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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 <들꽃>
정지혜 2015-11-04

소녀가 한 남성에게 무지막지하게 얻어맞으며 처절한 절규를 내지른다.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한 수향(조수향)과 은수(권은수)가 달려들어 소녀로부터 남자를 떼어놓는다. 한바탕 격렬한 사투 끝에 수향은 눈치챘다. 이 소녀 역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집을 나와 거리를 헤매는 아이라는 것을. 수향이 소녀에게 이름을 묻는다. 소녀는 16살의 하담. 역시나 갈 곳이 없다. 그길로 세 소녀는 함께 몸을 누일 곳을 찾아나선다. 가출 청소년들이 갈 만한 곳이란 어딜까. 허름한 여관방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곳마저 아이들을 팔아넘길 속셈으로 가득 찬 이들투성이다. 소녀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무리에는 수향과 과거 인연이 있는 태성(강봉성)도 있다. 수향을 좋아하지만 그녀를 고통 속에 밀어넣으려는 사람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소년이다. 그게 괴로워 태성은 점점 더 자신을 망가뜨린다. 이들의 감금과 폭력에 시달리던 소녀들이 탈출에 성공해 이른 곳이라고는 철거가 임박한 창문조차 없는 폐가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잠시나마 안온한 미래를 그려보지만 마음이, 현실이 녹록지 않다.

<들꽃>은 박석영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가출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루되 그들이 집을 나와 이곳에서 생활하게 된 배경이나 이유를 굳이 캐묻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그들과 그들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아이들의 고독을 들여다본다. 그래서인지 카메라는 아이들을 앞서가기보다 늘 아이들의 뒤를 쫓거나 옆에 서서 인물의 감정을 따른다. 아이들이 힘겹게 세상 사람들과 맞설 때는 카메라도 따라서 격하게 흔들리고, 믿었던 관계에 상처받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때는 클로즈업으로 세밀한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거친 세상에 나온 소녀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잠을 청할 때나 팔짱을 끼고 온기를 나눌 때는 보는 이도 잠시나마 안도한다. 하지만 이들의 교감이 계속될 수 있을지 노심초사하게 된다. 오랫동안 세상에서 혼자로 살아온 아이들인 만큼 친구보다 자신을 먼저 지키기에 급급한 순간들이 있다. 그런 장면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영화 속 소녀들에게서 쉽게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영화의 만듦새는 다소 거칠고 투박할지라도 연약하고 힘없는 이들의 깊은 눈과 그 안의 감정을 들여다보길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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