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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하는가

부산국제영화제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며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1996년부터 해마다 빠짐없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하며 곁에서 지켜봐왔던 영화인이다. 현재 부산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그가 현재 영화제를 둘러싼 위기를 진단하는 특별기고문을 보내왔다.

부산국제영화제 해외자문을 맡고 있는 나는,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멀리 런던에서 커져만 가는 불신과 걱정을 안고 지켜봐왔다. 나의 불신과 걱정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 철회를 부산시가 요구했다는 소식과 함께 시작되었고 이후 사태 추이를 보며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부산시의 개입에 대해 영화제가 작품 선정 과정에 대한 개입을 정중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사퇴 압력을 넣는 등 그 공격 수위를 높였다. 이용관 위원장이 사퇴 권고를 거부하자 중앙정부는 한국 내 국제영화제들에 지급하는 국고 보조금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국고 지원금이 대폭삭감으로 이어진 과정이 우연이 아니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부산시는 협찬금 중개 수수료 부정지급 혐의로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사무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 데일리>는 부산시가 검찰 고발을 취하해주는 조건으로 이용관 위원장의 사임을 우회적으로 요구했다고 전했다.

20년 동안 부산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진 빚

영어 속담에 ‘코를 자르려다 자기 얼굴이 다친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다 스스로에게 해를 입히고 만다는 뜻으로, 한국의 ‘제 살 깎아먹기’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이 지구 반대편의 옛 속담은 부산시가 보여준 작금의 행태와 놀라울 정도로 일맥상통한다(부산시뿐만 아니라 파란 기와집에 있는 그들의 정치적 동지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나는 1995년 처음 부산을 방문했다. 당시 한국 최초로 국제영화제를 설립하기 위해 분주히 애쓰던 김동호 현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과 영화제 설립 멤버들의 초청으로 부산을 찾은 것이다. 나의 역할은 부산시장과 부산시 의원들을 만나 (영화제를 비롯한 영화 업계에 몸담고 있는 해외 전문가 입장에서) 영화제가 무엇이고 부산국제영화제 설립을 위해 부산시가 나서야 하는 이유를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당시 시장직을 맡고 있던 문정수 시장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대답했다. 이후 부산시의회는 결국 영화제 지원을 결정했고,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탄생했다.

이후 나는 해마다 부산을 찾고 있다. 때론 일년에 한 차례 이상 부산을 방문하면서 영화제는 물론 부산시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돌아보면 지난 20년 동안 부산시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고 발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 전체적으로 봐도 대한민국 역시 군사정부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완전히 탈바꿈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난 성장 과정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주요한 성장동력이 되어왔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제 해운대에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지하철 노선 확대, 수영만과 해운대를 잇는 광안대교 건설 등 부산시 교통 인프라 확충에 주요한 역할을 했고, 수많은 해외 방문객을 유치하며 우중충하고 지역색 강한 항만도시에서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국제적인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일조했다. 이름도 낯선 ‘부산’이라는 도시는 20년 전만 해도 전세계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수백만명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부산’이란 도시를 알고 있다.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중앙정부와 부산시(의회)가 영화제에 지원한 액수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가치를 부산시에 돌려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작금의 사태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한국이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비용 대비 최고의 성과를 이뤄낸 부산국제영화제를 중앙정부와 부산시가 작정하고 망가뜨리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나랏일을 하겠다고 뽑힌 사람들이 할 일인가? 선출직 공무원들과 고위관료들의 책략과 행태에 유권자들은 그냥 방관하고 있는가? 이 모든 게 나에겐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다. 지구 반대편 서유럽 국가에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 상황의 또 하나의 축인 검찰 고발에 이은 일련의 법적인 과정에 대해선 침묵하기로 하겠다. 그건 한국 특유의 문화적 관료주의와 법률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볼 때 두개의 거대하고 중요한 논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믿으며, 그에 대해 조심스럽게 나의 의견을 피력하려 한다.

첫째, 영화제 운영에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에 대한 문제제기다. 부산시와 이용관 집행위원장과의 대립의 이면에는 정치적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건 너무도 자명하다. 그래서 보수우파 성향의 부산시(장)가 정치적 정적(政敵)인 이용관 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건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다시 말해 프로그램 선정 과정과 영화제 운영에 정치적인 개입을 수용할 수 있는 쉬운 인물로 교체하겠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이는 놀랍지 않은 일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관료들은 나의 고국인 영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언급해야 할 점은, 이런 사고방식은 영화제가 국내외 관객과 서로 교감하고 이를 토대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절망스러울 정도로 무지한 데서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규모가 큰 영화제일수록 조직 역시 복잡하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언급하자면, 영화제는 비즈니스로서의 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 사이에서, 다시 말하면 영화 산업의 이해관계와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가진 문화적 특수성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해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영화산업 관계자(프로듀서, 투자자, 배급업자)와 창작자(감독, 작가, 배우) 양쪽과 모두 소통하고 그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상 이 과정은 그렇게 쉽지 않다. 영화미학에 대한 이해와 영화에 대한 투자와 상영이라는 산업적 맥락과의 균형이 항상 맞춰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쪽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모두 가능한 역량을 갖춘 영화제위원장이나 프로그래머 집단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부산국제영화제는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과 그의 뒤를 이은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리더십과 역량으로 그러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영화제는 또한 국내와 해외영화 사이에서, 그리고 관객이 선호할 만한 대중성과 전문가 집단의 흥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영화시장을 주도해온 할리우드영화와 함께, 전통적인 의미에서 ‘영화’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오늘날 영화란 관객에게 각자 다른 의미로 다가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영화를 감성적이고 경험적 쾌감을 선사하는 화려한 오락물 정도로 보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높은 완성도와 깊은 사고를 지닌 섬세한 예술영화를 선호한다. 어떤 관객은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또는 타 예술 장르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초기부터 관객의 이런 다양한 욕구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헌신과 열정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분야의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전세계 영화인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보이콧할 것이다

물론 정치적인 영역에 대한 이해 역시 전문가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사실 박찬욱 감독과 어떤 사안에 대해 같은 견해를 갖게 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의 의견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있다.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상영 철회 요구를 통해 관련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만들어버린 것은 부산시지 애당초 해당 작품의 상영을 결정한 영화제의 의도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는, 그의 언급 말이다. 문제가 된 작품은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상영하기로 결정한 300여편의 작품 중 하나였다. 그 작품을 상영한다고 해서 부산국제영화제가 다른 다큐멘터리를 배제하고 이 특정 작품만을 홍보하려거나, 영화제 위원장이나 프로그래머들이 해당 작품의 관점을 지지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이유와 근거는 너무도 단순한데, 가능한 모든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는 것은 영화제의 본분이자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것이 의도치 않게 논쟁을 불러일으키거나 누군가에게 굉장히 불쾌한 일이 될지라도, 그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겨냥한 부산시의 전면 공격을 보고 있자니, 과거 이기적이고 편협한 정치인들의 간섭으로 근간이 흔들렸던 한국의 또 다른 국제영화제가 떠오른다. 마치 자신들의 지분이라도 있는 양 행동하던 정치인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의 실패를 기억하는가?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는 영화제를 자신과 소속정당의 홍보도구로 삼으려던 정치인들의 개입과 파워게임으로 초창기부터 휘둘리더니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부산시가 이용관 위원장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 이 기회를 틈타, 시의 눈치를 보며 굽실거리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직을 맡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등장할 거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반면, 전문 지식을 가진 프로그래머들을 포함한 많은 영화제 직원들은 이용관 위원장 사퇴와 함께 영화제를 떠날 것이다. 의욕 넘치는 신임 집행위원장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자들과 새로운 팀을 꾸려 일하려 할 테니 말이다. 동시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아껴온 전세계의 동료들은 영화제를 보이콧할 것이다. 부산시가 저지른 정치적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항의 시위를 조직하게 될지도 모른다. 많은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작품 출품을 거부할 것이며, 기자와 평론가들 역시 부산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을 더이상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것이다. 종국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걸었던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이 바로 ‘제 살 깎아먹기’의 전형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한국 보수정당의 정치인들이 원하는 일인가? 자신들이 고집하는 방법으로 과연 국내외 영화계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이들은 과연 민주주의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단 말인가?

나의 불신과 걱정은 이제 현재의 상황이 지닌 두 번째 중요하고 보편적인 논의를 향한다. 한국의 정치는 1993년, 고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중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한국 사회는 물론 한국 경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한국영화와 TV프로그램, 초고속 브로드밴드 네트워크 등 오늘날 ‘한국’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거개가 1993년 이후 형성된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다원 사회의 모습을 갖추어갔다. 과거와 달리 여성과 소외계층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낮아진 무역 장벽 덕분에 한국 소비자들은 외국 제품과 문화에 대한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손쉬워졌으며,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 역시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자산이자 싸워 쟁취하고, 지켜내야 할 가치들이다.

개인적으로 겪은 일화가 하나 있다. 가깝게 지내는 한국인 중 런던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학교의 강의 수준을 영 못마땅해했는데, 급기야 학교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졸업영화를 만들었다. 그 영화에는 동료 학생들이 자신들을 가르쳤던 선생들을 하나씩 거론하며 교사들의 단점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학교 건물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는 상상으로 끝이 난다. 여기서 묻겠다. 학교는 과연 이 작품을 졸업작품 상영회에서 상영했을까? 당연히 이 작품은 상영이 되었다. 교직원 일부가 상영을 반대했지만, 졸업생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총장의 입장이었다. 겁쟁이처럼 비판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그 학생이 바로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인 김우형 촬영감독이다.

부산시의 고집불통의 정치 술수

물론 이방인인 나는 과거 유신정권 당시의 암흑기를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한다(내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88년의 일로, 최악의 상황은 이미 끝난 후였다). 하지만 러시아, 중국, 싱가포르와 같은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독재정권들의 생리는 잘 알고 있다. 독재정권은 토의나 토론 따윈 믿지 않는 데다 반대의견은 용납하지 않는다. 이들이 권력을 잡은 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반대파들을 만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침묵시키는 것이다. 부산시가 정부에 비판적인 다큐멘터리 상영 취소를 부산국제영화제에 요구한 것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전형적인 사례라 하겠다.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은 1993년부터 이어져온 사회의 변화를 깨닫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것이 분명하다. 이는 검열, 반대의견 잠재우기, 엄격한 사회통제가 가능했던 암흑기에 대한 향수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한국의 미래가 매우 밝다고 한결같이 믿어온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히 밝힌 것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부산시의 미련하고 고집불통의 정치 술수를 보고 있자니, 대한민국이 과거를 향해 퇴행하고 있는 듯하다. 말 그대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