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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배우들이 함께한 시간
이화정 2015-12-24

아야세 하루카, 히로세 스즈, 나가사와 마사미, 가호 인터뷰

가호, 아야세 하루카, 고레에다 히로카즈, 나가사와 마사미, 히로세 스즈(왼쪽부터).

세 자매가 진통을 겪으며 넷이 되어가는 순간, 그렇게 또 ‘하나의’ 가족이 형성된다. ‘자매’라는 특수한 여성의 코드와 디테일은 배우 아야세 하루카, 히로세 스즈, 나가사와 마사미, 가호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그들을 곁에서 세심하게 관찰하고 역할과 접목시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협업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일본영화계의 주축인 아야세 하루카부터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 점차 연기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나가사와 마사미와 가호, 이번 영화에서 발견된 신성 히로세 스즈까지, 네 배우에게 고레에다 감독과의 이번 작업에 대해 들어보았다(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정해진 대본대로가 아닌 현장에서, 혹은 배우들의 말투를 통해 새롭게 대본을 꾸리는 방식으로 작업하기로 유명하다. 이번 작업은 어떤 경험이었나.

=아야세 하루카_보통은 ‘촬영 들어갑니다-’라는 느낌으로 촬영이 시작되는데, 이번 영화는 촬영이 아닌 일상처럼 느껴져 촬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더라.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것 묘한 기분이었다. 긴장한 채 연기를 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일상을 지냈다는 느낌이다.

히로세 스즈_<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대사가 없는 부분의 표정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장소’에서 만들어져 나간다는 건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그렇게 연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막상 현장에서 대본을 받지 않고 연기를 했더니 이런저런 의식을 할 틈이 하나도 없더라. 뭔가 찍고 있구나라고 느끼긴 했지만 스스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가사와 마사미_고레에다 감독님과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인데 그의 현장에 있는 스탭들은 그곳에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감독님은 유연한 부분은 한없이 유연해서 각자의 생각들을 모두 들어주지만, 하고 싶은 것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분이라 짐작하기 어렵다. 무척 상냥한 분이다 싶지만, 결국 감독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는 채 촬영이 끝나버린다.

가호_촬영하기 전, 촬영지인 집에서 다 함께 밥을 만들어서 먹기도 하며 그 장소에도 익숙해지고 넷 사이의 관계도 깊어지게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을 하지 않을 때에도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며 모두 현장에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겼다. 가족처럼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된 드문 현장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만들기 때문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구나 생각이 들더라.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감독이 각자에게 요구한 지점과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아야세 하루카_특별한 건 없었는데, 목소리를 너무 드세게 내지 말라고 하셨다. 만화의 사치는 동생들에게 “이 녀석이!”와 같은 대사를 하는 억척스러운 이미지지만, 감독님은 좀더 소곤소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만화와 비교해 제법 참한 언니로 표현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히로세 스즈_감독님의 특별한 요구는 없으셨다. 스즈가 줄곧 자기 안에 담고 있었던 것, 숨기고 있었던 기분을 발설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거기서 제어를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인 자신으로 돌아가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서의 스즈의 감정에 공감하면서도 표현이 어려웠다.

나가사와 마사미_“요시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가마쿠라의 집이 아닌, 남자친구의 집과 같은 바깥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다”라는 조언을 받았다. 어려운 점은 요시노에게 정의의 기준은 어디인가, 하는 점이었다. 술과 남자를 좋아하고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빠와 엄마를, 그리고 언니를 보며 자신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는 요시노의 마음이 순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호_고레에다 감독님이 사전에 네명이 지낼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연스레 치카의 역할과 다른 자매들과의 관계들을 만들어갔다. 치카의 개성도 의상 미팅과 헤어스타일을 정해가며 잡아나갔다. 고레에다 감독님이 원작을 너무 의식하진 말라고 말씀하셔서, 원작을 파고들기보다는 대본에 더욱 집중했다.

-고레에다 감독이 발견한 각자의 모습이 캐릭터에 반영된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아야세 하루카_사치는 큰언니이기 때문에 “간장 너무 많이 뿌렸잖아”라는 등 여러 가지 주의를 주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평소의 나는 늘 오빠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입장이어서 그런 대사를 하는 것이 부끄럽더라. 사치는 여러 가지를 마음속에 담아두는데 난 오빠에게 곧장 상담하는 스타일이라 사치 같은 완고한 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촬영을 하고나니 사치라는 인물이 자연스레 나에게 들어와 있더라. 친구에게 내가 “그런 건 안 하는 게 좋아” 같은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웃음)

히로세 스즈_만약 내가 스즈였다면, 처음 만난 언니들과 산다고 선택하진 못했을 것 같다. 자신의 존재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곳에 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참아서 끝나는 일이라면 그냥 그렇게 하자, 라고 생각하는 스즈의 용기가 대단해 보였다. 난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 타입이라서, 생각해보기 전에 우선“같이 밥먹어요!”라고 말해버릴지도 모른다. 맛있는 걸 먹다보면 고민거리 같은 건 사라져버린다. (웃음)

나가사와 마사미_요시노는 싫은 일이 있어도 술을 마시고 다음날 잊어버린다. 그 점이 몹시 부럽다. 단념이 빠른 스타일이다. 그런 부분이 나와는 대조적이다. 나도 앞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용기가 생겼다.

가호_감독님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라는 지시를 하기보다,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원래의 장점을 넓혀주신다. 그래서 원작의 치카보다 더 나 자신에 가까운 치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인물들의 관계가 각각 얽혀 있다. 첫째와 막내, 첫째와 둘째, 셋째와 막내, 집 나간 엄마와 막내 등이 각각 서로 부딪히면서, 단순하지 않은 관계의 그물을 형성해 나간다. 한명의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다양한 시선과 디테일한 연기가 요구되었을 텐데.

=나가사와 마사미_네 자매에게 모두, 자매라는 각자의 역할에 또 하나의 가족이 더해졌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첫째가 아버지, 둘째가 엄마, 셋째는 할머니, 스즈는 아기 같다고 할까. 무언가를 결단해야 할 때엔 언제나 사치가 가족의 일을 생각하며 앞장서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곤 하지만, 그럴 때 “이걸로 괜찮은 거야?”라고 요시노가 참견하고, 또 치카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모두의 기분을 풀어주고, 스즈는 망설임 없이 안심하고 따라가는 분위기다. 가족이란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도와가며 사는 것이라고 새삼 느꼈다.

히로세 스즈_스즈 앞에서 하기 껄끄러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언니들의 엄마가 꺼내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뒤에서 대사 없이 앉아 있는 모습만 보여지는데,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푹푹 찌르며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손을 멈춘다. 고레에다 감독님은 그런 섬세함까지 보고 계셔서,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호_고레에다 감독님도 네명 사이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촬영 전에 네명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셨다. 특별히 대본 작업 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 적은 없는데도 감독님의 관찰력은 날카로운 것 같다. 촬영 전, 꽃구경을 겸해 만나는 자리를 가졌을 때에도 넷이 함께 있는 장소나 대기실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대본을 고쳐 쓰고, 에피소드를 더하곤 하셨다. 특히 대본 내용은 촬영 중에 매일 변경되었다. 보통 대본이라고 하면 문어체에 가까운 대사가 되어버리기 쉬운데, 감독님은 일상의 대화를 소중히 여기며 대사로 만드는 스타일이다.

-장녀인 사치는 바람 나 집 나간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정작 본인이 같은 윤리적 문제에 봉착해 있다. 사치가 가진 복잡한 심경을 어떻게 표현했나.

=아야세 하루카_복잡한 감정을 깊은 부분에서부터 끌어낸다기보다 사치 또한 그냥 한명의 여자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진 상대가 어쩌다보니 기혼자여서,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만 상대방에게서 느끼는 만족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거다. 그래서 동생들을 보살피는 것, 일과 일상생활 속에서 결정을 보류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스즈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 사치에게 있어서도 스스로를 다시 보게 되는 기회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막내 스즈는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 속 일찍 철든 아이들 같은 역할이어서 관객에게도 내내 마음이 쓰이는 캐릭터다.

=히로세 스즈_아이이지만 아이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빼앗겨서 곧장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다. 하지만 동시에 열다섯다운 모습도 가지고 있으려고 의식하며 연기했다. 현장에서도, 나 혼자만 나이 차이도 크고 해서 처음에는 굉장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웃음) 하지만 언니들이 카메라가 돌고 있지 않을 때에도, 영화에서처럼 나를 받아들여주시더라. 그래서 긴장하거나 신경 쓰는 일 없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다.

-둘째 요시노는 부모를 대신해 가족에 대한 부담이 큰언니보다 자유분방하다. 둘째가 가진 자유로운 연애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했나.

=나가사와 마사미_요시노의 말처럼 남자친구가 생기면 세계관이 바뀐다고 하는 점에는 무척 공감한다. 그것이 지나가는 사랑이라고 해도,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가치관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친구가 생기고 남자친구가 생기며, 그전에 가족이라는 것이 있고, 이후에 아이를 가지게 되는, 사람과 만나고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영화뿐만 아니라 TV드라마와 광고 등에서 아야세 하루카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후배 배우들에게는 하나의 모범으로 작용할 것 같다.

=아야세 하루카_최근 들어 후배 여배우들이 상담을 해오는 일이 늘었다. 이제 현장에 가면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 더 많아졌다. 그런 환경의 변화 때문도 있겠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의지가 된다는 건 기쁜 일이다. 나 나름의 경험을 아낌없이 전달해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의 씩씩하고 당찬 아키 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기존의 귀여운 소녀 이미지를 벗고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나가사와 마사미_개인적으로 중국영화에 출연하고 싶고, 얼마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영화에도 출연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아시아는 무척 넓지만, 각 나라가 서로 영향을 받아가며 지금의 모습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가능하다면 아시아 전체가 힘을 모아 만든 작품을 보고 싶다. 국적이 다르다는 것은 서로의 개성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음 작품은 미타니 고키 감독이 각본을 쓴 일본의 TV 대하드라마다. 해외에도 송출되는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거라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2007)의 소요가 보여준 청순한 모습이 강렬하다. 소녀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 작은 변화에도 팬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담도 클 텐데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며 나아가고 있나.

=가호_스무살이 되었을 때(가호는 1991년생이다.-편집자)에는 기존 이미지와 다른 역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스스로의 이미지와 다른 연기를 하면 많이들 놀라곤 하는데, 그 반응이 재밌다. 스스로도 즐기면서 하는 편이 즐겁게 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배역이 주는 이미지의 영향력이 크니 너무 다른 역만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그저 나처럼 보이는 역이 아닌, 생활의 냄새가 느껴지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2013년에 연기를 시작해 아직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데, 이번 작품에서 많은 매력을 보여주었다.

=히로세 스즈_처음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그 언니들 속에 내가 들어간다고?’라며 놀람과 기쁨이 동시에 들었다. 엄청난 곳에 발을 들여놨구나 싶더라. 현장에서 언니들이 많이 귀여워해주셔서 무척 즐거웠다. 나도 언니들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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