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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치열하게 고민하며 연기하고 싶다
이예지 사진 오계옥 2016-01-27

<프랑스 영화처럼> 다솜

건강미와 에너지가 넘치는 걸그룹 씨스타 가운데에 유독 하얗고 새침해 보이는 그녀가 있었다. 강한 콘트라스트 옆에선 때론 은은한 빛이 더 눈에 띄는 것처럼 그녀는 계속해서 시선이 가는 멤버였다. 씨스타의 다솜은 가수로, 또는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연기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었다. 시트콤 <패밀리>에선 이중적인 모범생 우다윤, 일일드라마 <사랑은 노래를 타고>에선 꿋꿋한 신데렐라 공들임, 미니시리즈 <별난 며느리>에선 통통 튀는 걸그룹 출신 며느리 오인영을 맡아 브라운관의 영역을 한뼘씩 늘려온 그녀가 이번엔 <프랑스 영화처럼>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영화는 평생의 꿈”이라고 밝히며 영화 그 자체가 되고 싶어 어린 날 지샜던 밤들을 고백하는 그녀. 영화에 대한 그 미더운 사랑을 지면으로 전한다.

-<프랑스 영화처럼>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신연식 감독은 당신이 연기에 열정이 깊다는 업계 소문을 듣고 영화 출연을 제안했다던데.

=앨범 활동이 끝나면 항상 소속사에다 ‘연기는 언제 시켜줄 거냐’고 졸랐다. (웃음) 시트콤 <패밀리>와 일일드라마 <사랑은 노래를 타고>를 끝내고 나니 또 연기가 하고 싶었다. 마침 <프랑스 영화처럼> 시나리오가 들어와 오디션을 봤는데 신연식 감독이 왜 연기가 하고 싶냐고 묻더라. 연기를 아주 잘할 수는 없어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할 거라고, 시켜만 준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진심을 다해 말씀드려서 출연이 성사됐다.

-4편의 옴니버스로 구성된 <프랑스 영화처럼> 중 두 남자의 대시를 받는 <맥주 파는 아가씨>와 알쏭달쏭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그려낸 <프랑스 영화처럼> 2편에 출연했다.

=<맥주 파는 아가씨>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이십대를 대변하는 역할이기에 무게감을 느꼈고, <프랑스 영화처럼>은 흔히 있는 일이라 쉽게 다가왔다. 후자는 쉬워서 해보고 싶었고, 전자는 어려워서 더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웃음)

-<맥주 파는 아가씨>의 여자는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외형만 보고 호감을 표하는 것은 편견이라고 느낀다. 아이돌로서 이 역할에 공감하는 지점도 있었나.

=그렇다. 외형만 보고 다가오는 남자들은 기대와 어긋나면 실망하면서 떠나가더라. 보기와 달리 내 성격은 다소곳하지 않고 직설적이다. 조신한 척해야 하나 생각해봤지만, 내가 이런 걸 어쩌겠나. 차라리 나에 대해서 빨리 알게끔 오픈한다. 대중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소속사에서 초반에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조신한 이미지로 가라고 했다. 3년간 씨스타 활동을 하면서 조용히 있었더니 존재감이 없다더라. 그래서 예능에 나가 원래 모습대로 말도 많이 하고 털털하게 굴어봤는데, 안 그랬던 애가 왜 이러냐고 하는 거다. (웃음)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이고 나 자신답게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프랑스 영화처럼>에서 종잡을 수 없는 성격으로 남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기용은 어떻게 이해했나.

=나도 겪어본 상황이고, 주변에 이런 친구들이 많다. 기용은 아주 매력적인 여자다. ‘어장관리’를 하는데 본인은 ‘어장관리’인 줄 모른다. 본인이 하는 행동이 남자들을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모르는 거지. 나도 그런 타입 아니냐고? 난 매력적이고 싶은데 주변에서 몰라주는 스타일이다. (웃음) 그런데 기용을 ‘어장관리’하는 여자라고만 볼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전개되는 영화다. 여자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일 수 있다. 이를테면 여자가 발이 아파 남자에게 기대서 구두를 고쳐 신었다. 여자는 정말 그저 발이 아팠던 것뿐인데(웃음), 남자에겐 그녀의 스치는 머리칼, 그 순간 불어온 바람 등 주관적인 맥락이 생겨 설레는 순간이 된다. 여자 입장에서 봤을 땐 오히려 남자가 감정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애매하게 구는 사람일 수 있다. 이 영화를 긴 버전으로 찍어도 재미있겠다. 남자의 시점 반, 여자의 시점 반으로 구성하는 거다. 남자는 호의를 호감이라 생각하고, 여자 시점에서 보면 남자가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는 내용으로. 제목은 ‘착각’. (웃음)

-시트콤 1편, 드라마 2편 등으로 브라운관을 찾았지만 영화는 처음이다.

=항상 영화를 하고 싶었기에 즐거운 작업이었다. 영화는 시간적 여유가 있고, 더 공들여 찍을 수 있어 좋더라. 드라마는 많은 분량을 정해진 시간 안에 찍어야 하지만 영화는 한 신을 종일 찍기도 하고, 어려운 신에 대해선 감독님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영화를 원래 좋아했나.

=영화는 평생의 꿈과 같다. 아버지가 영화를 좋아해 어릴 적부터 고전영화들을 섭렵했고, 중학교 2학년 방학 때는 하루 2편씩 영화를 봤다. 히치콕, 큐브릭, 뤽 베송 감독의 영화를 특히 좋아했다. <레옹>(1994)을 보고는 그 여파에 이틀간 잠을 못 자기도 했다. 나는 아름다움에 민감하고 곧잘 감동하는 사람이다. 좀 쑥스럽지만 예쁜 풍경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을 때가 있다. (웃음) 그런데 영화는 그 속에 음악과 풍경과 서사가 있는 종합예술 아닌가. 그러니 영화에 홀린 거다. 그때 막연하게 든 생각이 ‘영화가 되고 싶다’는 거였다. 그런데 영화가 될 순 없으니(웃음)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3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니는 척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배우의 꿈을 꿨다.

-그런데 씨스타로 가수 활동을 먼저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제안을 받았는데, 가족들은 더 큰 기획사에 가보길 권했다. 오빠가 데려간 JYP 오디션에 합격해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고, 큐브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지금의 스타쉽 엔터테인먼트로 오게 됐다.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가수를 먼저 하고 연기를 해도 늦지 않다고 하더라. 춤과 노래도 좋아했고 당시 17살이었기에 뭘 먼저 해도 상관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씨스타가 아니었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더 늦게 이뤘을 거다. 지금 상황에서 씨스타가 아닌 다솜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이돌 그룹 멤버로서 연기에 도전한다는 건 어떤 일인가.

=씨스타 덕에 출발이 쉬웠던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자격지심도 없지 않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는 노력 없이 뭐든 쉽게 얻어내는 이미지의 대명사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웃음) 그 선입견을 깨려면 정말 잘해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진지한지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오직 연기로만 보여줘야 하니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배우는 배우다>(2012)에서 아이돌 출신 배우 이준과 작업했던 신연식 감독은 ‘다솜은 이준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재목’이라고 칭찬하더라.

=감사한 말씀이다. 이준씨도 연기에 대해 연구를 정말 많이 한다. 나 역시 연기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사실 <프랑스 영화처럼>은 완벽한 준비가 안 된 채 찍은 것 같아 아쉽다. 내 연기에 점수를 준다면 10점 만점에 5점 정도랄까. 연기를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감독님의 연출 때문일 거다. (웃음) 최근에 시나리오를 다시 읽어봤는데 영화를 촬영했던 2년 전, 22살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이 들고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더라. 지금 다시 찍는다면 더 만족스러운 연기를 할 것 같다.

-씨스타 멤버들은 연기 활동을 응원해주나.

=물론이다. 오늘(11일 <프랑스 영화처럼> VIP 시사회) 오기로 했는데 좀 쑥스럽다. <별난 며느리> 때도 멤버들의 모니터가 큰 힘이 됐다. 초반엔 감을 못 잡고 헤매다, 대본을 가져가 멤버들에게 조언을 구해봤다. 솔직히 적당히 망가지면서 예쁘게도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효린 언니가 “이건 어중간하게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다. 널 놔라. 넌 뭘 해도 귀엽고 잘 살릴 수 있으니 자신감과 확신만 가지고 하면 된다”고 충고해줬다. 나 자신을 놓고 마구 망가지면서 연기했더니 감독님도 나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어떤 배우로 거듭나고 싶은가.

=간단하다. 연기 잘하는 배우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뭔지 생각해봤는데, 우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가수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따뜻하고 선의를 지닌 사람들이 하는 연기와 부르는 노래가 사람들에게 좋은 감동을 전달할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우선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웃음)

<프랑스 영화처럼> 중 <맥주 파는 아가씨>

<프랑스 영화처럼>의 두 번째 에피소드로, 술집에서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술을 마시던 시 쓰는 남자(정종원)와 지체장애인 남자(이광훈)는 아르바이트생(다솜)에게 대시한다. 가볍게 치근덕대든 진심을 알아달라고 호소하든 그녀는 냉랭하기만 하다. 대졸의 취업준비생 남자와 지체장애인 남자의 대위법은 다소 불편하게 다가오는 듯하지만 그들을 동등하게 대하며 거절하는 그녀의 모습은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무용론을 이끌어낸다. 타인에 대한 호감은 때때로 편견이기도 하다. “자기 진심은 알아달라면서 왜 내 진심은 보지 않냐”고 말하는 그녀를 연기하는 데엔 걸그룹 씨스타로서 정상에 올라본 다솜이 적격 아니었을까. 호감, 진심 같은 말로 포장된 타인의 얄팍한 판단을 거부하는 그녀의 무심한 듯 피로한 얼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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