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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위대한 비상
2002-03-26

시사실/위대한비상/

■ Story

호숫가에서 쉬고 있던 한 무리의 기러기들이 인기척에 놀라 날아오른다. 그중 한 마리가 낚시 그물에 다리가 걸린 채 퍼덕이자 달려온 소년이 그물을 끊어준다. 그물조각을 징표처럼 발목에 단 기러기와 함께, 지중해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이르는 회색기러기의 이동이 시작된다. 검은목두루미도, 백황새도, 백조도, 생존을 위해 철새들은 제각각 북반구쪽 고향의 봄을 찾아 수천 킬로미터의 기나긴 비행에 오른다.

■ Review 막연히 한두번쯤 하늘을 나는 꿈을 가져본 날개 없는 족속들에게, <위대한 비상>은 아주 특별한 시야를 열어주는 영화다. 인간의 말로는 ‘귀환의 약속’이라 표현된 철새들의 이동을 따라가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자면, 종종 마치 그 무리의 옆에서 함께 날고 있는 일원이 된 듯한 느낌에 빠질 정도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털의 미세한 떨림까지 엿볼 수 있는 클로즈업에서 노을진 하늘과 더불어 스크린을 가득 메운 수많은 새들의 롱숏에 이르기까지, 카메라는 철새들의 여행에 더없이 친밀한 동행으로 나선다. 파리의 에펠탑과 뉴욕의 마천루 숲을 멀리 내려다보며, 도시에서 부대끼는 인간의 삶을 훌쩍 떠나 하늘과 땅과 자연의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를 새삼 일깨우면서 말이다.

도입부에 낚시 그물을 징표로 얻은 기러기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계속되는 <위대한 비상>의 여정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새들이 주인공이다. 주연배우를 알아볼 수 있을 리 만무하고, 약간의 내레이션 외에는 대사도 없지만, 그들만의 우주에서 벌어지는 드라마와 캐릭터를 조금씩 발견해가는 과정은 뜻밖에 흥미진진하다. 눈밭에서 날씬한 다리 끝으로 사뿐사뿐 걷는 두루미의 우아한 군무, 비행에 서툰 새끼들의 연습을 위해 바위 끝으로 모는 어미새, 새끼를 잃고 망연자실한 듯한 킹 펭귄 한쌍의 뒷모습. 날개가 부러진 채 낙오된 새가 바닷게에게 먹히는 장면까지, 철새들의 날갯짓을 따라 고달픈 생존의 이야기와 함께 인간의 시야 너머 자연의 수많은 빛깔을 펼쳐보이기 때문이다.

남극의 얼음바다부터 사막과 아프리카의 열대우림까지, 더없이 풍부한 표정과 색을 띠는 풍광은 순간순간 무료할 틈을 잊게 하는 또 다른 주인공. <마이크로코스모스>에서 곤충들의 소우주를 현미경 같은 섬세함으로 포착한 바 있는 제작진은, 세계 36개국 175개 지역을 돌며 35종에 이르는 철새들의 여정을 담기 위해 꼬박 5년을 들였다. 각지에서 1천여 마리 이상의 새들을 모집해 알에서부터 부화시키고, 그들을 따라 14명의 촬영감독과 조류학자, 파일럿 등 150여명의 스탭들이 3년간 촬영했다고. 끈질긴 인내와 관찰로 길어올린 영상은, ‘위대한 여행자’들과 함께 아직도 다 헤아릴 수 없는 자연의 품을 돌아보게 한다. 황혜림 blaue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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