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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는 스릴러 <이스케이프>
이예지 2015-11-04

수도회사에서 일하는 잭은 가족과 함께 동남아의 한 국가에 파견을 온다. 인터넷은커녕 TV도 나오지 않고, 회사와도 연락 두절인 상황에서 제4세계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잭(오언 윌슨)과 가족. 불길한 예감 속에서 무력 테러가 일어나고, 반군은 외국인들이 머무는 호텔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무차별적인 공격 속에서 가까스로 호텔을 빠져나온 잭과 가족은 현지 사정에 능통한 해먼드(피어스 브로스넌)를 만나 지옥 같은 도시를 빠져나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스릴러로서는 타이트하고 군더더기 없이 잘 빠진 경량의 영화다. 낯선 이국에 고립된 긴박한 상황은 피부로 와닿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번번이 절체절명의 위기다. 그러나 마냥 스펙터클을 즐기기엔 불편하다. 영화는 동남아의 한 국가를 열등하고 미개한 국가로 묘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반군을 필요 이상으로 비인간적이고 극악무도한 무리로 그려낸다. 대상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듯, 해먼드의 입을 빌려 반군이 폭동을 일으킨 까닭은 “미국 기업이 수도사업을 장악해 국민을 노예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달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비판적 자의식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기만적으로 느껴지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선량한 미국인 아버지는 아내와 두딸을 지켜내려 하고, 동남아 반군들은 까닭 없이 잔혹하기만 하다. 미 자본이 제4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을 오로지 미국인 가장이 위기에 처하는 장치로만 이용하고 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군더더기 없는 것에서 나아가 정치적 올바름마저 잃어버린 초경량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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