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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터/액트리스] 어른아이의 위트 -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 제이슨 베이트먼

<더 기프트>

영화 2016 <주토피아>(목소리 출연) 2015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 2015 <더 기프트> 2014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2> 2014 <당신 없는 일주일> 2013 <내 인생을 훔친 사랑스러운 도둑녀> 2012 <맨섬> 2012 <디스커넥트> 2011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2011 <황당한 외계인: 폴> 2010 <스위치> 2009 <인 디 에어> 2008 <핸콕> 2007 <주노> 2004 <스타스키와 허치> 1999 <트러블 앤 섹스> 1992 <살인 본능> 1982 <아빠는 멋쟁이>

감자로 만든 장난감 총을 키득대며 가지고 놀던 벡스터(제이슨 베이트먼)는 잘못 발사된 ‘감자’를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병원에서 깨어나보니 수년 동안 연락을 끊었던 부모님이 달려오는 중이다. 다급한 마음에 누나 애니(니콜 키드먼)에게 전화한 벡스터는 부모님이 오기 전에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집에 못 가겠다고 해. 그냥 당당하게 말하면 되지”라고 퉁명스레 대꾸하는 누나에게 벡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언제 그런 적 있어?”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에서 ‘감독’ 제이슨 베이트먼은 ‘벡스터’ 역에 배우인 자신을 캐스팅한다. 어느덧 중년의 초입에 들어선 벡스터는 꽤 이름을 알린 소설가가 됐지만 행위 예술가인 부모를 따라 온갖 기이한 퍼포먼스를 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전히 부모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벡스터는 소년에서 성장이 멈추어버린, ‘덜 자란’ 어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화 속 벡스터의 모습에서 10살, 아역배우로 시작해 35년이라는 경력을 쌓은 노련한 배우 제이슨 베이트먼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케빈 윌슨의 소설 <팽씨네 가족>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 제이슨 베이트먼이 매혹됐던 건 어쩌면, 벡스터의 삶과 자신의 삶 사이에서 찾은 유사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196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TV프로듀서이자 감독인 아버지와 아역배우인 누나를 보며 자연스럽게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1981년 TV시리즈 <초원의 집>으로 데뷔한 그는 시트콤 <아빠는 멋쟁이>에서 코미디 연기를 선보여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의 경력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작품은 2003년 <폭스>에서 제작한 TV시리즈 <못 말리는 패밀리>다(2006년 시즌3까지 이어졌던 시리즈는 긴 공백 끝에 2013년 넷플릭스에서 시즌4로 다시 부활했다). 사기꾼인 아버지가 횡령 혐의로 감옥에 가면서 남겨진 ‘금수저’ 망나니 가족들이 겪는 좌충우돌 사건을 그린 이 작품에서 제이슨 베이트먼은 아내 없이 아들을 혼자 키우며 철없는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둘째 아들 마이클 역으로 출연해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2005년 골든글로브 코미디•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도 그의 손에 쥐어졌다. TV시리즈에서 얻은 연기의 활력은 1987년 <틴 울프2>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그의 영화 경력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조연에 그쳤던 영화 속 비중은 주연으로 점점 넓어졌고, 영화배우로서의 존재감도 차츰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캐릭터 설정을 반복, 변주해 재미를 만들어내는 ‘TV시트콤 시리즈’라는 형식적 특성상, 제이슨 베이트먼은 영화배우로서 자신의 색을 찾기도 전에 관객에게 (<못 말리는 패밀리>의) ‘마이클’로 각인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제이슨 베이트먼’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당신이 떠올릴 바로 그 이미지,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옷차림에 동네 어디서든 쉽게 만날 것 같은 친숙한 외모, 여기에 반전 같은 어리숙함이 뒤섞여 가족 내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당하지만 한편으론 이유 모를 강박에 시달리기도 하며, 꽉 막혀 소통도 안 되는 고집불통의 냉소적 캐릭터는 이렇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아내와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누지 못하고 친구들까지 동원해 휴양지로 떠나 우스꽝스러운 심리치료를 받는 남편(<커플 테라피: 대화가 필요해>)이나 뜬금없는 외계인을 잡기 위해 슈트 차림으로 ‘덕후’들을 추적하는, 진지해서 더 바보 같은 비밀요원(<황당한 외계인: 폴>), 혹은 사회에선 잘나가는 변호사지만 집에선 아내와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허점투성이인 남편(<체인지 업>), 자신의 이름을 도용한 사기꾼에 쩔쩔매며 끌려다니는 어리숙한 가장 (<내 인생을 훔친 사랑스러운 도둑녀>) 등으로 이야기에 따라 조금씩 변주될 뿐이다. 이러한 전형성을 가장 잘 포착한 영화 중 하나가 1편에 이어 2편까지 제작된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일 것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최악의 상사 때문에 승진의 기회를 잃을 위기에 놓인 대기업 임원 ‘닉’으로 등장한다. 직업은 다르지만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은 세명의 친구는 각자의 상사를 서로 죽여주기로 합의한다. 이때 닉은 이 3인방 중에서 가장 이성적인 척 굴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어눌함과 어리숙함을 드러냄으로써 인물간 균형을 맞춘다. <텔레그래프>는 제이슨 베이트먼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웃음에 대해 영국인인 어머니의 유머감각을 물려받은 ‘건조하고 냉소적인 영국식 위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변주, 소비되는 자신의 연기 경력에 대해 그 자신이 경계를 늦춘 것은 아니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못 말리는 패밀리> 이후 저에게 들어온 역할은 모두 다 비슷한 것들뿐이었어요. 하지만 전 그런 영화산업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이건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예요. 제가 먼저 다른 종류의 연기를 보여주기 전에 그들이 먼저 내게 다른 걸 요구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실제로 <못 말리는 패밀리> 이후 제이슨 베이트먼의 필모그래피는 이미 인정받은 연기를 탄탄히 쌓아나가는 한축과 반대로 자신이 쌓아놓은 이미지를 무너뜨리기 위해 싸우는 다른 한축으로 양분되는 듯하다. 친구의 애인과 사랑에 빠져 일주일 동안 비밀데이트를 즐기는 상류층 예술가로 등장한 <더 롱기스트 위크>에서 그가 보여주는 우아하고 능청스러운 연기는 마치 <매직 인 더 문라이트>(감독 우디 앨런)의 콜린 퍼스를 떠올리게 한다. 과거를 숨긴 채 평온한 가정을 지켜내려는 비열한 욕망을 웃음기 하나 없는 스릴러에 담아낸 <더 기프트>도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여우 닉 와일드 역)나 <비욘드 더 브릭: 어 레고 브릭커먼트리> 등에 목소리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새로운 축의 중요한 동력은 그 자신이 직접 연출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TV시리즈로 지명도를 얻어갈 무렵, 그는 몇몇 에피소드를 직접 연출해 미국감독조합에 최연소(18살)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공식적인 장편영화 데뷔작은 2013년 <배드 워즈>이다. 영화에서 그는 초등학생만 참여할 수 있는 단어대회에 우격다짐으로 참가해 우승을 하기 위해 경쟁자인 아이들에게 온갖 치사한 방해 수작을 부리는 아저씨로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고집불통 아저씨가 대회에 함께 참가한 한 소년과 ‘우정’을 나눈다는 교과서적 스토리라인을 살짝 걷어내면 그 아래에서 우리는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의 ‘덜 자란 어른’, 벡스터의 모습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역배우로 활동하느라 ‘보통’ 아이들이 겪었을 법한 평범한 일들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제이슨 베이트먼에게 성장의 경험은 TV드라마 속 가족과 재구성된 사건들이 전부였을 것이다. 게다가 아역 시절의 얼굴을 (희미하지만) 아직 가지고 있는 그에게 ‘성장’은 여전히 큰 숙제처럼 보인다. 겉모습만 커버린 난처한 어른, 어른의 모습을 한 소년. 그가 보여주는 위트나 유머는 어쩌면 이 괴리에서 출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배드 워즈>

서로의 연약함 인정하기

<배드 워즈>의 괴팍한 남자 가이(제이슨 베이트먼)는 호텔방을 얻어 쓰기 위해 함께 대회에 참가한 소년 차이타냐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던 둘은 한 멕시코 식당에 앉아 타코를 먹는다. “나는 너보다 4배쯤 나이가 많아 친구가 될 수 없다”던 가이는 어느 순간 소년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 ‘모든 여자가 젖꼭지가 있는 것은 아니라’ 믿는 소년을 더없이 진지하게 설득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못 말리는 패밀리>를 통해 배운 것은 고약한 대사를 하거나 못되게 구는 연기를 하면서 어떻게 그 속에서 인물 내면의 연약한 면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이건 혐오스러운 것과는 다른 거예요.” 중년 남자와 어린 소년이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이 장면, 꽤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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