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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기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 <대호>
이화정 2015-12-16

지리산을 지키는 영험한 산군(山君),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섬김의 대상이었다. 1925년 일제강점기, 박제 수집가인 일본군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는 대호의 가죽을 손에 넣으려고 혈안이 된다. 물불 안 가리는 이 야욕의 한가운데, 출세와 돈에 눈이 먼 조선인 출신 장교 류(정석원)와 구경(정만식)을 비롯한 조선의 포수들 역시 가세한다. 그러나 아내를 잃고 늦둥이 아들 석(성유빈)과 단둘이 살아가는 지리산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은 이 광기의 행렬에 동요하지 않는다.

대호를 잡지 않겠다는 천만덕의 원칙은 곧 일본인이 조선 땅을 ‘더럽히기’ 전, 지리산의 포수들이 묵묵히 따르던 룰이었다. 그건 “시대가 시대니 돈 되는 일을 하자”는 신세대 아들의 다그침에 “잡을 놈만 잡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아버지’로서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하지만 물질이 정신에 앞서는 시대의 변화 앞에서 이는 외고집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천만덕은 힘겹지만 혼탁한 세상에 물들지 않게 아들을 지키려고 하고, 이 의지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새끼 호랑이를 지키려는 대호의 마음과 상통한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의 최후는 결국 일본인의 조선인 말살 정책이라는 ‘절대 악’의 탓으로 귀결되지 않으며, 천만덕의 존재 이유 역시 그 혈전에 있지 않다. 공공의 적을 빼버린 <대호>의 결말은 그래서 기대한 통쾌함보다는 숙연함에 더 가까운 감흥을 안긴다. 눈 덮인 설산의 위용, CG로 구현한 호랑이, 포효하는 사운드, 장중한 음악은 2015년 한국영화의 기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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