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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 이전에 윤동주의 삶이 있었다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6-02-04

<동주> 현장 취재기

강하늘(오른쪽), 박정민(왼쪽)은 <동주>를 통해 처음으로 같은 작품에서 만났다. 같은 소속사(샘컴퍼니) 선후배 사이로 평소에도 잘 알고 지냈다는 두 사람은 강원도에서 함께 뛰는 장면을 촬영할 때부터 호흡이 잘 맞았다고. “형이랑 잘 맞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였다.” (강하늘)

<동주> 촬영현장에서 두 배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준익(가운데) 감독. 그는 <동주> 같은 저예산영화의 현장에는 “돈으로는 메울 수 없는, 마음과 정신과 몸으로 대신하는 충만함이 있다”고 말했다.

연희전문학교 캠퍼스 벽보에 붙은 창씨개명 독려문을 어두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동주(강하늘). 저 멀리서 창씨개명 서류를 나눠주는 녹색 셔츠의 교직원은 <동주>의 제작과 시나리오를 맡은 신연식 감독이다.

창씨개명 독려문을 찢어버리는 동주. 배우 강하늘은 이날의 촬영분이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라고 했다.

“아유,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세포가 막 꿈틀꿈틀하는 생동감이 온몸에 느껴지는데….” 모니터로 배우들을 바라보는 이준익 감독의 얼굴에 흐뭇함이 가득하다. 2015년 4월4일, <동주> 현장의 풍경이다. 바짝 깎은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쓴 교복 차림의 남학생들과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이, 여전히 고풍스러운 옛 건물이 남아 있는 연세대학교 교정을 거닐고 있으니 1930년대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의 전신)의 풍경이 이랬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건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그 어떤 영화의 현장에서도 이토록 많은 수의 젊은 배우들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젊은 배우들이 많은 현장은 처음이다. 너무 좋다. 앞으로는 20대랑만 하고 싶어. (웃음) <사도> 찍을 때도 유아인이가 20대였잖나. 물론 나이 든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관록과 노련함과 깊이감을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윤동주나 송몽규 역할을 맡은 강하늘, 박정민, 이 두 배우에게서 영원히 식지 않는 청춘의 순간이 포착되는 것 같은 느낌? 그 뒤가 없는 삶에 대한 강렬함. 그게 컷마다 느껴지니까 쩌릿쩌릿하지.”

‘청춘’이라는 키워드

지난 2015년은 이준익 감독이 ‘청춘’이라는 새로운 키워드와 함께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 <사도>와 <동주>를 연달아 촬영했다. 조선시대의 왕자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유명 시인.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모두 스물일곱살에 세상을 떠났다. 이준익 감독의 말대로 “그 뒤가 없는 삶”을 살았던 두 청춘의 짧지만 강렬했던 인생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영화를 통해 충분히 탐구된 바는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다르나 <사도>와 <동주>는 어떤 면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삶의 가장 강렬한 순간에서 영원히 멈춰버린 청춘이 주인공이며(영화의 제목조차 그들의 이름이다),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1962)을 주요 레퍼런스 삼아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병렬구조로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사도>와 <동주>의 가장 큰 공통점은, 무엇보다도 사도세자와 윤동주가 그들 자신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도세자의 흔들리는 자아 이면에 영조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듯, 윤동주의 아름다운 시가 탄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동갑내기 고종사촌이었던 송몽규라는 인물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말하는 영화가 바로 <동주>다.

가장 의지했던 친구이자 가장 넘어서고 싶었던 한 사람

지난해 4월4일, 연세대학교에서 진행된 촬영에서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연희전문학교의 졸업가운을 입은 두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강당을 빠져나온다. 앞서는 이가 몽규, 뒤쫓는 이가 동주다. “졸업식날 상장을 던져버리면 어쩌자는 거야?”(동주) “그게 상장이니? 희롱이지!”(몽규) 졸업생들 가운데에서 우등상장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몽규는 친일파 윤치호가 그에게 상장과 함께 <대동아공영권>(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책)을 수여하자 책을 던져버리고 강당을 빠져나온다. 이 장면에서 엿본 동주의 태도는 조심스럽고, 몽규는 단호하다.

이준익 감독은 “같은 동네에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거의 평생을 함께해온 몽규에게 동주가 질투와 열등감을 크게 느꼈을 법한 순간들이 있다”고 말한다. 북간도에서 보낸 유년 시절부터 동주와 함께 문학과 인생, 항일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눠온 송몽규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불운한 천재였다. 동주에게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함께 입학할 것을 권한 이도 그였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처음 당선된 것도 그였다. 연희전문대학 졸업식에서 우등상장을 받은 것도 윤동주가 아닌 송몽규였다. 두 사람은 이후 함께 교토 제국대학에 입학하려 했지만 계획과 달리 송몽규는 입학시험에 붙고 윤동주는 떨어진다(동주는 이후 교토 릿쿄대에 입학한다). 언제나 자신보다 한발 앞서나가는 친구를 바라보며, 윤동주는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을 떠올렸을까. “예술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상처받은 영혼이 숨기 좋은 곳이다. 동주의 여정을 보면 그는 몽규에게 아마 의도치 않은 상처를 많이 받았을 거다. 그러니 그 열패감을 이겨내려고 더더욱 강렬한 시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이 아닌가. 그 힘을 몽규가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한다.”

가장 의지했던 친구이자 가장 넘어서고 싶었던 한 사람. 송몽규에 대한 윤동주의 복합적인 감정을 그가 남긴 시와 접목시키는 건 영화 <동주>의 또 다른 과제였다. 이준익 감독은 상장을 내팽개치고 멀어져가는 몽규와 그를 바라보는 동주의 모습 뒤로, 윤동주의 시 <자화상>의 한 대목이 흐를 거라고 귀띔했다.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윤동주의 시 세계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화두라고 할 수 있을 ‘부끄러움’의 감정, 이 부끄러움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를 영화 <동주>는 윤동주 자신의 내면이 아닌, 송몽규라는 윤동주 세계의 외부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동주>의 현장에서 만난 이준익 감독과 두 주연배우에 따르면, 이 영화에서 소개될 시는 비단 <자화상>뿐만이 아니다. <서시>와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아우의 인상화> 등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들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이 그의 짧은 인생 가운데에서 강렬한 파장을 일으킨 뭇 사건들과 더불어 소개될 예정이라 한다. “시는 시를 쓴 이의 삶의 흔적이지 화자의 조합이 아니”라고 이준익 감독은 믿는다. 그에 따르면, 윤동주의 시 이전에 윤동주의 삶이 있었다. 이는 영화 <동주>를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를 관통했던 인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동주>의 촬영은 캠퍼스 내에서 장소를 옮겨 계속 진행됐다. 이광수를 비롯한 저명인사들이 쓴 창씨개명 독려문이 연희전문학교 벽보에 실리고, 그 옆에서는 교직원이 학생들에게 창씨개명 서류를 나눠주고 있다. “창씨개명을 8월까지 완료하라…. 학교 다니기 힘들겠다.” 친구 처중의 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동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순으로 따지면 이 장면은 동주와 몽규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기 이전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어둠은 자유와 문학, 사랑을 노래하던 캠퍼스에 서서히 그림자를 드리운다. 대부분의 조선인이 창씨개명을 피할 수 없었고,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처럼 윤동주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창씨개명의 여부로 친일의 기준을 논하려는 건 영화 <동주>가 가장 지양하고자 하는 판단의 방식이다. “폭탄을 들고 행동하는 사람만이 독립투사인가. 식민지 시대의 현실을 아파하고 그것에 대해 저항하려는 내면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 적어도 편승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저항의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준익 감독은 식민지 시대를 관통했던 인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어지는 인터뷰 참조)으로서의 윤동주 또한 이 영화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동주>는 오는 2월18일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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