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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검사외전>의 흥행을 보면서
주성철 2016-02-19

“하나의 캐릭터를 이루는 여러 요소를 고민하게 됐다.” 지난 1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있었던 ‘시네마테크 KOFA가 주목한 2015년 한국영화’ 기획전에서, <베테랑>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류승완 감독은 한편의 글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연출자로서는 꽤 아픈 글일 수도 있는데 관객들에게 일독을 권하기도 했다. 바로 한국영상자료원 KMDb ‘영화글’에 실린 홍지로 평론가의 ‘한국영화걸작선’ <베테랑> 비평이었다. 풀어서 요약하자면 이렇다. 황정민이 연기하는 서도철 형사는 ‘싸나이’와 ‘가오’를 입에 달고 사는 가부장이고, 영화 속 여러 설정들로 볼 때 성차별주의자에 인종차별주의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며, 필요 이상으로 공권력을 휘두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폭력 경찰에 가까운데, 그런 인물이 악덕 재벌 2세와의 싸움에 나섰다고 하여 마냥 응원하고 그 승리를 선뜻 환영해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우려였다.

이럴 때 떠오르는 니체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심연 또한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악당을 처단하기 위해 악당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혹은 그 자신이 악당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주인공들(당연히 다 남자들이다)이 한국영화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 이후 등장한, 역시 천만 관객에 육박하는 <내부자들>과 <검사외전>의 경우 심지어 사건 전개를 위해 벌어지는 중심인물들의 잘잘못을 딱히 따져 묻지 않는 지경까지 나아간다. 그 구성의 허술함이 오히려 ‘폭로’와 ‘징벌’의 쾌감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연출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물론 그래서 재밌지만 씁쓸하다. 이럴 때 또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그처럼 정치인과 재벌을 싸잡아 처벌하는 재미에 오히려 조폭은 정의로운 집단이 됐다. <내부자들>에서 상구(이병헌)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동생 이 실장(박진우), 역시나 <검사외전>에서 재욱(황정민)에게 아낌없는 자금을 대는 박 사장(김병옥)의 실체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라고 써보니 ‘글 쓰는 양반 진짜 갑갑하네’라는 소리만 들을 것 같다. 아무튼 요즘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사는 게 팍팍하면 이렇게, 결과만 좋으면 끝이라는 조작된 판타지와 느닷없는 데우스엑스마키나에 기꺼이 영화 값을 지불하게 된 걸까. 얼마나 세상에 못된 놈들이 많으면, 못된 놈들은 어쩔 수 없이 못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또 얼마나 더 큰 비리가 많으면, 사소한 비리 정도는 그저 유머의 방식이 된 걸까. 그래서 <검사외전>의 그 유명한 장면, 사기꾼 치원(강동원)이 제시 마타도르의 <Bomba>에 맞춰 선거운동을 하는 것처럼, 다들 그냥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고 싶어할 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치 그래야 지금 이 ‘헬조선’의 시간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인 양 말이다.

다시 <베테랑>으로 돌아와, 홍지로 평론가는 글의 후반부에 이르러 “그럼에도 어쨌든 이 구제불능처럼 보였던 한 인간(서도철)이 오랜 고생 끝에 조금은 바뀔 조짐을 보였다. 이것이 <베테랑>에서 가장 존중할 만한 부분이자, 여전히 류승완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요인”이라고 썼다. 그래서 소망한다. 비록 괴물 같은 시대를 관통하고 있지만, 조금씩 사람 같은 영화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