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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tuary] 광기와 절망 속에서 영화를 만들다
김현수 사진 씨네21 사진팀 2016-02-26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을 추모하며 1940-2016

지난 2월17일, 암투병을 이어오던 폴란드의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소설가이며 배우로도 활동했던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이 향년 75살로 가족들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12번째 연출작 <피델리티>(2000) 이후 무려 15년의 공백기를 깨고 세상에 선보였던 영화 <코스모스>가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던 터라 급작스런 그와의 이별이 더욱 아쉽다. 만드는 영화마다 폭력과 섹슈얼리티, 광기와 절망에 관한 문제적인 질문을 던졌던 그는 평생 동안 유럽영화계의 이단아라 불렸다. 그의 영화는 데뷔작에서부터 줄곧 이야기, 캐릭터, 구조 등 어느 것 하나 뭐라 규정할 수 없는 괴상한 요소들로 뒤엉켜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충격을 주려고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미학적, 윤리적, 도덕적으로 추한 것들로부터 충격받고 싶지 않다. 다만, 영화는 모든 면에서 관객의 감정과 생각, 감각과 신경을 뒤흔들어야 한다”고 말해왔던 그였지만, 그것은 영화를 종종 ‘터널’에 비유하곤 했던 감독의 철학이 깊게 투영된 말이었다. 깊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면 밝은 빛이 쏟아지기 마련인데 그 한 줄기 빛을 보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과정으로서의 터널. 그러니까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에게는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빛을 투영해 영사하는 영화가 바로 그 터널이었던 것이다. “관객의 경험과 삶을 모르는 척하면서 그저 즐거움만을 주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고도 했던 그의 영화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고 나면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1940년 11월22일 폴란드의 르부프 지방에서 태어난 줄랍스키 감독은 소설가인 아버지와 함께 폴란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여러 매체에 영화 리뷰와 시를 기고했던 그는, 프랑스 영화학교 이덱(IDHEC)에서도 학업을 마친 다음 곧바로 안제이 바이다 감독 밑에서 <삼손>(1961), <20살의 사랑>(1962), <잿더미>(1965)의 조감독으로 일했다. 당시 그의 주요 관심사는 냉전 시기와 정권을 잡고 있던 폴란드 공산당이었다. 이런 시대상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몇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뒤에 장편 데뷔작 <밤의 제3부분>(1971)을 완성했다. 전쟁의 잔혹성에 관한 이 영화는 장티푸스 감염 실험에 징용됐던 아버지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를 목격한 도망자를 따라가는 영화를 통해 줄랍스키 감독은 덫, 시체, 질병과 죽음을 둘러싼 미친 세계에서 발버둥치는 인물들을 아주 혹독하게 괴롭힌다. 당시 데뷔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독특한 전개와 거칠지만 날이 곤두선 주제의식 등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쇼팽의 푸른 노트>

그의 두 번째 영화 <악마>(1972)는 악몽을 소재로 고딕 호러와 갱스터영화 속 클리셰를 뒤죽박죽 섞은 기괴한 공포영화로, 폴란드 당국이 영화 공개 전에 감독을 체포하는 바람에 정식 상영은 1988년에서야 이뤄졌다. 이때부터 폴란드 당국은 그의 급진적인 성향을 예의 주시한다. 결국 그는 프랑스로 거처를 옮겼고, 이 시기에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에 관한 <중요한 것은 사랑이야>(1975), 폴란드 최초의 SF영화 <은빛지구> 등을 찍었다. 폴란드 당국에 의해 <은빛지구>의 제작이 중단되는 등 온갖 방해공장에 시달리던 그가 1970년대 폴란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당시 여배우 마우고자타 브라우넥과의 결혼생활도 원만하지 못했던 그는 이번엔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그곳에서 앤디 워홀을 만난다. 그로부터 열흘도 채 안 되어 ‘소유물’에 관한 시나리오를 한편 뚝딱 완성해낸 그가 만든 영화가 바로 지금도 줄랍스키 감독의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퍼제션>(1981)이다. 인간과 악마가 교배하는 충격적인 장면,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전세계 영화 관객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영화다. 끝끝내 파경을 맞은 결혼생활에 관한 초상에서 출발한 이 영화로 이자벨 아자니는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지난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퍼제션>을 추천했던 박찬욱 감독은 <박쥐>(2009)의 태주(김옥빈) 캐릭터에 그를 참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격정>

이후에도 물론 이른바 예술영화 감독으로서 그의 독특한 입지를 다지는 작품 활동은 계속됐는데 이때 그는 인생의 반려자인 소피 마르소를 만나 그녀와 함께 여러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는 당시 프랑스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그녀와 24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동거 생활을 하며 대중을 놀라게 했다. 또 그녀에게 <격정>(1985),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1989), <쇼팽의 푸른 노트>(1991), <피델리티>(2000)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파격적인 캐릭터를 맡겼다. 당시 소피 마르소는 줄랍스키 감독과의 협업, 그리고 사생활에 대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람들이 나를 애완동물 취급하는 것보다 나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줄랍스키 감독의 12번째 영화 <피델리티>가 믿음과 집착, 혹은 부부생활의 ‘신의’에 관한 영화였으며 이후 15년 동안 메가폰을 잡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 소피 마르소와의 관계는 줄랍스키 감독에게 꽤 중요한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피델리티>

<코스모스>

2015년, 오랜 공백을 깨고 그가 세상에 내놓은 <코스모스>에 대해 여러 매체에서는 ‘형이상학적 스릴러 누아르’라는 정체 불명의 타이틀을 붙이고 있다. 폴란드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마지막 소설인 <코스모스>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데, 소설 역시 곰브로비치 일생의 작업 가운데 가장 불가사의한 걸작이란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1930년대 폴란드 자코파네로 휴가를 떠난 바르샤바 출신의 학생이 기호와 상징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로 형사물의 플롯을 지니고 있으면서 인물 스스로 파괴와 광기, 그리고 에로틱한 음모에 휘말려들게 하는 심리전이 탄탄하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에 대한 폴란드의 대답 같은 감독’이란 칭호도 얻고 있는 <코스모스>는 지난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감독상을 수상했다. 왠지 이제야 대중과 평단이 세계 영화계의 이단아였던 줄랍스키 감독의 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건 아닐까 싶다.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의 영화 안에서 폭력과 섹슈얼리티, 광기 등을 형상화한 캐릭터가 어떤 최고조에 이르는 모습을 그의 이름을 빗대어 ‘줄랍스키언’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코스모스>가 꼭 그것에 도달한 느낌이다. 그는 비록 광기와 폭력으로 오염된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영화들은 오래도록 남아 밝은 빛을 향한 방향키가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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