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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사막에서 낙원까지 - <밤> <로코와 그의 형제들> <아이 엠 러브>

경제와 문화의 도시 밀라노

<밤>. 공장지대인 세스토 산 조반니. 사진은 잔 모로.

나에게 밀라노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함께 왔다. 밀라노에서의 하룻밤을 그린 <>(1961)을 통해서다. 패션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밀라노는 보통 세련되고 화려한 공간으로 각인돼 있다. 도시를 대표하는 밀라노의 너무나도 눈부신 대성당을 떠올려보라. 그렇게 휘황찬란한 곳이 진정 신을 위한 성전(聖殿)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물론 안토니오니의 영화에도 밀라노의 화려함과 세련미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은 밀라노의 또 다른 성격을 창조했고, 각인시켰다. 바로 소외와 체념이다. <>의 고립된 인물들은 세상과 벽을 두고 있지만, 굳이 그런 상태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체념한 채, 소외를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으로 수용하고 있다. 안토니오니의 인물들은 베르메르 혹은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초상들처럼 대단히 고립된 채 체념하고 산다.

<>은 전반부의 낮과 후반부의 밤으로 양분돼 있다. 낮에 볼 수 있는 밀라노의 모습은 경제 성장을 거듭하는, 다른 말로 하자면 도시의 곳곳이 부서지고 새로 건설되는 개발의 공간이다. 제법 성공한 소설가 조반니(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지적인 아내 리디아(잔 모로)와 함께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비평가 친구를 방문한다. 말하자면 <>은 죽음을 목전에 둔 어느 지식인의 병상에서 시작한다. 그 죽음은 꼭 친구의 소멸만을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의 전반부는 지식인 계층의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산업계 사람들의 이야기인 만큼, 친구의 죽음은 소설가인 조반니 자신의 죽음과 결코 관계없는 일이 아니다. 세상이 오로지 ‘경제 기적’의 환상 속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달릴 때다.

밀라노, 안토니오니의 사막

낮 장면에서 강조된 장소는 두곳이다. 밀라노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봄피아니’(Bompiani) 근처 시내와 밀라노 주변의 공업지역인 ‘세스토 산 조반니’(Sesto San Giovanni)다. 최근에 신간을 발표한 조반니는 그 축하를 위해 출판사에 왔다. 이 장면은 실제로 봄피아니 출판사에서 촬영했다. 사람들도 대개 출판문화계의 실제 인사들이다. 문화계의 유명 인사 몇명만 소개하면, 먼저 조반니가 이곳에 들어서며 인사하는 중년 남자는 작가이자 봄피아니 출판사의 설립자인 발렌티노 봄피아니다. 봄피아니가 조반니에게 소개하는 노작가는 195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살바토레 콰지모도다. 또 한명의 흥미로운 인물은 얼마 전 타계한 움베르토 에코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잔 모로 뒤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똑똑한’ 청년이다(당시 29살). 말하자면 이 장면은 문화계와 친교를 맺고 있는, 혹은 맺으려는 조반니와 리디아 부부의 사회적 성격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밀라노는 현대 이탈리아 문화의 대표 도시인 만큼,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파티 장면은 밀라노의 한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계에서, 영화만 로마에 주도권을 내준 정도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밀라노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그런데 아내 리디아에겐 인기 작가로 성장해가는 남편 조반니의 모습이 낯선 모양이다. 리디아는 파티에 잘 섞이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혼자 밀라노 시내를 걷는다. 대사가 거의 없는 이 장면은 ‘리디아의 방황’ 시퀀스로 유명한데, 사막 같은 밀라노 시내를 거쳐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밀라노의 공장지역인 세스토 산 조반니다. 뒷골목에서 청년들이 맨주먹으로 싸움을 하고 있고, 이곳저곳이 삽으로 파헤쳐져 있는 곳이다. 여기는 공장지역인 만큼 노동자들이 밀집해 살았고, 20세기 초 이탈리아공산당의 텃밭이었으며, 파시즘 시절엔 밀라노 레지스탕스의 본산이었다. 이탈리아의 ‘스탈린그라드’라는 별칭이 붙은 이곳에서 젊은 시절 두 사람은 사랑을 싹 틔웠다. 말하자면 리디아는 자신들의 출발점을 찾아갔고, 그때와 너무 달라진 남편의 현재가 혼란스러운 것이다. 조반니에겐 이젠 청년의 순수함 같은 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조반니는 적당히 성공하여 아파트에 살며 중산층을 상징하는 알파로메오 승용차를 몬다.

권태로운 낮 시간을 보낸 뒤, 부부가 도착한 곳이 밀라노 북쪽의 브리안차(Brianza) 지역에 있는 백만장자의 저택이다. 이곳에서 밤새 열리는 파티가 <>의 후반부다. 도입부부터 안토니오니 영화 특유의 ‘느릿하고 심심한’ 재즈가 쉼 없이 연주되는 게 <>의 또 다른 매력인데, 특히 후반부는 음악이 밤과 어울려 마법처럼 혼을 뺀다(음악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재즈 음악가인 조르지오 가슬리니가 맡았고, 영화 속에서 연주도 한다). 전반부의 파티와 달리, 백만장자의 파티에서 조반니가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은 거의 없다. 이들은 주로 경제계 인사들이고, 돈 이야기에만 유독 눈을 번득인다. 이들에게 헤밍웨이는 작가이기보다는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를 여럿 죽인 나쁜 놈인데, 엄청 돈을 번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주인은 조반니에게 이런 질문도 한다. “실례지만, 얼마 버나요? 어떻게 사나요? 혹시 아내가 부자입니까?” 말하자면 그는 예술가, 소설가라는 직업을 이해할 수 없다. 부자 아내를 두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에 따르면 이곳의 파티가 밀라노의 또 다른 얼굴이다. 문화와 경제의 도시 밀라노는 전반부의 출판사와 후반부의 저택으로 비유돼 있는 셈이다. 여기서 조반니가 유일하게 말을 붙이는 대상이 저택과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헤르만 브로흐의 난해한 소설 <몽유병자들>을 읽고 있는 주인의 딸(모니카 비티)이다. 소설은 베를린 사회 최상층의 퇴폐와 향락을 주요한 소재로 이용한 만큼, 저택에 모인 밀라노 부자들에 대한 은유일 테다. 지금 몽유병자들이 파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내 리다아는 여기서도 섞이지 못하고 아예 혼자서 겉돈다. 그녀는 문화계에서도, 경제계에서도 전혀 어울리지 못한다. 아니, 어울리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리디아는 ‘달리는 기차’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자신이 발을 딛고 사는 곳이지만, 그런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방인과 비슷한 처지다. 안토니오니에 따르면, 밀라노는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고립시키는 메마른 공간인 셈이다. 곧 밀라노는 안토니오니에겐 사막이다.

<로코와 그의 형제들>. 밀라노 대성당 지붕 장면. 사진은 애니 지라르도와 알랭 들롱.

헤밍웨이에겐 사랑의 낙원

헤밍웨이처럼 밀라노를 사랑한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안토니오니는 밀라노를 죽은 사막처럼 그렸는데, 이와 달리 헤밍웨이는 이곳을 사랑과 열정의 성지처럼 그렸다. 그의 첫 베스트셀러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1929)를 통해서다. 알려진 대로 헤밍웨이는 1차대전 당시 자진 입대했고, 그때 입은 부상과 입원의 경험에서 자전적인 소설을 썼다. 주인공인 프레드릭 헨리 중위는 헤밍웨이의 소설 속 분신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북쪽 전선인 고리치아(Gorizia)에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후송되는데, 바로 그곳이 밀라노다. 이탈리아군대의 동료 장교들이 부상당한 헨리 중위를 위로하면서 동시에 질투에 가까운 부러움을 드러내는데, 이유는 역시 후송되는 도시가 밀라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밀라노에 가면 반드시 해야 할 일도 추천한다. “자네는 밀라노로 가는 거야! 코바, 갈레리아, 캄파리의 도시로. 라스칼라는 꼭 가야 해.”

밀라노에서 헨리 중위는 영국인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와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불같다는 상투적인 수식어가 어울리는 게, 이들은 ‘여름’의 밀라노에서 사랑을 시작했고, 청춘의 특권인 듯 거의 매일 밤 사랑을 나눴고(자랑하듯 쓰고 있는 헤밍웨이의 필력을 상상하시라), 헤밍웨이처럼 술고래로 그려진 헨리 중위는 너무나 맛있게 매일 술을 마시기 때문이다. 포도주, 코냑 같은 유명한 술은 물론이고,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술’인 캄파리(Campari), 베르무트(Vermuth), 그랍파(Grappa) 등을 얼마나 마셔대는지, 술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읽기를 중단하고 마시러 나갈 것 같다. 헤밍웨이는 밀라노를 술과 사랑으로 불타는 도시처럼 그리고 있다.

헨리 중위는 동료들의 추천대로 보통 ‘코바’(Castel Cova, 코바 성이라는 뜻)라고 불리는 중세풍 건물에 들러 캐서린에게 줄 선물을 사고, 그녀와 함께 대성당 주변과 그 옆의 ‘갈레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이탈리아 통일의 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이름을 딴 상가)라고 불리는 밀라노 최고의 상가를 산책하고, ‘산시로’(San Siro) 경마장에서 약간의 돈을 걸며 여흥을 즐기기도 한다. 전쟁과 부상, 그리고 허무한 죽음이 끊이지 않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밀라노는 유일하게 빛이 가득한 천상의 도시처럼 그려져 있는 것이다.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영화로 각색됐고, 초기 멜로드라마의 거장인 프랭크 보재지의 작품(1932)과 50년대 스튜디오 시절에 제작된 찰스 비더의 작품(1957)이 유명하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밀라노 시퀀스는 세트에서 촬영된 까닭에 도시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두 영화 모두에서 강조하고 있는 밀라노의 명소는 단연 대성당이다. 아마 대성당만큼 밀라노를 금방 알릴 수 있는 장소는 없다고 본 것 같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는 밀라노 이외에도 전선인 고리치아, 연인이 재회하는 마조레 호수(Lago Maggiore)의 호반도시 스트레자(Stresa), 그리고 그 호수의 스위스쪽 국경도시인 브리사고(Brissago) 등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두 감독에게도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단연 밀라노였던 셈이다. 말하자면 외국인들에게 밀라노는 헤밍웨이가 품었던 사랑의 흥분을 기대케 하는 것 같다.

‘백작’ 비스콘티가 밀라노를 그리는 방식

밀라노가 배출한 대표 영화인을 꼽자면 단연 루키노 비스콘티다. 알다시피 비스콘티 가문은 밀라노의 시뇨리아(Signoria, 지배가문)였다. 이들은 대략 13세기부터 14세기까지 밀라노를 지배했고, 이후 스포르차 집안이 그 권력을 이어 받는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더불어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두 세력이었다. 루키노는 이 집안 출신의 백작이다. 말하자면 왕족이나 다름없는 유명 인사가 영화는 흥행업이라는 폄하가 심하던 시절에 감독으로 등장한 셈이다. 곧 그의 삶 자체가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전쟁 중에는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는 레지스탕스였고, 또 변혁을 꿈꾸던 공산주의자였다. 파시스트들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그가 전쟁이 끝나는 덕분에 극적으로 살아남은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비스콘티는 귀족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바꿔놓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네오리얼리즘이 꽃필 때, 그는 진보적인 영화인들의 ‘보스’였다. 그의 사상 때문에 비스콘티는 ‘밀라노의 붉은 백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비스콘티가 고향 밀라노를 배경으로 만든 유일한 극영화가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이다. 네오리얼리즘 미학으로 전개한 가족멜로드라마다. 전후 경제 부흥 시절에 산업적으로 낙후된 남부의 주민들은 직장을 찾아 북쪽으로 대거 이동했는데, 대개의 목적지가 밀라노였다. <로코와 그의 형제들>은 남부 출신의 다섯 형제가 산업도시 밀라노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다. 이들은 밀라노 사람들로부터 차별받고, 먼저 정착한 남부 사람들로부터도 차별받는다. 이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열악한 조건을 비유하는 게 권투다. 사각의 링 위에서 팬티 하나만 입고 겨루는 권투는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남부인의 존재조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형제들 가운데 둘째인 시모네(레나토 살바토리)와 셋째 로코(알랭 들롱)가 권투에 소질을 보였다. 돈을 노리고, 또는 진짜 사랑을 발견해 이들 사이에 끼어든 매춘부가 나디아(애니 지라르도)이다. 영화는 이들 세 사람, 곧 매춘부와 권투선수 지망생이라는 최하층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배회하는 밀라노는 뿌연 안개나 축축한 비 때문에 늘 회색이거나 어둡다. 다른 인물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밀라노도 거의 비슷하다. 밀라노의 명소를 다 꿰고 있을 비스콘티가 만든 영화인데, 배경으로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곳, 또는 알려진 곳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진창이 된 길과 희뿌연 공기가 더 자주 비친다. 최하층 인물들의 삶의 조건이 그렇기 때문일 테다.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에 비친 것처럼, 산업도시로서의 밀라노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하층민과는 대척점에 있는 도시라는 건 네오리얼리즘 때부터 표현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비토리오 데시카의 <밀라노의 기적>(1951)이다. 철거민들, 빈민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밀라노의 거리는 비가 와서 진창이거나, 자욱한 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아이 엠 러브>. 틸다 스윈튼이 대성당을 올라가고 있다.

쿠스투리차의 집시들, 밀라노에 가다

비스콘티는 <로코와 그의 형제들>에서 밀라노가 관광용처럼 비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런 중에도 도시의 명소를 이용한 유일한 곳이 대성당이다. 하지만 이곳도 교회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식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알랭 들롱이 연기한 로코가 형을 위해 연인을 포기하는 장면은 밀라노의 대성당 ‘지붕’에서 촬영됐다. 말하자면 ‘낭떠러지’ 위에서 찍은 셈이다. 연인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는 로코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바닥으로 추락할 것 같은, 혹은 추락하고 싶은 슬픔일 테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멜로드라마 <아이 엠 러브>(2009)에도 ‘대성당의 지붕 장면’이 인상적으로 나온다. 이 장면은 구아다니노의 비스콘티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데, 딸의 동성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어머니(틸다 스윈튼)는 혼자 아무 말 없이 성당의 지붕에 올라가 시내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앉아 있는 것이다.

밀라노의 대성당은 르네상스 시절 건설됐다. 표면의 넓이에 있어선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과 스페인 세비야의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당대의 일반적인 교회와 달리 밀라노 성당은 독특하게도 고딕 양식을 대거 적용했다. 고딕의 특성인 하늘을 찌르는 첨탑 형식의 구조물들이 흰색 교회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누구라도 밀라노의 성당 앞에 서면, 웅장함과 화려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은 마르코 벨로키오의 무솔리니 관련 전기영화인 <승리>(2009)에 잘 드러나 있다. 청년 무솔리니는 밀라노에서 사회주의자 정치가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그의 야망은 밀라노 대성당 앞을 기차가 질주하는 몽타주 장면으로 압축돼 있다. 힘차게 질주하는 시커먼 기관차, 그리고 하늘을 찌르는 웅장한 교회는 청년 무솔리니의 정치적 야망이자 당대 파시스트들의 욕망 혹은 과대망상일 테다. 부유하고 화려한 밀라노에 가면 뭔가를 이룰 것 같은 기대는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집시의 시간>(1988)에도 잘 표현돼 있다. 쿠스투리차가 유고연방이 와해되기 전, 사라예보에서 주로 활동할 때 만든 작품이다. 당시 동구권, 특히 유고연방 주민들은 어렵지 않게 이탈리아 방송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이탈리아의 상황에 대해 쫙 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상황은 비슷해서, 이탈리아말을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쿠스투리차도 어릴 때부터 이탈리아의 칸초네를 들으며 성장했다. 아마 그도 한때는 밀라노에 대한 환상을 품었을 것이다.

<집시의 시간>은 사라예보 인근에 몰려 사는 집시들에 대한 영화다. 이들은 범죄집단의 두목에게 속아,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밀라노로 가는데(사실상 인신매매), 정작 그들에게 주어진 일은 도둑질, 동냥, 그리고 여성이라면 매춘 같은 범법행위들뿐이다. 기껏 번 돈을 두목에게 거의 다 뺏기는 것은 물론이다. 대성당이 인쇄된 그림엽서를 보며, 궁궐 속에 사는 귀족을 꿈꿨던 집시들은 대개가 그 앞에 꿇어앉아 동냥을 하거나 관광객을 속여 소매치기를 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남성들을 유혹하곤 한다. 멀리서 봤을 때 그리도 아름답던 성당이, 가까이 다가가보니 이들 집시들에겐 돈을 벌어야 하는 삶의 비정한 전쟁터가 돼 있다. 집시들의 시선에서 보면, 밀라노의 대성당은 냉정하고, 오만한 도시의 은유인 셈이다.

밀라노 주변엔 아름다운 호수가 많기로 유명하다. 특히 밀라노와 가장 가까운 코모 호수(Lago di Como)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의 하나로 말해진다. 다음엔 밀라노 부근의 호수로 가겠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부터 최근의 제임스 본드 영화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용했다. 당신은 아름다운 호수를 보면 무엇을 상상하는가. 다음의 여행은 그런 상상의 결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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