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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자아로 살아가는 남자 <얼굴도둑>
김수빈 2016-05-18

“존재감이 없었지만 살아야 했다.” 세바스티앙 니콜라(마티외 카소비츠)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자살한다.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그에게는 비밀스런 취미가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자신과 거래하는 의뢰인들을 모방하는 것. 특수분장으로 외모를 똑같이 재현할 뿐 아니라 말투와 목소리, 행동에 묻은 습관까지 따라하며 세바스티앙은 타인의 삶을 만끽해왔다. 하루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앙리 드 몽탈트가 그의 고객으로 찾아온다. 어김없이 앙리 행세를 하던 세바스티앙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앙리의 숨겨둔 아내와 아들을 마주한다. 그는 전에 없던 과감한 선택을 한다.

스스로의 힘으론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타인이 쌓아놓은 세계 속에서 비로소 안정을 찾는 남자의 이야기다. 무리 안에서의 기계적 미소와 대비되는 분장 속 자연스런 미소, 분장을 벗겨낼 때의 공허한 눈빛 등 마티외 카소비츠의 몇몇 표정이 깊은 잔상을 남긴다. 타인의 자아로 살아간다는 영화의 아이디어는 <빅 픽처>(2010)를 떠올리게 한다. <빅 픽처>가 불륜, 살인 등의 키워드를 적극 활용하는 범죄 스릴러라면 <얼굴도둑>은 자아상실에 빠진 주인공의 심리묘사에 포커스를 둔다. 주인공이 의도치 않게 타인의 삶을 시작하는 <빅 픽처>와 달리 <얼굴도둑>에선 온전히 주인공의 선택에 기반한다는 점에서도 두 드라마가 갖는 철학적 질문은 차이를 지닌다. 특수분장과 성형수술로 외모를 재현해 측근까지 속이는 게 현실성 있는 일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서로를 뜯어보거나 깊게 응시하지 않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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