. 당시에는 마치 축구 경기 한•일전에라도 출전하는 선수처럼 비장한 마음을 갖고 공연을 했는데 공연 중에 박수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거다. 속으로 뜨끔해하며 빨리 공연을 마칠 궁리만 했는데 끝나자마자 엄청난 박수와 함께 전부 기립해서는 공연장을 나가지 않는 거다. 정말 놀라웠다. 심지어 분장을 지우고 집에 가려는데 양쪽 대로에 관객이 전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출연했던 아이돌 스타 보러 왔다가 팬이 된 관객도 있었다. 지금도 선물이 끊이지 않는다. 고마운 관객이다.

-데뷔 이후 언제 가장 뮤지컬의 대중화를 체감했나.

=그것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찾아왔다. 2000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공연 당시에는 배우가 아니라 해당 작품 인터넷 팬카페가 생겼다. 아마 뮤지컬로는 최초의 팬카페였을 것이다. 그런데 웹상에서 팬들끼리 싸움이 붙어 카페가 폐쇄되는 지경까지 가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면서 라이선스 뮤지컬도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명성황후>처럼 명맥을 잇는 창작 뮤지컬이 너무 부족하다.

=그렇다. <명성황후> 외에 올해는 장유정 감독의 작품들도 공연되는데 확실히 부족하다. 서울시 지원을 받아 여러 단체에서 가끔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끼리는 농담 삼아 “너 왜 몰래 하냐?”라고 묻는다. 유명 배우를 쓰지 않는 창작 뮤지컬은 알려지기 어렵다. 여건상 제작 자체도 힘들 테니까. 일단 검증되지 않았으니 투자자들에게 투자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지난 몇년간 뮤지컬 외에 영화나 드라마 등 활동 분야를 넓히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욕심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또 지난 2년 동안 안 좋은 기획사를 만나서 여러 곳을 옮겨가면서 시간이 그냥 흘러버렸다. 지금은 소속사도 옮겼고 부지런히 활동 분야를 넓혀가려 한다.

-무대와 병행하려면 쉽지 않을 텐데.

=뮤지컬 배우도 스타급 연예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우를 덜 받는다. 그래서 방송이나 영화로 얼굴을 알리고 싶은 생각도 있고. 우리는 20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착잡할 때가 있다. 나도 한 작품에만 집중하면서 작업하고 싶다.

-뮤지컬 배우로서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목소리를 물려받아 뮤지컬 분야에서는 운 좋게 여기까지 왔다. 영화나 드라마는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조급함이 들 때도 있지만 누가 그러더라. 너는 어차피 조연을 맡아야 한다. 나이 들어야 더 좋은 역할이 들어올 거라고. 그래서 편하게 생각하려 한다. 다만, 후배들이 활동할 때는 지금보다 실력 좋은 사람들이 대우를 받는 때가 오길 바란다.

-후배들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면.

=예전에 서울예술단에서는 공연이 없을 때도 하루 종일 춤과 재즈, 무용 등을 배웠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기본을 안 가르쳐준다. 예를 들어서 객석이 오른쪽에 있으면 무대에서는 왼발부터 나가야 하고, 손을 뻗어도 오른손보다는 왼손을 들어야 하는 식의 디테일을 요즘엔 전혀 모른다. 또한 남경주 선배가 <아가씨와 건달들>을 함께할 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바로 혼자 연습하지 말라는 것. 혼자 만든 연기는 혼자만의 것일 뿐이다. 상대와의 교감을 통해 진짜 연기가 만들어진다. 교훈처럼 새기고 있는 말이다. 상대의 연기에 귀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국내 초연 뮤지컬 <신데렐라>

이미 만화와 영화 등을 통해 숱하게 봐왔던 원작이지만 뮤지컬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원작의 내용과도 조금 다르게 각색됐다. 이를테면 직접 유리구두를 무도회장에 두고 올지 말지를 결정하는 적극적인 신데렐라의 모습 등 관객에게 조금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2013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고 영화만큼 놀라운 다양한 무대 기법이 쓰일 예정이다. 또한 윤하, 백아연, 양요섭, 산들, 켄, 가희 등 아이돌 출신 가수들의 출연 소식이 전해져 예매가 한창이다. 배우 김법래는 신데렐라와 사랑에 빠지는 크리스토퍼 왕자를 대신해 국정을 살피는 집정관 세바스찬 역으로 등장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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