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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에 기대지 않는 품위 있는 가족 드라마 <사일런트 하트>
윤혜지 2015-11-18

주말이 지나고 나면 가족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엄마 에스더(기타 노비)는 크리스마스를 몇달 앞두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가족들을 불러모은다. 근위축성측삭경화증(루게릭병) 진단을 받아 전신이 마비되기 전 자발적으로 생을 마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엄마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한 가족들은 에스더의 바람대로 즐거운 가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과감한 유희를 즐기고, 감춰둔 얘기들을 꺼내기도 한다. 행복한 이 시간과 곧이어 올 엄마의 죽음, 그 간극을 버텨낼 자신이 없는 둘째 산느(다니카 쿠르시크)는 괴로워하고 큰딸 하이디(파프리카 스틴)가 산느를 달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하이디마저 엄마의 결심을 되돌리기로 마음먹는다.

<사일런트 하트>는 존엄사를 선택한 개인의 결단을 가족이 함께 지켜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욕실 바닥에 떨어진 립스틱을 줍기에도 힘겨운 몸이지만 에스더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기어코 립스틱을 주워 입술을 칠하고 만족해하는 에스더의 모습은 자못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법한 소재를 선택했음에도 빌 어거스트 감독은 얄팍한 동정에 기대지 않고, 소재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가족 드라마를 완성한다. 그 어떤 혼란스러운 순간도, 감정의 격동도 빌 어거스트 감독이 조율하는 프레임 안에선 그저 묵묵하게 흘러갈 뿐이다. 어긋나 있던 가족들은 구심점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가 맞물릴 지점을 찾아내 온전한 결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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