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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 도서] <지극히 내성적인>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최성열 2016-05-05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펴냄

<지극히 내성적인>은 최정화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작가는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면 위에는 아무런 파동도 없는 평온한 일상, 하지만 불안은 언제나 내재되어 있다. 싸움 한번 없었던 부부 관계는 그래서 더 위험한 균열을 품을 수 있고, 서로를 배려하는 동거인들은 그 배려 때문에 불편한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아주 미세한 감정의 여진을 감지해낼 수 있는 예민하고 소심한 사람들. 최정화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오십살이었던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중년 여성은 알코올에 중독되듯 거짓말의 희열에 빠지고(<홍로>), 완전무결한 외모를 가졌지만 갑자기 틀니를 하게 된 남편은 술을 마셔서라도 틀니의 존재를 잊으려 한다(<틀니>). 소심한 사람들이 용기를 얻거나 기분을 쇄신하고자 할 때 맥주는 도화선이 된다. 그때 이렇게 말할걸, 이렇게 행동할걸… 후회할 일투성이인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에게 톡 쏘는 맥주와 소설은 저녁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술을 부르는 문장

그는 잔에 맥주를 따랐다. 부드럽고 하얀 거품을 걷어내고 그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부었다. 그는 한꺼번에 거의 삼분의 이 정도를 마셨다. 그는 평소에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는 인생이라는 바다가 좀처럼 파악할 수 없으니 그저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을 항해의 지표로 삼고 있다는 얘기를 그녀에게 한 적이 있다. 술은 그중 피해야 할 목록에 있었다. 그런데 막상 마시니까 기분이 슬슬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는 두 번째 잔을 들어 목구멍에 부었다. (<틀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