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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젊음으로의 회귀보다는 꿈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
문동명 사진 최성열 2016-04-07

<내가 니 할매다> 판씨네 감독, 배우 미우레

판씨네 감독과 배우 미우레(왼쪽부터).

황동혁 감독, 심은경 주연의 <수상한 그녀>(2013)는 돌연 스무살의 외모를 갖게 된 할머니의 이야기를 재미와 감동으로 풀어내, 850만명의 관객수를 동원하고 그해 박스오피스 5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개봉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시아로 뻗은 <수상한 그녀>의 열기는 아직 뜨겁다. 중국 리메이크 <20세여 다시 한번>(2014)은 3억6500만위안(653억여원)의 매출로 역대 한•중 합작영화 흥행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말 공개된 베트남판 리메이크작 <내가 니 할매다>(2015)는 485만달러(56억여원) 수익으로 베트남 자국영화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영화의 어마어마한 성공에 힘입어 이제 막 첫 장편영화를 발표한 판씨네 감독은 흥행감독의 칭호를 얻었고, 가수와 배우를 겸업하던 주연 미우레는 단숨에 베트남에서 톱스타로 올라섰다. 작품이 태어난 CJ E&M을 특별방문한 그들을 만났다.

-<수상한 그녀> 베트남판 리메이크 작업은 어떻게 착수하게 됐나.

=판씨네_영화는 베트남에서 개봉했을 때는 놓치고, 그해 오키나와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다. 웃음과 감동이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베트남 영화시장은 액션, 호러, 코미디가 주류라서 가족에 관한 영화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CJ 베트남에 입사한 친구에게 <수상한 그녀> 리메이크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을 보였고, 한동안 얘기가 오가다 연출 제의를 받게 됐다.

-원작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점에 끌렸나.

=판씨네_마무리가 인상적이었다. 지하(진영)가 사고를 당했을 때 두리(심은경)가 피를 주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어도, 코미디영화로 저걸 어떻게 풀어갈까 주의 깊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주체가 안 될 만큼 놀라운 결정이더라. 현철(성동일)이 “가셔서 어머니 인생 사시라”고 말하는 부분은 <내가 니 할매다>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대목이다.

미우레_나 역시 클라이맥스가 기억에 남는다. 노래를 부르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어머니와 관련한 특별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더 가깝게 와닿았을 것 같다.

=판씨네_3살까지 시골에 살다가 어머니 혼자 호찌민에서 3남매를 키우셨다. 나중에 아버지도 도시로 왔지만 실직한 상태여서 실제로 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하셨다. 그 고된 세월을 곁에서 보면서 자랐다. 외할머니 역시 서른에 할아버지와 사별하고 4남매를 부양하셨다. 두분의 이야기가 모두 영화에 녹아 있다고 봐도 되겠다.

-<수상한 그녀>와 <내가 니 할매다>의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나? 그 이유는 무엇인가.

=판씨네_영화 초반 현철이 어머니에게 병실에서 나가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아들이 엄마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건 베트남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경우다. 더군다나 현철은 노인 문제를 가르치는 교수 아닌가. 아무래도 현지 관객이 공감하지 못할 거 같아 각본 쓰고 촬영할 때 톤을 낮추는 식으로 신경 썼다. 가족에 테마를 뒀기에 나이 듦을 공에 비유하는 프롤로그를 가족이 함께 식사 준비를 하는 풍경으로 바꾸기도 했다. 수영장 신에서 “우리 세대가 나라를 지켜서 너희가 파티도 할 수 있다”고 훈계하는 대사는 중국 리메이크 <20세여 다시 한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오프닝 시퀀스를 잘 보면 찡그리고 있는 할머니가 엔딩에서는 웃고 있다. 시작이랑 끝을 그렇게 달리해 할머니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미우레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할머니 말투로 연기하고, 노래도 직접 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미우레_아무래도 리메이크 작품이라 원작과 비교되는 게 부담스러웠다. 영화 속 노래들이 베트남에서 굉장히 유명한 것들인데 내가 부른 노래를 사람들이 인정해줄지 걱정도 됐다. 할머니와 같이 살아본 적이 없고 자주 만나지 못해 노인들의 행동이나 말투가 낯설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며 연습하고, 촬영장에서 감독님이나 할머니 역의 배우에게 조언을 받기도 했다.

-판씨네 감독은 연출 이전엔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다. 그런 경력이 첫 영화 <내가 니 할매다>에 영향을 미쳤을까.

=판씨네_비평을 쓸 때는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촬영했는지 분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연출 역시 그렇게 분석하듯 접근했는데, 프로듀서가 계속 그렇게 하면 영화가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해서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테마를 분명히 하기 위해 곳곳에 의미를 심어놓았다. 젊어진 주인공이 신나서 옷을 갈아입을 때 배경이 옛 사이공 거리에서 막 개발되고 있는 도시로 점점 바뀌도록 했다. 영화 속 사진관은 한국판 <수상한 그녀>에서는 오드리 헵번 사진이 걸려 있는데 난 탄응아(베트남의 국민배우로, 인질이 된 아들을 지키려다 총에 맞아 요절했다)의 사진을 걸었다. <내가 니 할매다>는 젊음으로의 회귀보다는 꿈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 사진관의 배우가 바로 탄응아의 아들이다.

-<내가 니 할매다> 역시 베트남의 명곡들을 만날 수 있다. 가수이기도 한 미우레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판씨네_전설적인 작곡가 찐 콩 손이 쓴 곡들이 많다. 그가 만든 노래는 베트남인이라면 모두 알 만큼 유명하지만 그걸 잘 부르는 게 굉장히 힘들다. 음악감독은 다른 사람의 노래를 더빙하는 방향을 제안했는데, 난 무조건 미우레가 불러야 한다고 고집했다. 잘하기보다는 마음으로 부르는 데에 집중하라고 디렉션을 줬다. 베트남 내에서도 노래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난해하고 시적인 노래지만 미우레가 잘 소화해줬다.

미우레_사실 가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를 물어가며 연습했다. 다만 온전히 그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갔다. 어떠한 기준도 없이 그저 마음으로 불렀다.

-<내가 니 할매다>는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판씨네_평론가로 활동할 때 영화는 물론 동료 평론가에게 혹평을 남기는 걸로 유명했다. 그래서 “어디 한번 만들어만 봐라” 하고 벼르던 사람도 많았다. 주변에선 첫 영화로 리메이크 작품을 하면 원작과 비교해서 공격이 더 심하다고 말렸지만, 결국 내 감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하며 밀고 나갔다. 걱정한 것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현실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확실히 요즘에는 주변 영화인들이랑 얘기하기가 편해졌다.

미우레_전에는 안티팬도 꽤 있었지만 <내가 니 할매다>가 성공하면서 많은 이들이 팬으로 돌아섰다. 나를 싫어했던 기자와 친해지기도 했다. 흥행 1위라는 성적도 좋지만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 가장 행복하다. 앞으로 작품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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