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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자신의 황실로 삼은 비공식 영국 여왕 <퀸 오브 데저트>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상. 흔하디흔한 어구이지만, 거트루드(니콜 키드먼)를 묘사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수식어를 찾긴 힘들다. 21세기에 이런 여성상은 하나의 롤모델로 추앙되지만 애석하게도 거트루드는 시대를 앞서간 여인이다. 거트루드는 어쩔 수 없이 몸에 꼭 조이는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장에서 남성들의 품에 안겨 춤을 추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게 지루할 뿐이다. 유일하게 그녀의 숨통을 틔워주는 순간은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릴 때다. 그녀는 부모에게 영국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조른다. 부모는 딸을 옥스퍼드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거트루드의 간곡함에 못 이긴 부모는 결국 그녀의 길고 긴 외출을 허락한다. 그녀가 제일 처음 당도한 곳은 외교관인 삼촌이 머무는 테헤란 영국대사관이다. 그곳에서 서기관 헨리(제임스 프랭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베르너 헤어초크가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스트이기도 한 헤어초크는 극영화를 만들 때도 종종 실존 인물에 바탕을 둔 캐릭터를 내세우곤 했다. 이번 작품에서 그가 주목한 인물은 여행가이자 작가이며 정치가이기도 했던 거트루드 벨이다. 그녀는 사막을 자신의 황실로 삼은 비공식 영국 여왕이다. 길이 그녀의 삶에서 주된 무대였던 바, 영화는 어딘가로 이동하고 횡단하는 벨의 여정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철도, 자동차, 비행기 등 빠른 운송수단이 개발된 지금의 시점으로 본다면 거트루드의 여정은 지루하게 보일 만큼 느리다. 낙타를 타거나 걷거나 하는 그녀의 이동 과정에서 눈에 밟히는 것은 희뿌연 흙먼지 빛깔의 사막이다. 이때 사막은 <조각가 슈타이너의 황홀경>에서 스키 점프하는 사람들 뒤로 펼쳐지는 희뿌연 눈을 상기시킨다. 설경이 슈타이너에게 그랬듯, 사막은 아마도 거트루드를 끊임없이 길 위에 세운 장본일 것이다. 사막과 함께 또 다른 축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그녀는 여왕처럼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죽었으나 몇번의 잊을 수 없는 사랑을 했다. 거트루드는 말한다. “내 심장의 주인은 사막이에요. 사막의 고독이 내 고독을 위로해줘요.”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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