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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리메이크 시대
2002-03-27

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m

한국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미국 드림웍스사로부터 75만달러를 받고 리메이크 판권을 팔았다고 한다. <조폭 마누라>는 미라맥스사에 95만달러를 받고 역시 리메이크 판권을 팔았단다. <달마야 놀자>도 상당한 액수에 팔렸단다. 단순 판권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작 개봉 뒤의 수익에 대해서도 일정 지분을 분배받기로 했다니,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지고, 세계시장을 겨냥해 배급된다면 엄청난 흥행수익을 챙길 수도 있겠다.

미국 메이저 영화사에서 영화 한편의 시나리오 만들기에 투입되는 비용은 400만∼500만달러에서 많게는 1천만달러까지 육박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초대작 영화 한편을 족히 만들고도 남는 돈이다. 그러한 규모의 헐리우드에서 100만달러 안팎의 돈을 지불하고 상업성 높은 시나리오를 확보, 개작할 수 있다면 비용적으로 꽤 효율적인 제작 방식이 될 수 있겠다 싶다.

한국의 제작자는, 1억원 내의 비용을 들여 완성한 시나리오를 10배+@(알파 기호임!)를 받고 넘겼으니, 세상에 이렇게 남는 장사가 또 있으리. 시나리오만 보고 리메이크권을 제안한 것은 물론 아니라,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국내 흥행 성적, 그리고 대중성이 종합 진단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1997년작 <접속>은 독일의 한 제작사에 당시 5만마르크 정도에 리메이크 판권을 판매한 바 있다. 덩치 큰 미국의 제작배급사가 지불하는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될 돈이다. 눈물나는 대목이다, 흑. 재미있었던 것은 독일의 한 극장에서 <접속>의 리메이크판을 직접 확인하면서 느꼈던 특별한 감흥이다. 한국인의 감성과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고스란히 번안되어 재현한 독일판 <접속>의 감성을 확인하고 우리 것과 비교하는 것은 색다른 맛이었다.

1998년작 <조용한 가족>은 일본의 제작사인 세딕 인터내셔널사에 리메이크 판권을 넘겼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가타쿠리家의 행복>이란 제목으로 영화화하였다. 분명 리메이크 버전이지만 감독은 거의 창작품이란 느낌이 들 만큼 나름의 재해석, 재구성으로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뮤지컬에 클레이메이션 기법까지 동원했다. <조용한 가족>을 원전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영화를 빌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새로운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다. 이 영화는, 올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한국에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작성을 의심받으면서 때때로 ‘표절혐의’에 시달렸던 한국영화가, 오리지널리티의 경쟁력으로 서방의 영화계에서 다시 만들어진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줄리아 로버츠 또는 카메론 디아즈가 ‘엽기적인 그녀’가 되어 순정을 바치는 상대남자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는 헐리우드영화를 보게 되는 현실,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한쪽에서는 한국영화의 아이디어 빈곤, 소재 고갈, 특정 장르영화만의 편중 생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고가에 한국영화의 아이디어가 팔려나가고 있는 현실….

어쨌건 한국영화의 ‘상업적’ 경쟁력을 피부로 실감하게 된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