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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한국 다큐의 초점!

인디다큐페스티발2016

마음이 어수선하고 일이 안 풀릴 때 운세를 보면서 미래를 점치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아마 이 세상도 자신의 운세를 점쳐보고 싶지 않을까 한다. 세상의 미래를 예견하는 작은 기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래는 한눈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쳐버린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데 있다고, 이 기록들은 말하는 듯하다.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축제, 인디다큐페스티발2016이 3월24일(목)부터 31일(목)까지 8일간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열린다. 따끈한 국내신작전 31편을 포함해 총 55편의 작품이 관객을 기다린다. 신작전 총평을 통해 이미 사적 다큐멘터리의 강세가 예고된 가운데 올해 포럼기획전에서는 ‘포스트-멜랑콜리아’라는 제목으로 동시대 사적 다큐멘터리와 에세이 필름의 경향을 짚어본다. 사적 다큐멘터리의 범람은 어쩌면 ‘사적’이라는 말에 내포된 기존의 구분법 자체를 무화하는 흐름은 아닌가. 포럼을 통해 이에 대한 반성적이고 생산적인 사유가 전개되길 기대한다. 쌍을 이룬 몇편의 작품을 함께 보고 이에 대한 토크를 곁들이는 방식의 ‘올해의 초점’ 에서는 <불온한 당신>의 이영, <레드마리아2>의 경순 감독 등이 초대됐다. ‘아시아의 초점’에서는 3•11 동일본 대지진을 다룬 5편의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아시아 젊은 감독들의 시선이 담긴 8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개막작 <사람이 산다>를 비롯해 부문별 주목할 만한 작품 몇편을 미리 소개한다.

<사람이 산다> 감독 송윤호 / 2015년 / 69분 / 개막작

빈민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독립다큐멘터리의 오래된 소명과도 같다. 반면 빈민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이들을 대상화시키지 않기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이를 피하고자 감독이 빈민들의 공간에 머물며 그들과 동화되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다큐멘터리의 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산다>는 다큐멘터리의 전통과도 같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작품이다. 송윤호 감독은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거주민들의 삶을 그리기 위해 쪽방에서 몇달간 기거하면서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그러던 중 IMF 이후 노숙 생활을 거쳐 쪽방촌으로 흘러온 남선 아저씨, 쪽방촌의 유일한 20대이자 2인 가구인 승희와 일수 커플 등 몇몇의 삶에 가까이 다가선다. 그 과정에서 부양의무제 등 각종 제도의 폐해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남선 아저씨는 조건부 수급을 받기 위해 40년간 연락을 끊고 산 노부모의 집을 어렵게 찾는다. 부양의무제에 따라 팔순이 넘은 부모가 예순이 넘은 남선 아저씨의 법적 부양의무를 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승희씨와 일수씨는 결혼하면 각각의 급여가 삭감되는 불이익을 받지만, 결혼이라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이를 감수한다. 제도적 부조리를 고발하는 관찰자와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수행자, 그 사이 어딘가에 이 작품은 위치한다.

<그녀들의 점심시간> 감독 구대희 / 2016년 / 50분 / 국내신작전

한편의 다큐멘터리에서 한없이 넓은 인물군을 다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어떤 사건이나 장소를 통해 인물을 특정하기 마련이다. 이를 염두에 둘 때 <그녀들의 점심시간>의 시도는 신선한 동시에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특정 장소가 아닌 시간을 중심으로 인물들을 엮어내는데 그 시간이 특별할 것도 없는 점심시간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여성들이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라는 주제로 서로 다른 연령대와 상황에 놓인 개인 혹은 인물군을 엮으면서 여성에 관해 이야기하려 시도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을 점심시간을 통해 본 여성의 일생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젊은 주부들의 점심시간은 갓난아이의 칭얼거림과 숙제를 들고 오는 아이들의 성화에 방해받는다. 그들은 온전히 혼자 있을 시간을 원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은 주름이 짙어진 뒤에야 비로소 찾아온다. 그리고 혼자일 수 있을 때는 반대로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다. 이렇듯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개개의 이야기를 넘어선 또 다른 스토리가 그려질 것이다. 지난해 인디다큐 새얼굴찾기 ‘봄’ 제작지원작이다.

<빙빙> 감독 임철민 / 2016년 / 25분49초 / 포럼기획전

<빙빙>에서 임철민은 전작 <프리즈마>를 통해 드러낸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파편들을 아카이빙하는 동시에 몽타주하는 방식, 디지털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의 관계 등에 관한 관심을 더욱 분명히 한다. 이번에는 특히 대상과 카메라의 운동성에 관한 영화적 관심이 두드러진다. 영화가 시작하면 세명의 젊은이가 좁은 공간에서 원을 그리며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이들의 원운동에 화답하듯 다음 장면은 디스코 팡팡이 돌아간다. 이 두개의 원운동이 회전하는 대상을 고정된 카메라가 포착한 것이라면 이후에는 고정된 것을 찍는 카메라의 원운동으로 이어진다. 이 실제의 운동은 원통형 모양이 돌아가는 방식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이미지로 인해 자리를 빼앗기는 듯하다가 하늘을 나는 새들의 움직임을 통해 다시 실제의 자리를 되찾는다. 다른 방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디스코 팡팡이 돌아가면서 뿜어낸 현란한 빛깔은 스크린 골프장 화면의 디지털 입자가 내뿜는 연둣빛과 만나고, 이는 다시 적외선 카메라로 포착한 이미지의 초록빛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줄을 튕기는 기타의 사운드는 드럼 비트로 변화한다. 하나로 환원되지 않으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어떤 소요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청춘 버전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아닐까.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 감독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 2016년 / 180분 / 올해의 초점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700일이 이제 막 지나가고 있다. 그사이 7명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416연대 미디어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그들이 만든 7개의 프로젝트는 3시간의 옴니버스 영상이 되어 우리 앞에 도착했다. 7개의 이야기는 이렇다. 도대체 무엇이 온전한 인양을 방해하는가를 따져 묻는 <인양>, 도둑맞은 국민의 알 권리에 관한 이야기 <도둑>, 아이들이 사라진 장소에 남은 기억을 매만지는 <자국>, 2016년 1월 아직 졸업할 수 없는 아이들의 <교실>, 더이상의 참사를 막기 위한 움직임을 그린 <살인>, 대구 시민들의 일상 속 세월호를 찾는 <블루-옐로우 프로젝트 in 대구>, 피해자의 곪은 상처를 내보이는 <선언> 등이다. 그중 손경화 감독의 <블루-옐로우 프로젝트 in 대구>는 안산, 광화문, 진도 팽목항 등 세월호와 직접 관련된 장소를 벗어나 2003년 지하철 참사를 겪은 또 다른 아픔의 도시인 대구와 안산을 연결하려고 시도한다. 일상의 사물이 뿜어내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좇으며, 기억과 망각의 뿌리들을 재조명한다.

<벚꽃 나무 아래서> 감독 다나카 게이 / 2015년 / 91분 / 아시아의 초점

가와사키 단지는 1973년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들의 거주지를 명목으로 기획되었지만, 지금은 노인들만의 거주지가 되었다. 그곳에는 70%의 노인들이 홀로 산다. 감독은 이중 네 사람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간다. 잉꼬를 키우며 사는 세키구치씨, 식물과 대화를 나누곤 한다는 오바씨, 신체의 왼쪽이 마비되어 소일거리로 신문이나 도시락 배달을 하는 카와나씨, 알코올과 도박에 중독돼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과 사별한 뒤 집 안의 물건들을 버리지 못한 채 끌어안고 사는 이와사키씨 등이 그들이다. 단지에서 홀로 죽은 노인의 시신이 8개월이 지나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마을 주민들은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레크리에이션을 하며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계절이 바뀌고 다시 벚꽃이 피는 봄이 오면 이들은 어딘가 조금씩 달라져 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친구를 잃는다. 누군가는 노쇠해져 있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들의 삶을 찬찬히 따라가다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 죽는다는 것, 홀로 된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에 대한 진한 고민이 다가온다.

<늙은 연꽃> 감독 장윤미 / 2015년 / 30분 / 국내신작전

노인의 삶을 다룬 몇편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고, 주목받았다. 몇몇 다큐멘터리에서 카메라 앞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듯한 노인들의 모습에 어딘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이 조용한 다큐멘터리가 해갈을 줄지도 모른다. <늙은 연꽃>은 손녀인 감독이 자신의 할머니가 사는 외롭고 허름한 시골에 머무는 얼마간의 이야기다. 감독은 할머니의 일상을 그저 바라본다. 할머니에게 말을 걸지도, 무언가를 제안하거나 돕거나 하는 일도 없이 그저 바라본다. 할머니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무언가를 한다. 머리에 까만 빗을 꽂은 채로 두유를 먹고, 마루에 앉아 비질하고, 콩을 골라내려고 키질을 한다. TV를 틀어놓은 채 잠을 자고, 마루에 대야를 놓고 머리를 감고, 무덤가에서 한참 잡초를 뽑는다. 할머니와 손녀는 구태여 카메라 앞에서 관계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은 어느새 드러난다. 구부정한 등으로 작은 카트에 의존해 어딘가로 향하는 할머니의 뒤를 말없이 따라가는 모습에서, 끈끈이에 앉은 파리조차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는 세심함과 할머니가 무덤가의 잡초를 뽑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시선에서 할머니와 할머니를 둘러싼 것들에 관한 말할 수 없는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