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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은, 다음 행보가 더 기대되는 캐릭터” - 이제훈 인터뷰
장영엽 2016-05-09

공교롭게도 2016년에는 배우 이제훈의 무전기를 든 모습을 두 작품에서 보게 됐다. 드라마 <시그널>(2016)과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이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에서 그가 무전기를 잡게 되는 이유가 판이하게 다른 점이 재미있다. <시그널>의 박해영 경위가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무전기가 남긴 과거의 흔적을 부여잡는 인물이라면, <탐정 홍길동>의 홍길동은 나쁜 놈들을 더 통쾌하게 골탕먹이기 위해 무전기를 사용한다. 정의감도 없고, 신념도 없고, 죄의식은 더더욱 없는 <탐정 홍길동>의 이 다크 히어로는 매 작품을 거치며 도전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가고 있는 배우 이제훈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피터팬을 닮은 명탐정으로 제대 후 첫 스크린 복귀전을 치른 그를 만났다.

-큰 스크린 속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겠다. <탐정 홍길동>이 제대 후 첫 영화 복귀작이니 말이다.

=맞다. 그동안 드라마보다는 영화에서 주로 활동해왔고, 영화의 메커니즘이 더 익숙하지만 스크린 속 내 모습이 어떨지 빨리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오랜만에 영화로 관객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니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기도 하고.

-군 복무 중에도 수많은 출연 제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 수많은 선택지 중 결국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첫 번째 키워드는 ‘조성희 감독님’이었다. 단편 <남매의 집>부터 <짐승의 끝> <늑대소년> 등 감독님의 전작을 보면서 이렇게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진 분과 언젠가 함께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마침 내가 제대할 무렵에 <탐정 홍길동>의 시나리오를 보게 되었는데, 굉장히 흥미롭더라. 악의 무리를 소탕해야겠다는 정의감이나 신념이 없는, 다크 히어로 같은 느낌의 인물이 아이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구원과 용서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시나리오와 본인이 생각하는 그림을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시는 감독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꿈 많은 소년이 ‘나 이런 영화, 정말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을 건네는 느낌이었달까. (웃음) 그때 아, 내가 홍길동이 되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조성희 감독은 <파수꾼>을 함께 작업한 윤성현 감독과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다. 이 영화 이전부터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법도 하다.

=내가 <파수꾼>에 출연할 때 조성희 감독님이 <짐승의 끝>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영화아카데미 사무실에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인사만 나누던 사이였다. 그런데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되어 감개무량했다.

-조성희 감독과 절친한 윤성현 감독이 촬영 전에 어떤 ‘팁’을 알려주진 않던가.

=무척 착하고 여린 분이라고 하더라. (웃음) 그래서 현장에서 소통하기가 아주 편할 것이고, 감독님의 세계관에 내가 들어갔을 때 어떤 그림이 나올지 기대된다고도 했다. 촬영하면서 느낀 건, 조성희 감독님이 여태껏 만난 모든 감독님들을 통틀어 배려와 소통 면에서 가장 열려 있는 분이라는 점이었다. 이 영화는 배우가 기술적으로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배우로서는 프레임 안에서 움직여야 하기에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홍길동이 왜 이렇게 움직이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감독님이 워낙 세심하게 말씀해주셔서, 어떤 걸림돌도 없이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촬영장 갈 때 마음이 아주 편했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정돈해 감독님을 믿고 나를 던지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

-홍길동은 몸은 성장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이에 머물러 있는 인물 같다. 정신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어린아이의 몸을 가진 명탐정 코난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인물이라고 할까.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도 촬영하면서 홍길동이 피터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어른이지만 아직 미처 성장하지 못한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런 홍길동의 모습이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홍길동은 아이들과 동행하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결핍과 상처를 이겨내는 거다. 그런 부분에서 이 친구의 다음 행보가 정말 궁금하다. 어떻게 보면 <탐정 홍길동>의 길동은 이 작품에서 완성되는 인물이 아니라, 다음이 더 기대되는 캐릭터다.

-어린 소녀들이 사이드킥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탐정 홍길동>은 인상적인 탐정영화다. 하지만 아역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건 성인배우에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겠다.

=‘동이’를 연기하는 노정의양은 워낙 드라마 경험도 많고 연기를 잘했다. 현장에서 촬영해본 경험이 많아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친구였다. 반면 ‘말순’을 연기한 김하나양은 <탐정 홍길동>을 찍을 때만 해도 연기 경험이 전무했다. 당시 하나가 대여섯살이었는데, 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한 나이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감독님이 상당히 애를 먹었다. 나도 하나가 집중해서 연기할 수 있게끔 대사를 자주 맞춰보려 했다. 그런데 하나양이 연기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정제되지 않은,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느껴지는 어떤 희열이 있더라.

-아역배우와 친해지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면.

=나도 아역배우와 제대로 연기하는 게 처음이라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걱정을 안고 촬영장에 갔다. 그런데 아역 친구들의 부모님이 늘 현장에 함께 계셔서 도움이 많이 됐다. 우리 현장이 많이 추웠는데, 난로에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 가져다주시며 배려하는 모습에, 오히려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더 편하게 느껴지더라. (웃음) 그렇게 부담감을 떨치고 나도 마치 아이가 된 양 장난을 치며 개구쟁이처럼 지냈던 것 같다.

-아역배우들은 당신을 뭐라고 부르던가.

=삼촌. (웃음) 삼촌 소리 들을 나이다. 하하.

-영화 속 홍길동은 정의나 신념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달려가는 인물이고, 동이와 말순이가 원수의 손녀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모진 모습을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충무로에서 가장 예의 바르고 착한 배우로 소문난 사람으로서(웃음),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캐릭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 나도 짜증날 때가 있고 화가 치밀어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있을 때는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게 조심스럽다. 상대방이 혹시 오해하거나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영화 속 길동은 짜증나면 짜증나는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내지르는 인물이다.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긴 했지만, 여과 없이 감정을 내지르니 속이 시원한 면도 있더라. 그런데 속시원한 건 잠깐이다. 뒤돌아서면 내가 왜 그랬지 싶더라. (좌중 웃음) 저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을 눈에 불이 날 것처럼 쏘아보고 애들이 떠들면 “트렁크에 묶어서 처넣을까” 이런 모진 말도 하고….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힘들기도 하고, 그러다가 무너지는 길동이의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그랬다.

-평소의 모습과 사뭇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건데, 혹시 영화를 보며 낯설거나 새롭게 느껴진 스스로의 모습이 있었나.

=영화 후반부에 길동이 아이들에게 잔인한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그 대목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이 대사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대사가 길기도 하고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 상당히 당황했었다.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몰입하고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들에게 잔인한 말을 하면서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그 아이들을 잃고 싶지 않아 하는 길동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나왔을지 걱정을 많이 한 장면인데, 막상 영화를 볼 때는 ‘내가 저렇게 연기했었나’ 싶을 정도로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더라.

-영화 출연작으로는 <건축학개론>(2012)이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았지만 <분노의 윤리학>(2012)의 스토커, <파파로티>(2012)의 조폭 고등학생, 드라마 <시그널>의 사연 있는 형사 등 개성 강한 인물들을 연기해왔다. 그간의 필모그래피는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도 읽힌다.

=매 작품을 거치며 나 스스로 한 단계씩 성장하길 바란다. (기자의 휴대폰을 가리키며)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우리가 이런 휴대폰을 꿈꾼 적이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배터리가 있고 버튼이 있는 휴대폰이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전화기는 당연히 그런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휴대폰을 누군가가 꿈꾸고 실현했기 때문에 ‘그래, 우리가 이런 제품을 기다렸지’라고 말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온 게 아닐까. 나는 그런 새로움을 영화를 통해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아직도 부족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하나의 시도에 그치지 않고 참신하고 재미있는 모습을 언젠가는 제대로 실현해서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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