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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죽음에 이르는 병

베네치아, 죽음의 도시

<베니스의 열정> 밤의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크리스토퍼 워컨.

‘동화처럼 환상적인 일탈’을 하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토마스 만에 따르면 역시 그곳은 베네치아다.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주인공의 고백을 통해 밝힌 사실이다. 토마스 만이 그 일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일일이 말하지 않았지만, 에로티시즘의 위반이 상상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일 테다. 베네치아는 ‘금지’라는 문명의 명령에 반항하도록 유혹하는 공간이다. 그러기에 토마스 만은 베네치아를 ‘믿을 수 없는 미녀의 유혹’에 비유했다. 일탈은 그 유혹에 몸을 맡기는 행위일 테다. 일탈, 곧 죄를 짓는 불안이니, 어쩌면 우리는 베네치아에서 금지를 위반하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007 카지노 로얄> 대니얼 크레이그.

폴 슈레이더의 광기의 도시

폴 슈레이더는 아직도 감독이기보다는 발군의 시나리오작가로, 또 비범한 영화비평가로 더 유명한 것 같다. 슈레이더는 마틴 스코시즈의 대표작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등의 시나리오작가이자, 폴린 카엘의 제자로 등장한 비평가였다. 그의 초기 비평서인 <영화의 초월적 스타일: 오즈, 브레송, 드레이어>는 반전통적인 세 거장의 영화세계에 대한 친절한 입문서로,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슈레이더를 영화계에 먼저 알린 것은 시나리오작가로서였다. 그의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개 죄의식에 찌들어 있거나 자기파괴적인 반항아들인데, 그건 감독 자신의 성격과 대단히 닮아 보인다. 슈레이더의 과대망상적인 광기는 종종 영화계의 뉴스가 되곤 했다. 그는 <캣 피플>(1982)을 감독할 때 주연배우인 나스타샤 킨스키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자기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총으로 여배우를 위협하기도 했다. 또 한때는 침대 머리맡에 권총을 숨겨놓지 않고는 잠을 자지 못했다.

연출가로서의 슈레이더의 명성은 작가로서의 명성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스코시즈처럼 매끄럽게 작품을 빚어내는 데는 여전히 약점을 보인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는 자신의 성격처럼 투박하지만 묘한 광기가 숨어 있고, 이것이 관객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B급 스릴러의 긴장과 동의받기 어려운, 곧 광기의 폭력은 슈레이더 영화의 특성이 됐다. <베니스의 열정>(1990)은 그런 스릴러들이 이어져 나올 때 발표됐다. 현대 영국 문학의 대표작가인 이언 매큐언의 동명 원작(1981)을 각색했다. 우리에겐 <어톤먼트>(2001)의 작가로 더욱 잘 알려진 매큐언의 초기작이다. 데뷔 당시 매큐언은 고딕적인 서늘한 죽음의 테마로 단숨에 유명해졌고, 덕택에 ‘죽음의 이언’(Ian Macabre)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어쩌면 슈레이더는 매큐언의 죽음의 스릴러에서 자신의 영화세계를 봤을 것 같다. 그만큼 당시 두 작가의 예술세계는 닮아 있다. 공통의 테마는 ‘오싹한 죽음’(macabre)이다.

<베니스의 열정>의 원제목은 <The Comfort of Strangers>이다. 낯선 사람에게서 느끼는 편안함이란 의미다. 그러나 슈레이더의 영화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짐작하겠지만,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인 커플 콜린(루퍼트 에버렛)과 메리(나타샤 리처드슨, 토니 리처드슨과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사이의 딸)는 수년째 동거하고 있는 사이인데, 최근 들어 ‘권태’의 불안이 두 사람 모두에게서 커져가는 위기를 느낀다. 이들은 휴가를 가기로 했고, 그들이 선택한 도시가 바로 베네치아다. 매큐언의 원작에는 미지의 도시로만 제시돼 있는데, 슈레이더는 ‘낯섦’과 ‘편안함’이 충돌하는 이해 불가의 공간으로 베네치아를 선택한 것이다.

콜린과 메리는 멀어져가는 사랑을 회복하겠다는 듯 호텔에 틀어박혀 매일 섹스에 몰두한다. 이들이 밤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아 베네치아의 그 유명한 좁은 골목길들(칼레, Calle)을 헤매고 다니던 중 흰색 양복을 빼입은 묘한 분위기의 현지인 로버트(크리스토퍼 워컨)를 만나며, ‘편안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크리스토퍼 워컨의 팬이라면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베네치아 밤의 텅 빈 골목길에 갑자기 나타난 워컨의 이미지가 얼마나 오싹한지 말이다. 그는 친절하게 미소짓고 있어도 왠지 서늘한 기운(macabre)이 느껴지는 배우다. 콜린과 메리는 그의 친절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이상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더욱 자주 그를 만난다. 알고 보니 로버트는 극우주의자에, 사디스트이고, 인종주의자이다. 그의 처 캐롤라인(헬렌 미렌)은 마조히스트이고, 등이 아프다는데, 아마도 원인은 부부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콜린과 메리는 로버트를 피하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거미줄에 걸린 먹이처럼 점점 그의 손아귀에 잡혀들어가고 만다.

이 커플이 로버트를 만날 때의 불안은 마치 베네치아의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공포와 비슷하게 표현돼 있다. 골목길뿐 아니라 작은 운하들도 그물처럼 얽혀 있어, 베네치아라는 공간 전체는 이들 커플의 운명을 옥죄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커플은 사랑을 위해 베네치아에 왔는데, 두 사람 가운데 한명은 죽음에 이르고 또 한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절망에 놓인다. 악몽 같은 경험의 중심에는 방향을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베네치아의 좁은 길, 그리고 그 길처럼 모호하고 복잡한 크리스토퍼 워컨의 ‘서늘한’ 캐릭터가 자리잡고 있다.

<쳐다보지 마라> 베네치아의 좁은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는 부부.

니콜라스 뢰그의 악몽의 도시

베네치아의 운하는 보기와는 달리 촬영하기엔 대단히 어려운 곳으로 유명하다. 한 시퀀스를 찍는데 반나절 이상이 든다면, 촬영을 시작할 때와 끝낼 때의 주변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운하 주변은 조수간만의 차이 때문에 환경 변화가 심하고, 따라서 일정한 공간조건을 유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잘못하면 시퀀스 내의 시공간의 일관성이 훼손될 수 있다. 그래서 베네치아 배경의 영화의 경우, 대개 운하 장면은 배경으로 크게 한번 등장하고 그곳에서 세세한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운하는 영화적 공간이 베네치아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종의 병풍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007 카지노 로얄>(마틴 캠벨 감독, 2006)에서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가 베네치아의 대운하를 보트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장면 같은 거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영국 감독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1973)는 베네치아, 특히 운하 배경 영화의 전범으로 평가된다. 현지에서 ‘카날레’(Canale)라고 불리는 운하는 물론이고, 운하와 연결되는 샛길, 골목길 같은 작은 운하, 곧 ‘리오’(Rio)의 매력까지 빼어나게 표현하고 있어서다. <쳐다보지 마라>도 <베니스의 열정>처럼 비현실적인 악몽이 전개되는 스릴러다.

존(도널드 서덜런드)은 건축가다. 특히 교회 복원이 그의 전공이다. 그에겐 특별한 재능이 하나 있다. 신기하게도 심령술사(Psychic)처럼 미래를 간혹 본다. 왠지 자신에겐 오멘(Omen) 같아서 아내에게도 비밀에 부쳤다. 그런데 최근에 어린 딸의 사고사를 뻔히 예지하고도 막지 못해서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아내 로라(줄리 크리스티)는 딸의 죽음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렸고, 부부는 치료 겸 휴양을 위해 베네치아로 여행을 간다. 마침 베네치아의 ‘걸인들의 산 니콜로 성당’(Chiesa di San Nicol dei Mendicoli)에서 복원사업 제의가 들어와 존으로서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존이 베네치아에 도착하자마자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살루테 성당’(La Salute)을 중심으로 교회들을 돌아보고, 배를 타고 출렁이는 운하를 이동할 때는 행복한 기분이 넘치고, 부부의 불행은 곧 물에 씻겨내려갈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내가 이곳에서 영국 출신의 다른 심령술사를 만나 딸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황당한’ 전언을 듣자, 존은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딸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자 죄책감이 다시 엄습해온 것이다. 이들 부부는 죽음의 불행을 잊고 행복을 찾아 베네치아로 왔는데, 현실은 기대와는 정반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들에게 베네치아는 갑자기 죽음의 도시로 돌변한다. 그 변화는 <쳐다보지 마라>의 유명한 ‘섹스 장면’(부부 사이의 섹스가 베드신 이전의 탈의와 이후의 착복 사이의 교차편집으로 절묘하게 표현돼 있다) 이후에 곧바로 이어진다. 희열의 섹스에 이어 공포의 죽음이 잇따르는 구조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운하 아래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운하 위로는 앰뷸런스 보트들이 달린다. 존은 아내 몰래 딸을 만나기 위해 골목길 같은 작은 운하들, 곧 ‘리오’ 사이를 헤매고 다니는데, 주변의 폐허 같은 오래된 건물들은 방치된 공동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게 죽어 있고, 시간은 과거로 되돌려져 있는 것 같다. 존이 그 공간 속에서 혼자 생각에 잠길 때, 이미 그는 현실 저쪽의 세계로 건너간 듯 보인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도 죄의식의 포로가 된 존에게는 죽음의 폐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관처럼 보이는 곤돌라.

조셉 로지의 퇴폐의 도시

존은 베네치아에 파손된 교회를 복원하러 왔다. 파손된 교회는 상징적인 공간인데, 존의 현재의 처지를 고려하면 그의 가족에 대한 비유법 가운데 하나다. 존은 복원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결국 교회도, 가족도, 어느 것 하나도 원래대로 되돌려놓지 못한다. <쳐다보지 마라>에도 니콜라스 뢰그 영화세계의 일관된 정서, 곧 이성적인 냉정함이 지배하고 있는데, 감독은 사람 사이의 파괴된 관계는 결코 복원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 같다. 특히 그것이 가족의 비극과 연관된다면, 그 대가는 종종 목숨을 요구한다고 말하고 있다. <쳐다보지 마라>에 따르면 죽음의 비극은 죽음을 부른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평생의 테마로 삼은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조셉 로지가 있다. 조셉 로지는 1950년대 매카시즘의 희생양이었다. 아이비리그인 다트머스대학 출신인 로지는 청년 시절부터 진보적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대학 시절 사회파 작가인 싱클레어 루이스의 <도즈워스>(Dodsworth, 이 작품은 1936년 윌리엄 와일러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의 연극 연출을 했고, 1930년대엔 옛 소련에 가서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영화강의를 듣기도 했다. 이곳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만나, 두 사람은 청년의 우정을 나누었다. 전쟁 이후인 1947년 로지는 LA에서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오>를 그와 함께 공동연출했다(이 작품은 로지가 1975년 영화화한다). 이 정도 경력이면 냉전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던 매카시즘 시절, 로지가 미 의회의 청문회에 소환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그만큼 당대는 이성을 잃은 광기의 정치가 최고 국가라는 미국을 비극으로 몰아넣을 때다. 로지는 이때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망명했고, 이탈리아와 영국 등에서 생활한 뒤, 결국 영국에 정착하며 자기 영화 경력의 정점에 이른다.

말하자면 로지는 고국에서 쫓겨난 사람이다. 한때 엘리트로 촉망받던 청년이, 혹은 세상의 정점을 향해 겁없이 달리던 청년이 졸지에 동포들로부터 의혹과 배척의 대상이 되는 허망한 추락을 경험한 것이다. 20대 때 이미 재능을 보여, 미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싱클레어 루이스의 강력한 추천을 받았는데, 이제 예술가로서 가속도를 내야 할 40대에 ‘버림받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로지는 사람 사이의 관계의 변화, 특히 권력관계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다. 그가 영국에서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는 청년 작가 해럴드 핀터와 협업하며, ‘권력 3부작’, 곧 <하인>(1963), <사고>(1967), <사랑의 메신저>(1971)를 발표하며 경력의 정점에 도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테다.

로지가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 ‘3부작’ 바로 직전에 발표된 <에바>(1962)다. 역시 권력관계를 다룬다. 말하자면 부르주아 사회의 권력의 장치들, 곧 돈, 명성, 지위 같은 것들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풍자하는 부조리극이다. 그럼으로써 서구 사회, 곧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관 전체를 의문의 대상에 부치는 내용이다. 에바(잔 모로)는 프랑스 출신의 고급 매춘부다. 로마에 사는 에바는 늘 부유한 중년 남자들의 애인 노릇을 하며 화려한 일상을 즐긴다. 타이(스탠리 베이커)는 최근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영국 문학계의 신예다. 그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 베니스영화제에 초대되어, 신예는 이제 스타로의 진입을 막 눈앞에 두고 있다. 타이는 영화제의 초대 손님으로, 에바는 돈 많은 애인의 요청에 따라 베네치아에 왔다.

누가 봐도 두 사람의 수직적 권력관계는 명확해 보인다. 타이는 자신의 명성과 돈, 그리고 젊은 외모를 의식하며 에바를 압도한다. 당장 그녀를 정복할 태세다. 그런데 ‘사랑의 프로’답게 에바는 타이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문제는 타이가 에바를 본 순간 진짜 사랑에 빠진 점이다. 비싼 옷과 보석들로 장식한 에바가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를 듣는 모습은 세련된 도시 여성이 보여줄 수 있는 퇴폐미의 극치 같다. 타이가 집착하자 관계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에바가 베네치아의 최고급 호텔인 ‘다니엘리 호텔’(Hotel Danieli) 등에서 다른 부자 남자친구들을 달고 다니며, 타이의 돈을 업신여기고, 명성마저 얕잡아보자 둘의 관계는 역전되고 만다. 돈과 명성, 그리고 스크린의 화려한 불빛을 상징하는 도시 베네치아, 바로 여기서 남자는 자신의 명성과 부, 그리고 사랑까지 잃어버린다. 부귀와 명성, 그리고 지위 같은 권력의 도구들은 사랑 앞에선 잠깐 갖고 놀다 버릴 한낱 장난감처럼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 권력의 도구들을 아무 의미가 없는 티끌처럼 만들어버리는 도시가 베네치아인 셈이다. 말하자면 베네치아는 통념으로서의 권력의 도구들이 넘치는 도시다.

<베니스에서의 죽음> 동틀 무렵의 살루테 성당.

루키노 비스콘티가 그린 베네치아의 ‘품위’

베네치아가 영화적 명성을 얻은 데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그는 1954년에 <센소>를 발표하며 베네치아의 아름다움, 특히 푸른 밤의 마법적인 매력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그가 다시 베네치아를 찾은 것은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을 통해서다. 토마스 만은 소설에서 예술이 도달해야 할 목표의 하나로서 ‘품위’를 꼽았다. 곧 예술의 최종 목적지 가운데 하나는 결국 품위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베네치아라는 공간을 품위의 수준으로 각인시킨 작품이 바로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영화는 배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한다. 토마스 만에 따르면, 베네치아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기차역은 왠지 뒷문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게 하고, 그만큼 베네치아는 육지가 아니라 바다를 통해 처음 접할 때 그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바다를 통해 베네치아로 들어갈 때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으로 도입부를 연다. 동틀 무렵 베네치아의 바다와 하늘은 마치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풍경화처럼 연붉은색과 청회색으로 뒤덮여 있다(실제로 터너는 수차례 베네치아를 여행했다). 이곳이 베네치아임을 알리기 위해, 화면에는 ‘총독궁’(Il Palazzo Ducale), ‘산 마르코 성당’(La Basilica di San Marco), 그리고 ‘살루테 성당’(La Salute)의 자태가 빛난다. 말하자면 도입부는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알게 한다.

그런데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 곧, <교향곡 5번> 4악장 때문인지,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도입부는 화려하기보다는 멜랑콜리가 압도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해 베네치아로 휴양을 온 작곡가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더크 보가드)이다. 아마 심신이 쇠약해진 그의 눈으로 베네치아를 바라보는 것도 멜랑콜리의 또 다른 이유가 됐을 터이다. 이 중년 남자가 베네치아의 리도섬에서 소년 타지오(비요른 안드레센)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비스콘티는 사랑에 빠진 이 남자의 감정의 변화를 묘사하는 데 더 몰두하고 있어서다. 병약한 그가 사랑의 기쁨을 어렴풋이 느낄 때 카메라는 대단히 느리게, 해변에서 흥분하여 떠들고 뛰노는 사람들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한다. 느리게 호흡하는 노인의 속도로 화면은 천천히 사물들을 잡는다. 비스콘티는 이런 느린 리듬, 곧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의 느린 속도(Adagietto)로 베네치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느리다는 것, 또는 느릴 수 있다는 것은 품위의 덕목 가운데 하나일 터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품위 있다면, 그것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베네치아를 바라보는 시선의 느린 속도일 것이다.

이탈리아가 인류의 문명에 기여했다면 그것은 예술과 문화에서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감독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말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이탈리아에 대해 썼다. 다음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를 여행하겠다. 물론 그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쓴 작품들을 각색한 영화를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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