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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언어유희 개그의 마술사
이예지 사진 오계옥 2016-03-21

<개그콘서트> ‘1대1’ 코너의 ‘이병원’, 이세진

언어의 마술사다. “장난 지금 나랑 하냐”고 대뜸 윽박지르더니, ‘고르곤졸라 피자’를 ‘졸라고르곤피자’로, ‘고구려 연개소문’을 ‘연고소문개구려’로 탈바꿈시킨다.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1대1’ 코너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이병헌을 패러디한 ‘이병원’으로 장안의 화제가 된 개그맨 이세진의 솜씨다. 영화 속 이병헌처럼 기름지게 빗어넘긴 머리, 뻣뻣한 의수가 먼저 눈에 띄지만, 그의 진가는 “말장난 개그”에서 드러난다. 일찍이 그는 <개콘> ‘힙합의 신’에서 특정 주제로 단어들을 한데 꿰어 “왜 날 ‘크로켓’ 몰라, 내가 아픈 만큼 너도 ‘와플’ 거야”(‘세진제과’ 중) 등 절묘한 라임을 만들어내는 ‘개그 랩’으로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SBS <웃찾사>로 데뷔해 MBC <하땅사>를 거쳐 KBS <개콘>까지 오랜 무명의 세월을 통과하고, 딱 맞는 옷을 입은 ‘이병원’ 이세진을 KBS 본관에서 만났다.

-<개콘>의 ‘1대1’ 코너에서 ‘이병원’ 역할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개콘> 공식 페이스북에 게재된 영상이 조회 수 261만건에 이르고 있는데.

=영화 <내부자들>을 본 사람은 바로 알고 웃을 수 있는 개그라 대중에게 쉽게 다가간 것 같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언어유희 개그는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지 않나. 그중 “장난 나랑 지금 하냐”가 유행어가 된 게 한몫했다. 일상에서 써먹을 수 있는 말이라 많이들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집과 방송국만 오가느라 인기를 체감하지 못했는데, 선배들이 거리나 당구장에서 따라하는 사람들을 봤다고 제보해준다. (웃음) 이병헌 선배의 헬스 트레이너도 ‘이병원’을 좋아한다더라. 개인적으론 이병헌 선배가 내게 ‘장난 나랑 지금 하냐’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웃음)

-이병헌이 연기한 <내부자들>의 안상구를 패러디한 계기는 뭔가.

=배우 이병헌을 존경하는데, 동료인 개그우먼 안소미가 내가 이병헌 선배와 닮았다고 한번 따라해보라고 하더라. 잘 보면 하관이 살짝 닮았다. (웃음) 그러던 중 영화 <내부자들>을 재미있게 봤는데, 안상구(이병헌)의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 해야지”라는 대사가 인상 깊었다. ‘엿 가서 울릉도 먹어야지’처럼 비슷하게 어순을 바꿔봐도 웃기겠더라. 안상구의 의수를 활용해 상대를 괴롭혀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5분도 안 돼 아이디어를 뚝딱 짰는데 선배들 반응이 좋아 ‘1대1’ 캐릭터로 채택됐다.

-‘장난 나랑 지금 하냐’를 비롯해 ‘돌아이맨 슈퍼왔다’(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어순을 바꿔 절묘한 말들을 만들어내는데,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나.

=말의 어순을 바꿨는데 말이 되는 것 같은 게 웃긴다는 데 착안했다. 고르곤졸라 피자를 ‘졸라고르곤피자’ 이렇게 바꿔놓으면 ‘피자를 졸라 고른’ 것 같지 않나. ‘자고르졸라피곤’이라고 하면 자도 자도 피곤한 것 같은 느낌이고. (웃음) 어순을 바꿔도 말이 되는 걸 찾는다. 인터넷에서 어려운 단어들을 찾아보고, 과자나 샴푸 뒷면에 있는 성분 표기 같은 것들도 유심히 살핀다. 보이는 말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거다. 만들어놓고 수위 때문에 방송을 못 탄 것도 부지기수다. 검은콩두유를 ‘검은유두콩’, 가족오락관을 ‘족가오락관’이라고 바꾼 것 등. (웃음)

-지난해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신인상을 안겼던 ‘힙합의 신’에서는 매회 소재를 하나 정해 절묘한 랩 메이킹을 선보이기도 했다.

=힙합을 좋아해 랩을 곧잘 했는데, 랩과 개그를 함께하게 되다니 금상첨화였다. 첫회에는 ‘세진수산’을 했다. 수산물 목록을 쭉 적어놓고 이 단어들로 가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구상하고, 스토리라인을 짜서 ‘그녀를 만난 러브스토리’라는 소제목을 붙였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학창 시절 ‘고등어’학교 때, 그녀를 너무나도 ‘복어’ 싶어 달려 ‘갈치’ 말지 고민했지, 그런데 그녀가 양다리라니 ‘멍게’소리야, ‘개불’ 뜯어먹는 소리야.’ 이렇게 하나씩 단어와 문장을 맞춰가며 랩을 완성했다. ‘힙합의 신’이나 ‘이병원’이나 말장난 개그로 속칭 ‘아재 개그’인데, (웃음) 랩을 녹이고 영화 속 캐릭터를 씌우니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것 같다.

-인디신에서 래퍼로 활동한 적도 있다.

=KBS 공채에 합격하기 전에 아는 형과 ‘마마고릴라’라는 팀으로 활동했고 앨범도 낼 뻔했다. 그 형과 음악을 하면서 내건 조건은 개그맨 시험에 합격하면 개그를 하겠다는 거였다. 앨범 작업 막바지 단계까지 와서 음악 마스터링도 하고 재킷 사진도 찍었는데 KBS 공채가 떠 응시했는데 됐더라. 정말 미안한데 개그하러 가야 할 것 같다고 했고, 형도 이해하고 보내줬다. 랩도 좋아하지만 개그가 우선이었다.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인데, 개그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어릴 적부터 꿈이 개그맨이었는데 서울예대에 표인봉, 신동엽, 이영자 등 쟁쟁한 선배들이 거쳐간 개그클럽이라는 개그동아리가 있다는 걸 알고 진학했다. 1학년을 마친 후, 컬투패밀리로 컬투홀에서 처음 개그를 했다. 당시엔 개그맨 지망생들이 방송 데뷔 전에 컬투홀, 틴틴파이브 소극장 등 대학로 소극장에서 개그를 하곤 했다. 컬투 형님들은 사람이 되는 걸 알려준 스승이다. 제대하고 방황할 때, 삼겹살집에서 우연히 정찬우 형을 만난 적이 있다. 대뜸 변호사, 시의원 등이 있던 자리에 데려가 “얘가 향후 몇년 안에 대한민국 씹어먹을 개그맨이다”라며 소개해주시더라. 어떤 분이 한번 웃겨보라고 하니 “이 사람아 그럼 너 여기서 변호해봐” 하는데 얼마나 멋있던지. 형처럼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계기였다. 지금도 매년 스승의 날에 연락을 드린다. (웃음)

-SBS <웃찾사>, MBC <하땅사>를 거쳐 2014년부터는 KBS <개콘>에 출연했다.

=삼사를 제패한 그랜드 슬램이다. (웃음) 마지막 행선지 KBS로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1살에 <웃찾사> 특채로 데뷔했다가 컬투 형님들을 따라 <하땅사>로 갔다. 그런데 <하땅사>가 폐지돼 <웃찾사>로 돌아갔는데 <웃찾사>도 3주 후에 폐지됐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라면집 아르바이트, 급식 식판닦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대학 동기이자 개그를 같이 시작한 서태훈에게 KBS 공채를 보자고 제안했다. 안 하겠다는 그를 설득해 시험을 보러 갔는데 그 친구는 붙고 나는 떨어졌다. 그 후 2년간 ‘잉여’로 지냈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먹고 게임만 해서 106kg이 나가는 고도비만이 됐다. 그러다 해군 홍보단에 지원해 입대했는데, 이게 터닝포인트였다. 순항 훈련으로 6개월간 태평양을 돌며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지 느꼈고 쪼들려 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을 다잡고 살을 뺐고, 틈틈이 개그도 짜고 랩도 썼다. 제대 후엔 ‘인생 다시 시작해보자’고 다짐하고 뭐부터 할까 생각해보니, 개그를 시작할 때 연기를 배웠던 생각이 났다. 연기 레슨을 받았고, 청소년 교육용 연극도 했다. 그리고 KBS 공채에 합격했다. 미리 가 있던 친구 서태훈이 선배가 되어 잘 이끌어줬지. (웃음)

-지난해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신인상을 수상했을 때 소감이 남달랐겠다.

=8년간 무명 생활을 하다 신인상을 받으니 감개무량하더라. KBS 들어오기 전의 것들은 리셋된 느낌이다. 이전엔 무대에서 여유가 없었다. 관객을 웃기겠다고 이 악물고 힘주어 연기하니 부담스러운 개그가 된 거다. 이젠 힘을 빼고 내려놓는 법을 알게 됐다.

-앞으로는 어떤 개그를 할 건가.

=언어유희를 살릴 수 있는 개그를 계속 잘해보고 싶다. 예전엔 TV만 틀어도 개그맨이 나오는 개그맨들의 시대가 있었다. <개콘>이 전성기 시절처럼 살아났으면 좋겠다. 요즘엔 SNS를 비롯한 미디어가 많아져서 관심이 분산되고 있는데, 그 관심을 다시 끌어오고 싶다.

-‘이병원’ 패러디 외에도 영화의 캐릭터를 패러디할 생각을 해봤나.

=개그맨 양세찬이 <해바라기>(2006)의 김병진 역(지대한)을 해보라고 권유한다. “뒤지기 싫으면 나가 있어” 하면 “응 그래” 하면서 정말 나가버리는 캐릭터다. (웃음) 넙죽넙죽 받아먹는 캐릭터라 재미있을 것 같다. 최근 본 영화 중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6)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도전해도 좋을 것 같다. 거적때기 걸치고 나와서 계속 해코지를 당하는데, 주위에 민폐를 끼치면서 결국엔 살아남는 캐릭터다. (웃음) <위기탈출 넘버원>이 무조건 죽는다면 이건 무조건 사는 거지. 마지막엔 거적때기 속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꺼내면서 끝내면 되겠다. (웃음)

-이후 계획은.

=<쇼미더머니>에서 매년 출연 요청을 보내는데, 달콤한 독약이 될 수도 있는지라 거절하고 있다. 나중에 준비를 많이 해 뮤지션으로 당당히 나설 자신이 있을 때 나가야지. 정극 연기도 도전해보고 싶다. 희극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엔 슬픔을 가진 역할도 좋겠다.

‘1대1’ 코너의 ‘이병원’

<개콘>의 퀴즈쇼 컨셉 코너 ‘1대1’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내부자들>의 안상구(이병헌)를 패러디한 인물. “모히또 가서 몰디브 마셔야지”라는 대사에 착안, 문장과 단어의 어순을 뒤죽박죽 바꿔 “씨원한 수박”, “연고소문개구려”, “졸라고르곤피자” 등 절묘한 오답을 만들어낸다. 뭔가 이상하다는 반응엔 “장난 나랑 지금 하냐”라며 영화 속 안상구처럼 의수로 뒷목을 풀어주는 당당함까지 갖췄다. 개그맨 이세진은 가발과 분장 등으로 <내부자들>의 안상구를 충실히 재현해냈지만, 의수만큼은 다른 포인트를 줬다. “안상구가 잘린 손은 오른손인데 ‘이병원’은 말의 어순을 바꿔서 하는 캐릭터라 왼손을 의수로 표현했다. 섬세한 디테일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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