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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면, 영화에 있었나?
이주현 김성훈 2015-12-31

B컷으로 되돌아보는 2015년 한국영화 10편

“영화를 만드는 일은 갈등하고 의기투합하길 반복하며 같은 지향점을 향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영화현장은 사회 안의 또 다른 사회다.” 인터뷰 중 임훈 스틸작가가 들려준 얘기다. 현장에선 무수한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만 접하게 되는 관객은 영화의 ‘바깥’을 좀처럼 체감하기 힘들다. 스틸작가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들이고, 그들이 발로 뛰어 건진 사진 한컷, 대상에 애정을 쏟아가며 찍은 사진 한컷이 때론 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홍보용 A컷으로 선택받지 못한 B컷 스틸,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미공개 현장 스틸들을 모았다. 사실 지면에 싣지 못한 사진들이 더 끝내주는데 아직 그 사진들은 세상의 빛을 볼 때가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암살> <사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스물> <간신> <검은 사제들> <무뢰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베테랑> <내부자들> 이상 열편의 영화현장을 구경해보길.

<암살>

이재혁 스틸작가

인증숏을 절로 부르는 미쓰코시 백화점 세트의 위용에 전지현도 카메라를 들었다. 1930년대 미쓰코시 백화점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놓은 세트장은 동아방송예술대학 내 종합촬영소에 세워졌는데 “영화에서 보이는 것만큼이나 세트장의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든 전지현의 모습은 박물관 관람객의 모습처럼 보인다. 한편으론 놀라움을 내색하지 않는 담담한 표정이 안옥윤의 표정처럼도 보인다. 곧 저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 1930년대를 살았던 한 여인이 되어 안경을 맞췄을 것 같은.

안정적인 자세로 자전거를 타며 수류탄을 투척하는 이는 바로 최동훈 감독. 영화에선 독립군 황덕삼(최덕문)이 수류탄을 던지는 것으로 나오지만, 차량 아래로 정확히 수류탄을 던지는 게 은근히 어려워 “재주 많은 최동훈 감독”이 대신 수류탄을 던져 인서트컷을 완성했다고 한다. “감독님이 재주가 참 많다. 특히 손재주가 좋다. <타짜>에서 평 경장(백윤식) 집에서 고니(조승우)가 밑장 빼기 연습할 때 카메라에 잡힌 손도 최동훈 감독님의 손이다.” <타짜>의 스틸작가이기도 했던 이재혁 작가의 증언이다. 감독이 되려면 숨겨둔 재주 하나쯤은 있어야 하나보다.

친하면 닮는다. 생각도, 행동도 닮아간다. <도둑들>과 <암살>로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최동훈 감독과 전지현 배우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네모네 카페 지하에서 리허설을 하던 중 이재혁 스틸작가의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인데, 촬영할 장면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라고. “전지현씨가 이제는 최동훈 감독의 ‘뮤즈’가 된 것 같았달까. 그리고 전지현씨가 연기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는 많이 놀랐다. 그동안은 다른 매력들이 워낙 출중해 지현씨의 연기에는 덜 집중했던 것 같은데, 정말 내가 과소평가한 배우구나 싶었다.”

“천만 요정 오달수 선배님도 슬레이트 칠 때는 긴장하더라. 자세히 보면 연기할 때와 다르게 경직돼 있는 모습이다. (웃음)” 이재혁 스틸작가의 얘기를 듣고 보니 배우 오달수의 목에도, 어깨에도, 얼굴에도 잔뜩 힘이 들어간 듯하다. “사실 오달수 선배님은 연기할 때도 슛 들어가기 전엔 늘 긴장하신다. 연기할 땐 그렇게 편해 보일 수가 없는데 말이다.” 오랜 시간 카메라 앞에 섰음에도 그렇게 긴장을 한다는 건, 늘 연기가 처음인 듯 마음먹고 집중한다는 뜻일 거다.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 “끊임없이 넘쳐나는 유머로 동료 배우들을 즐겁게 해주는 배우” 하정우가 카메라를 발견하곤 V를 날린다. 몸도 마음도 그 어디에도 매이길 거부하는 하와이 피스톨이지만, 현실에선 와이어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

<사도>

노주한 스틸작가

사도가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인 뒤주를 제작하는 과정. 이준익 감독은 직접 뒤주에 들어가 내부에 빈 공간이 얼마나 남는지 그 크기와 분위기를 확인했다고 한다. “카메라가 뒤주 안에 들어갔을 때 공간이 넓어 보이면 안 되니까 감독님이 사이즈를 좀 줄였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직접 펜을 들어 뒤주의 사이즈와 색깔과 덮개의 모양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모습이다.” 뒤주를 칭칭 감고 있는 꼬인 밧줄도 영조, 사도, 정조의 단단히 얽힌 감정을 상징하는 거라고 한다. 노주한 스틸작가는 “이준익 감독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강승용 미술감독이 이번에도 인상적인 미술을 선보였다”며 <사도>의 소품 하나하나, 배경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모자 챙 안쪽에 글씨가 보이나? 이준익 감독님이 화이트로 사도, 영조, 정조의 이름을 한자로 써놓았다.” <사도>를 준비하는 동안 이 세 인물만 생각하고 살았을 이준익 감독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노주한 스틸작가가 전하는 이준익 감독의 다른 얘기들도 재밌다. “감독님이 성격이 급하다. 모니터를 보다가 배우에게 디렉팅할 게 있으면 맨발로 튀어나가신다. 신발 신는 데도 시간이 아까운 거다. 오케이 컷도 한두 테이크 안에 나온다. 현장에 뒤늦게 합류한 정조 역의 소지섭씨는 감독님의 연출 성향에 적응할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빨리 오케이인가?’ 싶었을 거다. 어떨 땐 오전 촬영이 일찍 끝나 점심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밥을 먹은 적도 있다.” 이준익 감독의 스피드를 따라올 자 누구인가 싶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김진영 스틸작가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 정재영, 유준상, 고아성(사진 왼쪽부터)이 흐뭇해하는 표정을 보니 꽤 만족스러운 장면인가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마지막 시퀀스를 찍고 있는 촬영현장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많은 변수와 현장의 변화를 포용하며 진행된다. 이날도 예정에도 없는 귀한 손님이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김진영 스틸작가는 “전날 저녁 감독님은 ‘아마 내일 찍을 분량이 영화의 엔딩이 될 것 같다’고 하셨는데 다음날 아침, 촬영을 하다가 점심때 갑자기 눈이 내리자 대사를 수정하고 배우들의 동선을 조금 바꿔 찍었다”고 떠올렸다. 아마도 이 사진 다음 상황은 “컷, 오케이, 모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홍상수 감독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모두 얼싸안는 풍경이지 않았을까.

<스물>

정경화 스틸작가

날 따라해봐요~ 이렇게~. 시연만큼 좋은 연기 주문 방법도 없다. <스물>의 주요 배경인 소소반점 세트장에서 세 주인공인 김우빈, 준호, 강하늘(사진 오른쪽부터)에게 몸동작을 직접 보여주는 이 사진을 보면 이병헌 감독은 시연에 도가 튼 게 틀림없다. 표정이면 표정, 연기면 연기 모두 만점. 감독이 몸소 희생하면 현장은 촬영 내내 큰소리 하나 없는 법이라고 했던가. <스물>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이병헌 감독이 <써니>(감독 강형철, 2011)의 스크립터를 했을 때 처음 만났다는 정경화 스틸작가는 “옛날에 알고 있던 이 감독의 모습이 아니라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예전에는 아주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스물>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배우들에게 연기 주문을 하고, 먼저 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을 보니 무척 신선했다”는 게 정 작가의 얘기다.

<간신>

최창훈 스틸작가

추위와의 싸움은 배우들에게도, 스탭들에게도 운명 같은 것이리라. “양수리 세트장에서 수상연회 장면을 찍는 날이었다. 날이 정말 추웠다. 얇은 옷을 입은 운평들 중에는 저체온증 증세를 보인 배우도 있었다. 김강우씨도 너무 추웠는지 리허설 땐 귀마개를 하고 찍었다.” 폭군 연산군(김강우)이 귀여우면 안 되는데, 붉은 용포와 귀마개의 조합이 묘한 귀여움을 안기는 사진이다. 최창훈 스틸작가는 <간신>을 촬영하는 동안 “비도 많이 오고 눈도 많이 왔다”면서 날씨가 촬영에 썩 호의적이진 않았다고 말했다. 극한의 감정을 표출해야 했던 배우들에겐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창훈 스틸작가는 “촬영 쉬는 날엔 감독님과 스탭들이 모여 운동회도 자주 가졌”으며 “힘들었던 기억보다 즐거웠던 기억이 더 많은 현장이었다”고 전했다.

<검은 사제들>

한세준 스틸작가

촬영현장에서 돼지는 통제하기 어렵다. 말귀를 알아듣는 개와 달리 한번 울면 달랠 도리가 없다. 울음소리도 여간 큰 게 아니어서 자꾸 들으면 짜증이 날 정도라고 한다. 천에 감싸인 돼지 클로즈업숏을 찍을 때 특수분장팀이 제작한 돼지 더미를 실제 돼지 대신 투입한 것도 그래서다. <검은 사제들> 소품팀이 현장에서 돼지를 키우느라(?) 고생한 반면, 희한하게 강동원은 돼지를 잘 다루었고 돼지 역시 강동원을 잘 따랐다고 한다. 사진 속 강동원과 돼지, 두 파트너는 걸어가는 장면을 찍기 전에 리허설을 하고 있다. 한세준 스틸작가는 “돼지에 익숙해지는 데 다소 오래 걸리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강)동원씨는 유독 돼지와 사이가 좋았다. 소품팀이 통제를 못할 때 동원씨가 직접 달래기도 했다(웃음)”고 떠올렸다. 영화에서 강동원이 돼지를 안고 뛸 때 돼지의 행동과 표정이 자연스러운 건 그냥 얻어 걸린 장면이 아니었다.

강동원이 부른 성가는 사령을 쫓아내는 데 쓰인 것만이 아니다. 스탭들의 누적된 피로를 말끔히 씻겨낸 노동요이기도 했다. 김 신부(김윤석)와 최 부제(강동원)가 구마(사령을 쫓아내는 가톨릭 예식)를 하는 시퀀스를 찍을 때 스탭들은 많이 지쳐 있었다고 한다. 영화의 내용이 무겁고, 촬영 공간이 좁고 어두웠던 까닭에 체력 소모가 심했던 것이다. 이 사진은 구마 시퀀스 촬영을 앞두고 배우와 스탭이 모여 전체 리허설을 하는 모습이다. 배우들의 동선과 위치를 점검하고, 그레고리오 성가와 대사를 맞춰보기 위한 목적이다. 강동원이 십자가를 들고 성가를 부르자 스탭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엄마 미소를 보인다. “감정 신이라 배우도, 스탭도 쉽지 않은 촬영이었는데 동원씨가 현장 분위기를 많이 띄웠다. 특히 여성 스탭들이 좋아했다(웃음)”는 게 한세준 스틸작가의 설명. 연기도 잘하고, 돼지도 잘 챙기고, 현장 분위기도 잘 띄우는 강동원은 못하는 게 없는 배우다.

<무뢰한>

전혜선 스틸작가

“김남길씨는 현장에서 수시로 카메라앵글을 궁금해했고 ‘화면’에 관심을 보였다. 현장 전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단편(<헬로, 엄마>)을 직접 연출한 적도 있다더라.” <무뢰한>에 이어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 촬영 중)에서도 김남길과 함께 작업 중인 전혜선 스틸작가는 이 사진을 김남길에게 보여주며 물었다고 한다. “이때 무슨 생각하며 카메라 앞에 앉았던 거야?” “내가 영화 연출에도 관심이 많잖아. 내가 직접 (기자와) 통화해서 사진에 대해 설명해줄까?” 김남길의 경계심 없는 마음, 무엇이든 발벗고 나서려 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단번에 느껴지는 한 토막의 대화다. <무뢰한>의 정재곤이 결코 보여주지 않았던 해맑은 표정을 카메라 앞에 앉은 자연인 김남길이 보여주고 있다. 그 옆엔 잠시 김남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준 강국현 촬영감독이 서 있다.

크랭크업하는 날. 전도연은 본인의 촬영 분량이 없었음에도 현장을 찾아 직접 슬레이트를 쳤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애정, 함께 연기하는 배우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면 하지 못할 일이다. 전혜선 스틸작가 역시 “워낙 배우들 사이가 좋았다”고 말했다. 매 순간 완벽을 기하는 전도연, 붙임성 좋은 김남길, 의리를 아는 박성웅의 호흡이 영화에도 그대로 묻어났음은 물론이다. 촬영을 모두 끝낸 후엔 <무뢰한>의 캐릭터 피겨로 장식한 케이크의 초를 불며 다 같이 <무뢰한>의 대박을 기원했다고. “사나이픽처스만큼 배우와 스탭을 최고로 여기는 회사가 없더라. 스탭 한명한명의 생일 케이크도 다 준비해준다. 한재덕 대표가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임훈 스틸작가

취침 점호를 해야 할 상황인데, 긴 머리 풀어헤친 잡옷 입은 소녀들의 두눈이 한없이 초롱초롱하다. 풀숏으로 찍은 취침 점호 장면이 궁금한지 다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김일연 촬영감독 주위로 몰렸다. ‘소녀’들이 절대다수였던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연기 지망생들, 신인 여배우들이 모인 현장이라 다들 적극적으로 연기에 임하더라. 소녀들의 밝은 기운, 즐겁고 맑고 명랑한 기운이 현장을 감쌌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모니터링도 열심이다.

“감독님, 저 몇초 있다가 문 열고 들어오면 돼요?” 영화의 병약한 소녀 주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박보영의 생기 가득한 목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듯하다. 임훈 스틸작가도 “그 모습이 귀여워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임훈 작가의 박보영 칭찬은 계속됐다. “박보영은 진화하는 배우다… 스펙트럼이 넓기만한 배우가 아니라 넓고 깊은 배우다… 옆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박보영이란 배우가 왜 롱런할 수밖에 없는지 알겠더라….” 그러고보니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돌연변이>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등 올해 참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 박보영이다. 그 열정 내년에도 식지 않길.

<베테랑>

김설우 스틸작가

‘황정민 팬클럽’이라고 보기엔 뒤에 서 있는 스탭의 표정이 썩 밝지가 않다. 그렇다고 연약한 여성 스탭들을 집합시켜 그들의 주머니를 터는 현장도 아니다. 실제로 이 사진은 황정민이 미술팀의 어린 스탭들을 일일이 챙기는, 아주 훈훈한 현장이다. 촬영현장에서 황정민의 스탭 챙기기는 각별하다. 짧은 시간 안에 대규모 차량 충돌 신을 찍어야 하는 신세계백화점 앞 8차선 도로에서는 제작부와 함께 “차량을 직접 통제”했고, 무술팀 인원이 부족하면 “류승완 감독과 함께 와이어도 직접 당기”는 배우가 황정민이다. 그만큼 그는 스탭의 도움 없이 배우가 빛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재 그가 연출하고, 출연하는 뮤지컬 <오케피>도 무대 아래에서 묵묵히 연주를 하는 오케스트라 피트에 관한 이야기다. 얼마 전 이 뮤지컬을 보고 온 김설우 스틸작가는 “황정민 선배가 평소 스탭을 챙기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2016년 2월2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편집자).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일까. <베테랑>에서 서도철(황정민)과 조태오(유아인)가 피 터지는 대결을 펼친 명동 거리 액션 신을 찍던 중, 류승완 감독과 배우 마동석(아래 오른쪽부터)이 빵 터졌다. 둘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설우 스틸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사진이 그 유명한 ‘아트박스 사장님’이 탄생한 순간이다. 원래 다른 역할을 맡기로 했다가 먼저 하기로 한 작품과 촬영일정이 겹쳐 <베테랑>에 참여하지 못한 마동석이 “한신이라도 불러주시면 무조건 하겠다”고 약속해 <베테랑> 현장을 찾은 것이다. 현장에서 그의 캐릭터가 아트박스라는 팬시숍 사장으로 결정되면서 프로듀서와 제작부는 “아트박스 본사에 급하게 연락해 브랜드 이름 사용 허가를 받느라 동분서주해야 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아트박스 사장의 매력에 빠지는 데 단 1분이면 충분했다. 이 정도면 올해의 신스틸러라고 부를 만하지 않나.

<내부자들>

김설우 스틸작가

이병헌과 배성우가 옥상에서 라면 먹는 장면을 찍던 날. 이병헌은 라면을 영화 소품 대하듯 하지 않고 한끼 식사처럼 대했다고. “그날 병헌 선배가 라면을 너무 많이 먹어서 식사를 못하러 갈 지경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뜨자 ‘밥도 다 먹었으니 사진이나 찍고 놀아보자’며, 병헌 선배가 자신을 어려워하는 스탭들에게 먼저 인간적으로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 좋은 장면 하나를 건지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이병헌의 빈틈없는 모습에도 김설우 스틸작가는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연기 경력 15년이 넘은 조승우지만 백윤식, 이경영, 이병헌 같은 배우들 사이에선 그저 “막내”일 뿐. 김설우 스틸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조승우는 “뜬금없는 농담과 장난”으로 현장의 긴장된 분위기를 이완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스틸작가의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면 짓궂게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저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현장의 분위기를 생각한, 스탭들을 배려한 속깊은 행동이었던 것 같다.” <내부자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이병헌의 팽팽하게 날선 느낌과 조승우의 여유로움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서였는데, 이 사진들이 안상구(이병헌)스럽고, 우장훈(조승우)스러운 모습으로 현장에서 페이스를 조절했을 두 배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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