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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내 그라운드에서 오직 음악으로 맞선다”
이주현 사진 백종헌 2016-03-28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과 올해의 음악인상 수상한 힙합 뮤지션 딥플로우

“열망은 딱 하나지 내 영감을 채워 만든 명반/ 열반 이건 일종의 우월감/ …난 지금 열반의 경지.” 딥플로우의 세 번째 앨범 《양화》는 “열반의 경지”에 오른 딥플로우의 묵직한 선포로 시작한다. 그 선포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고도, “유희열 면회증” 같은 것 없이도 “꿈을 이뤘다”는 자부심과 이유 있는 고집을 바탕으로 한다. 넉살, 던밀스, TK, ODEE 등이 소속된 VMC(비스메이저 컴퍼니) 레이블의 수장으로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을 10년 넘게 일구어온 딥플로우는 지난해 4월 발표한 《양화》로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과 ‘올해의 음악인상’을 수상했다. VMC의 합정동 작업실에서 딥플로우를 만나 지난해 최고의 힙합 앨범 중 하나로 손꼽혔던 《양화》에 대해, 그의 불가항력적 음악과 소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늦었지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을 축하한다.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과 올해의 음악인상을 받았는데, 특히 올해의 음악인상 수상은 타협 없이 한길을 걸어온 힙합 아티스트에 대한 인정의 의미가 컸다.

=심사위원들이 그런 부분을 조명하고 상을 줬다는 게 신기했다.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힙합 아티스트한테 음악인상을 준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데 사실 아직도 의아하다. 왜 내게 음악인상을 줬는지. (웃음)

-이센스의 《The Anecdote》가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지만 《양화》 역시 그럴 자격이 충분한 앨범이었다. 내심 앨범상을 기대하진 않았나.

=종합 부문 앨범상은 아니고 힙합 부문 올해의 앨범상은 받고 싶었다.

-<작두>로 최우수 랩&힙합 노래상을 받았다. 타이틀곡인 <버킷 리스트>나 앨범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열반> <양화> 같은 곡도 인상적이었다.

=만든 이의 의도가 확실히 드러나고 음악에 대한 반응까지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는 곡을 기획물이라고 하는데 <작두>가 그런 곡이었다. 공연 때 부르기 좋고 팬들이 좋아할 수 있는 킬링 트랙이 하나의 장치로서 앨범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목소리가 낮고 화려하지 않은 스탠더드 랩을 추구하는 나의 랩 스타일에는 어느 정도 핸디캡이 있다. 공연할 때는 하이톤의 래퍼들과 협업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넉살과 허클베리피가 <작두>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이 더 조명을 받았다. 이 친구들이 나보다 더 날아다녀서 곡이 풍성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피처링이 주인을 압도했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큰 정은 안 간다. (웃음) 100% 내 이야기가 담긴 곡들에 더 애착이 간다.

-3년가량 준비해 《양화》를 내놓았다. 세 번째 정규 앨범 이상의 의미를 담으려 한 것 같은데.

=《양화》를 작업할 당시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20대 마지막 즈음엔 ‘이제 다 끝났다’ 하는 마음, 제2의 중2병에 걸려 있었다. (웃음) 그래서 더 진지하게 작업에 임했던 것 같다. 전에는 내 노래로 가득 채운 1시간짜리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단순한 의도로 작업했다면 이번엔 처음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컨셉을 잡고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모든 걸 다 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앨범이다.

-그런데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먼저 발표됐다. 어떤 심정이었나.

=이미 2년 정도 앨범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양화대교>가 나왔다. 심지어 노래가 너무 좋아서 패배감에 빠졌다. ‘딥플로우의 양화대교 이야기도 기다려주세요’ 그런 오그라드는 글도 술 마시고 SNS에 남기고. (웃음) 그렇다고 타이틀을 교체할 수는 없었다. 이미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여서.

-일터인 홍대와 살고 있는 영등포 두곳을 잇는 것이 양화대교다. 양화대교를 모티브로 삼아 앨범 작업을 하게 된 이유는 뭔가.

=그 당시 홍대의 코쿤이라는 클럽에서 호스트 MC 아르바이트를 했다. 호스트 MC의 역할은 술 마시며 노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는 멘트와 랩을 하는 거다. 그런데 정작 나는 전혀 신나지가 않았다. 호스트 MC로 4년간 일하는 동안 항상 마음이 눅눅했다. 새벽에 택시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서 집에 갔는데, 한강을 바라보면 무척 슬펐다.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이게 뭐하는 건가 싶고. 클럽에서 사람들이 ‘딥플로우 아니에요?’ 하고 알아보면 창피하기도 했고.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하루에 두번씩, 거의 천번 이상 양화대교를 건넜다. 그러다보니 굉장히 각별한 장소가 됐고, 그때의 감정들이 앨범의 모티브가 됐다.

-첫 번째 트랙인 <열반>엔 14년차 래퍼의 자부심과 현재의 힙합 신에 대한 회의감이 섞여 있다.

=지금의 한국 힙합 신이 <쇼미더머니>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좌지우지되고 있는데 이런 경험 자체가 굉장히 생소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누군가는 너도 거기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고, 주변에 그런 고민으로 흔들리는 동료들도 자주 봤다. 결국엔 ‘내가 맞아,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아, 이제 너희들은 신경쓰지 않겠어, 내 그라운드는 따로 있어’ 하면서 정신승리를 하게 됐고, 그런 생각이 발현된 곡이 <열반>이다.

-<쇼미더머니> 출연을 고민한 적도 있었나.

=시즌 초반보다 최근에 그런 고민을 더 했던 것 같다. 꾸려가는 레이블(VMC)이 있으니까, 레이블에 소속된 친구들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혜를 받으면 앞으로 활동하기 편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도도 올라갈 테고 돈도 더 벌 수 있을 테고, <쇼미더머니>는 굉장히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이콧까지는 아니지만 거기에 관심을 두지 말고 좋은 앨범이나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쇼미더머니>가 무작정 싫다는 건 아니고, ‘힙합 신의 물을 흐렸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젊은 래퍼들의 목적의식을 바꿔버렸다.

-<낡은 신발>에서 그런 상황을 지적했다. ‘대체 니 꿈이 도끼야? 자신으로 살기 포기한 채/ 그건 니가 로또 맞을 확률보다도 Unlucky한 거야 이 병신아’라고.

=과학의 발전처럼 요즘 친구들이 랩은 다 잘한다. 보고 들은 게 많아서인지 학습 속도도 빠르다. 그런데 말한 것처럼 목적의식이 다 흐릿하다. 내가 한창 힙합 좋아하고 랩 할 때는 ‘저 멋있는 형들처럼 무대에 서서 랩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돈 벌고 싶다’가 압도적으로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생각이지만 뭔가 로망이 사라진 느낌이다. 이 친구들은 돈벌이가 안 되면 랩을 안 하겠네, 그런 생각이 든다. 또 음악에 승패가 존재한다면 음악으로 해야 하는데, 팬들은 목걸이, 시계, 차로 성공한 아티스트와 그렇지 않은 아티스트를 나눈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차트에 오른 음악이 승리한 것처럼 인식되니까 거기서 오는 박탈감과 괴리감이 있다.

-지난 2월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TV 출연에 대한 거부감이 있진 않나.

=방송 출연에 대한 거부감은 없고 단지 내가 잘하는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프로그램의 성향도 본다. 최근엔 할머니들한테 랩을 가르치는 <힙합의 민족>이란 프로그램도 생긴다더라. (웃음) 거기서도 섭외가 들어왔는데 이걸 왜 하는 거지 싶어서 거절했다.

-원래는 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힙합으로 진로를 선회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으로 ‘이것이 힙합이구나’라고 강렬한 느낌을 준 음악이나 뮤지션이 있다면.

=중학생 땐 국내 힙합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에미넴이 2001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엘튼 존과 함께 <Stan>을 부르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그동안 들었던 조피디나 원타임이나 지누션의 음악이랑은 완전히 달랐다. 그때부터 외국 힙합을 많이 찾아들었다. 나스의 음악을 듣고 나스의 뮤직비디오를 보고선 ‘나 이런 거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만화가가 꿈이었다. 대학도 만화창작과로 진학했다. 만화가 아니라 힙합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지는 5년밖에 안 된다. 5년 전에는, 나는 언젠가 만화가가 될 건데 힙합이라는 외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웃음)

-어느 인터뷰에서 래퍼로서 멋있는 나이가 있다고 말했다. 커트라인이라고 생각하는 나이는 몇살인가.

=평균 커트라인을 말한 건 아니고 스스로에게 적용한 말이었다. 외국 같은 경우 스눕 독, 제이 지 같은 사람들이 불혹의 나이가 지나서도 멋있게 음악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태진아, 설운도 같은 대중적인 원로가수라 할 수 있어서 우리와 일대일 비교를 하긴 힘들다. 국내에선 MC 메타 형이 멋있게 활동하고 있지만 그 또한 상징적인 아이콘으로서 특별한 경우다. 힙합 자체가 ‘힙’한 음악이고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내 경우는 글쎄 서른 여섯? 그쯤까지 생각하고 있다.

-서른여섯이면 얼마 안 남았다. (웃음)

=그래서 다음 앨범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웃음) 이후엔 프로듀싱에 더 집중하고 싶다.

인간 류상구 이야기 《양화》

딥플로우의 세 번째 정규 앨범. 1번 트랙 <열반>을 시작으로 마지막 곡 <가족의 탄생>까지 총 15곡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이소룡의 영화 제목과 이소룡의 캐릭터를 겸사겸사 차용한 당산동(에 작업실이 있었던) 빅 브라더의 스웨그(swag, 힙합 용어로 ‘멋지다, 내가 최고다’라는 의미) <당산대형>, 하품나는 짝퉁과 가짜들을 싹둑 베어버리는 <작두> 같은 곡이 앨범의 앞쪽에 배치돼 후반부에 드러나는 인간 류상구의 모습을 극대화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버킷 리스트> 등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곡들이 《양화》에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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