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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블랙박스] 표현의 자유를 허하라

정치적 탄압으로 파행 맞은 이스탄불영화제와 논란 지속 중인 부산국제영화제

글: 원승환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

<북부>

2015년 4월, 터키 이스탄불영화제에서 초청작품 중 하나인 <북부>(Bakur(north))가 갑작스럽게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취소 사유는 ‘미등록’ 영화라는 것. 터키에서는 사전에 정부에 등록된 영화만 상영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사전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상영이 불가하다는 것이 터키 정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 주장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영화 <북부>는 터키 내에서 민감한 주제인 ‘쿠르드족’ 문제, 그중에서도 터키의 강제적인 민족동화정책에 반대하고 독립적인 쿠르드족 자치국가 설립을 도모하는 쿠르디스탄노동자당(PKK)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PKK와 오랫동안 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 정부로서는 불편할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작품에는 PKK의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 지도자 중 한명인 세밀 바이에크의 인터뷰까지 담겨 있었다. 터키 정부는 정치적으로 불편한 <북부>의 상영을 막고 싶었고, 등록 문제는 이를 위한 핑계일 뿐이라는 것이 영화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북부> 상영이 취소되자 함께 영화제에 초청되었던 23명의 터키 감독은 보이콧을 선언하고 자신의 작품 상영을 취소시켰다. 터키영화계의 거장 누리 빌게 제일란 감독을 비롯한 100명의 영화인들은 정부를 향해 ‘부당한 탄압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화제가 위촉한 심사위원과 국제영화비평가연맹 심사위원도 항의의 의미로 모두 사퇴했으며, 일부 후원사는 후원을 철회했다. 특정 영화에 대한 검열이 영화제는 물론 터키 사회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인식을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터키 문화부가 뒤늦게 PKK 선전물에 대한 통제일 뿐 정치적 검열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영화제는 결국 파행으로 끝났다. 이스탄불영화제는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권력의 조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명백하게 보여줬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문제가 진행 중이다. 2014년 9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은 법적으로도 상영에 문제가 없는 특정 영화의 상영을 정치적인 이유로 막으려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스탄불영화제와 달리 검열에 저항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부산시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 영화제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한 일일까? 부산국제영화제가 누구의 것이냐를 따지기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방안이 무엇일지에 머리를 모을 때다. 망가지게 내버려두기엔 너무나 아까운 우리 모두의 자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