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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깨고 명창이 되고자 꿈꾸었던 소녀 <도리화가>
이화정 2015-11-25

병든 여자는 죽기 직전 자신이 몸담았던 기생집을 찾아가 어린 딸 채선(수지)을 맡긴다. 그렇게 기생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던 아이는 우연히 저잣거리에서 동리 신재효(류승룡)의 판소리 공연을 보게 되고, 그길로 마음을 뺏긴다. <도리화가>는 여성에게 판소리가 금기된 조선시대, 금기를 깨고 명창이 되고자 꿈꾸었던 한 소녀의 성장담이 큰 줄기다.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와 조선 최초의 여성 소리꾼으로 알려진 진채선은 실존 인물이지만, 후대에 알려진 사실은 별로 없다. 이종필 감독은 1867년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소리꾼들을 위해 열었던 경연 ‘낙성연’의 기록과 신재효가 진채선을 위해 지은 단가 <도리화가>를 실마리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소리꾼이 되고 싶었던 진채선의 꿈은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조선 말 변화의 시대와 맞물려 있다. 당시 여성인 진채선을 판소리꾼으로 길러내는 건 신재효에게는 목숨을 건 모험이다. 입신양명을 꿈꾸었으나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던 자신과 달리 재능 있는 제자에게만은 그 모순의 세상을 겪지 않게 해주려는 스승의 마음이다. 남성에게만 허용된 세계인 변검술을 뜻하지 않게 소녀에게 계승하게 된 <변검>(1995)의 변검왕처럼 신재효는 그런 시대적 난관에 봉착한 인물이다. <변검>이 유사 부녀관계를 형성하면서 이 계승에 일조한다면, 신재효와 진채선 사이에는 재능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연인의 감정이 작동한다. <도리화가>는 소리꾼 진채선의 성장담을 그린 전반부에 이어 후반부를 이 멜로 코드에 할애하는데, 그 변화가 극의 전체적 흐름을 방해한다. 판소리에 능했던 대원군(김남길)은 진채선의 소리를 평가하는 대신 ‘예뻐서’ 곁에 두려 하고, 신재효는 계급에 밀려 그 결정에 불복한다. 영화적 절정의 순간, 정작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했던 여성 진채선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시대적 한계로 설명하기에 다소 무책임한 전개다. 진채선의 역경이 큰 시련 없이 실현된다는 점, 주변 인물과의 갈등 요소가 별다르게 부각되지 않는 점 등 전반부의 평면적 전개도 아쉽지만, 성장담을 뒤흔드는 후반부의 전개가 더 큰 오점이다. 판소리라는 힘든 과제를 ‘착실히’ 전개함에도 배수지의 연기가 전율을 주지 못하는 건 이 설계의 맹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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