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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소년에서 남자로
오승욱(영화감독) 2016-02-23

허영만, 내 안의 진정한 남성성을 일깨운 만화가

<변칙복서>

내 옆자리에 앉은 소년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선생은 없었고, 나와 그 소년은 교실 안에서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유화반이라는 과외수업을 했는데, 한동안 비어 있었던 내 옆자리에 새로 온 소년은 얼굴이 우유처럼 뽀얗고 귀티가 흐르는 얼굴로 입만 열면 “내 팔자에 뭘 더 바란다고”, “이제 내가 죽어야지” 같은 아줌마들 입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뱉어내거나 유행가를 청승맞게 부르면서 그림을 그렸다. “어제는 비가 내렸네. 키 작은 나뭇잎 새로”로 시작되는 윤형주의 <어제 내린 비>였다. 목욕탕의 탕 안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있다가 목욕탕 문을 열어젖히며 “그건 너, 바로 너”를 큰 소리로 부르면서 안으로 들어오던 키 작고 빼빼 마른 깡패소년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 그때까지 내가 본, 일반인이 유행가를 부르는 가장 인상적인 모습이었는데 얼굴이 하얀 미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어제 내린 비>도 인상적이었다. 어린이가 어른들의 노래를 태연하게 부르는 것도 그렇고 연애영화의 주제가를 부르는 것도 그랬다. 노래를 부르다 멈춘 소년은 고개를 돌리며 나에게 영화 <어제 내린 비>를 보았냐고 물었다. 다람쥐처럼 극장을 쏘다니며 영화를 보다가 홍콩 성인영화 <소녀>(召女)를 보았고,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던 <바보들의 행진>도 보았지만 본격적인 성인 남녀의 연애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본 적이 없었다. 남자의 입으로 연애영화를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기에 소년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소년은 누나들이 여럿 있는 집안의 막내였다. 누나들이 많은 집의 소년을 만난 것이다. 소년과 친해진 이후로 나는 윤형주의 <바보>, 뚜아에무아, 현경과 영애의 사랑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위로는 삼촌과 사촌 형, 아래로는 남동생, 어머니를 제외하고 시꺼먼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환경에서 자란 내가 위로 누나들만 있는 친구를 만난 것은 신세계였다. 나는 그 소년의 인도로 임예진, 올리비아 허시, 노라 마오 같은 여배우를 좋아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도 않고 남자답지 못한 행동도 아님을 배웠다. 그래서 왕우나 이소룡 영화를 보고 또 보았듯 올리비아 허시를 보기 위해 <썸머타임 킬러>를 보고 또 보아도 아무렇지 않았고, 임예진이 등장하는 <진짜 진짜 잊지마>를 보러 극장 매표구 앞에 섰을 때는 쑥스러웠으나 다음에 개봉한 <진짜 진짜 미안해>는 당당하게 보러 갔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우리 반 최고의 불량소년이 임예진 영화를 혼자 보러 가기 부끄러웠는지 나를 앞세워 <푸른 교실>을 보러 가기도 했다.

<각시탈>

어느 날 영화를 많이 보러 다니는 내게 관심을 보여 친해진 친구가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그 친구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는 물론이고 홍콩의 영화잡지가 책장에 한가득이었다. 걸신 들린 사람처럼 홍콩 영화잡지를 펼치니 듣도 보도 못한 적룡과 깡따위, 왕우가 출연한 영화의 스틸 사진들이 쏟아져나왔다. 숨도 쉬지 않고 잡지를 읽고 있는데 친구의 고등학생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와 나와 친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한마디 했다. “너희 내 방에서 뭐해?” 그렇다. 그 친구 역시 누나들이 많은 집 막내아들이었다. 양병집과 양희은의 노래를 알려준 친구도 위로 누나들이 셋이나 있는 집 아이였고, 중학교 3학년 때 나에게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게 한 사람은 화실의 고등학교 2학년 누나였다. 누나들과 자란 소년들에게는 남자들과 자란 나와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그들은 내 책가방 속의 무협지를 몰아내고 삼중당에서 나온 이어령의 수필집을 읽게 만들었다. 만화책과 무협지 말고 또 다른 읽을거리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헌책방에서 가끔 노다지처럼 만났던 일본 만화책을 돈만 있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새책으로 살 수 있는 명동의 중화민국 대사관과 코스모스 백화점 사이에 있던 ‘딸라골목’을 알게 되었다. 질 떨어지는 종이와 인쇄 상태의 한국 만화들을 보면 한숨이 나왔던 시기에 나와 같이 동행한 누나들이 많은 소년은 내가 일본 만화책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당시 인기 최고였던 록밴드 키스(KISS)의 화보집을 들어 보이며 “이런 책을 사야지, 어린애처럼 만화가 뭐냐?”라고 했었다. 누나들이 많은 집에서 자란 소년들은 어린애였던 나를, 소녀를 사랑하는 소년으로 만들어주었다.

중학교는 정말 끔찍한 곳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한명의 선생만 상대하면 되었는데, 중학교에 들어오니 교과목 수만큼 많은 선생들이 매 시간 번갈아 들어왔고, 그들이 학생들에게 구사하는 폭언과 폭력은 선생 수만큼 다양했다. 교과목마다 바뀌어 들어오는 선생 중 단 한 사람도 어린 학생들을 슬퍼해주지 않았다. 여선생이 담임인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유일하게 우리에게 매를 들지 않았지만 덩치 큰 같은 반 학생을 반장으로 삼아 그가 우리를 때리게 만들었다. 지은 지 오십년은 넘은 낡고 좁은 교실 안에 칠십여명의 학생들이 들어차 있으니 교실로 들어온 선생들의 첫마디는 “항상 창문 열어”였다. 매 시간 선생이 학생을 패고, 쉬는 시간에는 학생들끼리 악다구니를 쓰며 싸움을 했다. 그런 곳에서 나는 어질어질 바보가 되고 말았다. 초등학생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되던 가죽 허리띠가 교칙 위반이었고, 양말의 색깔까지 정해져 있어서 아침 등굣길 교문 앞에서 자주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친구와 정다워지기 전에 사소한 일로 주먹질을 해서 서로 외로워졌다. 그 시절 그곳에서는 친구를 만들기도 힘들었다. 학교를 무단결석한 학생을 선생이 자신의 시계가 텅! 하고 날아가면서까지 패는 광경을 숨죽이고 지켜보며 꾀병을 앓아 학교를 빠진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 시절에 만난 위로 누나들이 많은 집 소년들은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악당이자 선인인 절대 영웅을 찾다

어느 비오는 휴일. 거의 몇달을 찾지 않았던 만홧가게에 발을 들였다. 사실 몇번 들르긴 했지만 만화들이 전부 시시해 보였고, 황재의 <쾌걸 흑나비>와 <소림사> 시리즈를 빼고는 재미있는 만화들도 별로 없었다. 홍콩 무협영화에서 발을 넓혀 하이틴 멜로영화까지 섭렵하고 텔레비전에서 줄기차게 틀어주던 이탈리아 웨스턴에 홀딱 빠져버렸으며, 무협지에서 한국 소설들까지 발을 넓힌 내가 어린애들이나 가는 만홧가게에서 더이상 재미를 찾긴 어려울 듯 싶었다. 게다가 등굣길에서 만나는 여학생을 짝사랑하기까지 했으니 심심할 틈이 없었다. 내게 만홧가게의 만화는 이미 관심 밖 세상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황재의 신간이 있으면 빌려볼까 해서 들른 만홧가게에서 한복을 입고 발차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는 표지의 만화책을 만났다. <각시탈>이었다. 선 채로 잠깐 읽기만 했는데도 피가 머리 위로 솟구쳤다.

다음주 휴일, 청계천의 만화책 도매상으로 가서 부길문화사판 <각시탈>을 손에 넣었고,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각시탈> 시리즈가 모두 모여 있다는 장충동의 어느 만홧가게에서 전권을 다 보았다. 엄마를 속여 돈을 타내서는 <각시탈> 시리즈를 돈이 되는 만큼 사들이고서야 머리 꼭대기로 솟구쳤던 피가 정상으로 몸속으로 돌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각시탈> 앞에서 누나가 있는 친구들을 사귀며 만들어졌던 그 나이 또래 소년이 당연히 가져야 할 감성은 모두 날아가버리고, 다시 마초 남자들의 비린내 나는 세계로 순식간에 귀환하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는 우리땅>

상하이 어느 뒷골목의 골방 안. 두 사나이가 난로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험상궂은 중국인이 난로 뚜껑을 열어 시뻘겋게 타고 있는 조개탄 하나를 맨 손가락으로 꺼내어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 난로 속으로 툭 집어던진다. 중국인의 건너편에 앉아 중국인을 바라보던 젊은 사내도 난로 뚜껑을 열어 맨손가락으로 조개탄을 꺼내든다. 그러고는 자신의 허벅지 위에 조개탄을 올려놓고 주머니를 뒤져 담배 쌈지를 꺼내어 담배를 말기 시작한다. 어두운 방 안에 살타는 냄새가 진동하고 중국인들이 경악한다. 사내는 표정의 변화 없이 느긋하게 담배를 말아 허벅지 위에 올려두었던 조개탄을 집어 불을 붙이고는 난로 속에 던져넣는다. 이 만화는 이재학 글•그림의 성인만화 <히라소니>의 한 장면으로 내가 처음 본 허영만이 그린 만화였다. 허영만이 이재학의 문하생으로 있을 당시 이재학의 대필로 그린 이 작품은 당시 신문가판대에서 판매되던 성인만화였다.

형과 동생이 있다. 형은 일제의 단발령에 걸려 머리카락을 잘리고 실성해버렸고, 동생은 출세를 위해 헌병대의 조선인 앞잡이가 된다. 동생은 택견의 달인인 복면 괴인 각시탈을 잡아 승진하려 애쓴다. 복면 괴인 각시탈은 원성이 극에 이른 일본인 부자와 상인, 군인, 경찰들에게 테러를 하는 테러리스트다. 하얀 한복 저고리에 바지를 입은 각시탈은 놀라운 무술 실력으로 신출귀몰한다. 각시탈을 잡기 위해 수많은 동족들을 괴롭히던 동생은 드디어 각시탈이 출현한 현장에서 그에게 부상을 입힌다. 핏자국을 따라가는 동생. 각시탈의 핏자국은 자기 집으로 이어져 있다. 집으로 들어가 안방 문을 열면 동생이 쏜 총탄에 죽어가는 형과 그가 벗어놓은 각시탈이 놓여 있다. 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나 좋았다. 일본 만화 <타이거 마스크> <내일의 조> <황야의 소년 이사무>에는 있었으나 당시 한국 만화에는 없었던, 악의 소굴에서 자라나 개심한 인물로 반은 악당이고 반은 선인인 주인공을 한국 만화에서 발견한 것이다. <타이거 마스크>의 완전한 한국판이었다. 중학생 시절에 나는 절대적으로 하나만 꼽으라면 이것이라 말할 수 있는 주인공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질투심도 있었다. 바로 ‘중국 무사나 사무라이. 황야의 무법자들 같은 멋진 캐릭터가 우리에겐 왜 없는가?’였다. 물론 시라소니나 김두한 같은 깡패들의 신화 이야기가 영화와 만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지만 그것들은 뭔가 만듦새가 조악했다.

내가 가장 반한 것은 각시탈이 발차기를 할 때 허영만이 그린 한복 바지의 모양새였다. 몸에 딱 달라붙은 그런 바지가 아니어서 각시탈이 발차기를 하려고 발을 공중으로 들어올리면 발을 중심으로 허리까지 삼각형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각시탈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옷고름과 한복 자락이 펄럭인다. 그것이 각시탈의 움직임에 활력과 우아함을 더해주었다. 복면을 안 썼을 때에는 바보 노릇을 하다가 탈을 쓰면 잔혹한 응징자로 변하는 캐릭터도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각시탈의 완전한 포로가 된 것은 부길문화사판 <각시탈> 하권에 부록처럼 붙어 있던 에피소드였다. 형을 죽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악당이 아무리 개과천선한다 해도 지난날 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 과거에 지은 죄은 언젠가 되돌아와 죗값을 묻는다. 각시탈 이강토는 어이없는 실수로 눈이 멀어버린다. 장님이 된 강토는 결국 각시탈을 쓰고, 과거의 죄를 속죄할 길을 찾지 못한다. 눈 덮인 깊은 산의 동굴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참회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던 이 만화를 보고 나는 한국 만화의 단 하나의 절대적 캐릭터는 각시탈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소년잡지 <우등생>에 부록으로 연재되었던 <우등생판 각시탈>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옛 친구와의 고통스런 대결도 좋았다. 특히 마지막 대결 장소가 매운탕집이라는 것이 너무나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각시탈> 시리즈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각시탈의 에피소드는 <여기는 우리땅>이었다. 이 에피소드에서 이강토는 한번도 각시탈을 쓰지 않는다. 각시탈을 쓰지 않는 <각시탈> 만화. 이 만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10년 전 김성수 감독이 <각시탈>을 TV시리즈물로 만들려는 기획을 하고 있을 때, 그에게 나도 <각시탈> 한 에피소드를 연출하게 해달라며 각시탈이 각시탈을 한번도 안 쓰는 에피소드인데 죽이지 않느냐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여기는 우리땅>에서 강토는 일본인 악덕 지주의 집에 얹혀살며 잡일을 하면서 일본산 도사견의 마음을 빼앗는 데 성공한다. 지주의 창고가 도둑맞지 않는 이유는 사나운 도사견 때문. 강토는 불순한 마음으로 개의 마음을 빼앗고 지주의 창고를 터는 데 성공한다. 라스트는 비극이다. 강토에게 마음을 준 개는 몇해 동안 먹여주고 길러준 주인을 버리고 사악한 마음으로 접근한 강토를 선택하지만 개에게 주어진 운명은 죽음이다.

일제에 대항하여 투쟁한다는 가면을 쓰고는 있었지만 허영만이 그린 <각시탈>은 한 사내를 죽이고 그 사내가 되어버린 사내가 그를 죽이려는 또 다른 수많은 사내들과 대결하는 남성 멜로드라마였다.

<미스터 손>

거침없이 세상을 휘젓는 남자 이야기

<태양을 향해 달려라>는 이상무의 야구 만화들과 비슷한 이야기와 캐릭터들이었지만 이상무의 만화보다 강토와 강산의 우정에 조금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변칙복서>에서는 아들이 발레리노가 되기 원하는 아버지를 피해 권투를 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끝없이 남자 이야기를 한다. <변칙복서>는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만화였다. 동생은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 손>이 일본 만화 <드래곤 볼>의 표절이라며 무시했지만 <미스터 손>을 <드래곤 볼>의 표절로 보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지 않은가. 허영만의 <미스터 손>은 고우영의 <서유기>의 피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만화다. 고우영의 손오공은 세상 끝까지 날아가 그곳에 서 있는 기둥(부처의 손가락)에 오줌을 싸는데, 허영만의 미스터 손은 옥황상제가 보낸 전투기의 캐노피 위에 오줌을 갈긴다. 미스터 손은 전형적인 악동이고, 트릭스터 캐릭터다. <서유기>를 원작으로 한 수많은 만화 중 손오공이 옥황상제가 지배하는 세상을 얼마나 깽판 치느냐에 따라 선호도가 바뀐다. <드래곤 볼>에서는 손오공이 옥황상제가 지배하는 하늘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에피소드를 아예 빼버렸지만, 미스터 손은 고우영의 손오공만큼 악랄하진 않아도 소년만화에서 허용되는 만큼 난장판을 만들어버린다. 허영만은 <서유기>를 원작으로 한 만화 중 가장 새로운 캐릭터인 사오정을 탄생시킨다. 물론 허영만의 저팔계도 재미있지만 음흉함에 있어서는 고우영의 저팔계가 조금 더 저질이다. <서유기>를 원작으로 한 만화 역사상 최고로 독특한 삼장법사가 <오공도>를 그린 야마구치 다카유키의 색계를 위해 탄생한 여자 삼장이라면 최고의 사오정 캐릭터는 허영만의 것이다.

80년대 들어 허영만의 만화는 날개를 단 것 같았다. <담배꽁초> <오, 한강>으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는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허영만의 만화는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그렸던, 만홧가게에 진열된 그의 만화들이다. 중학생 시절 만홧가게의 진열대에 꽂혀 있던 <각시탈> 시리즈들의 빛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