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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히치콕의 스릴러에서 코먼의 호러까지 <쾌락의 정원> <007 카지노 로얄> <로코와 그의 형제들>

<007 카지노 로얄>. 영화의 배경인 코모 호수. 가운데 남자는 대니얼 크레이그.

앨프리드 히치콕의 감독 데뷔작은 <쾌락의 정원>(1925)이다. 영화의 주 배경은 런던이지만, 데뷔작부터 히치콕은 이국정서를 자극하는 지리적 호기심을 숨기지 않는다. 알다시피 낯선 곳에 대한 열망은 히치콕 영화의 중요한 서사적 동기다. 데뷔작에서 강조된 장소가 이탈리아 북부의 코모 호수(Lago di Como)다. 밀라노에서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다. 영화는 ‘쾌락의 정원’이라는 카바레에서 일하는 두 여성 댄서 각자의 사랑 이야기다. 둘 가운데 상대적으로 선한 여성이 영악한 남자의 꾐에 빠져 신혼여행을 가는 곳이 바로 코모 호수다. 남성은 식민지 아프리카로의 전출을 앞두고 결혼을 서두르고, 여성은 그 계획을 사랑으로만 해석한다. 여성은 아름다운 꿈을 꾸듯 남자를 따라 호수로 향한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히치콕은 데뷔 때부터 스릴러를 잘 만들었다는 점이다.

히치콕, 코모 호수에서 데뷔작을 찍다

<쾌락의 정원>의 ‘코모 시퀀스’는 호수 주변에 있는 소도시 리에르나(Lierna)에서 주로 찍혔다. 산으로 둘러싸인 넓고 평화로운 호수 위로 연인들을 실은 조그만 배가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으로 코모 시퀀스가 시작된다. 햇병아리 감독은 당대의 스타인 미국 배우 버지니아 발리에게 주눅이 들어 말도 잘 건네지 못했는데, 당시 자신의 조감독이자 미래의 아내인 앨마 레빌의 도움으로 겨우 현지 촬영을 진행했다. 배우에겐 별다른 요구도 못하고, 장면을 찍을 때마다 조감독인 레빌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고 안심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히치콕, 서스펜스의 거장>, 패트릭 맥길리언 지음). 코모에서의 분위기는 두 연인의 미래를 충분히 암시하는 몇개의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히치콕이 이용한 방법은 대조법이다. 이를테면 여성이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마리아 앞에서 기도할 때, 남자는 호텔의 정원에서 ‘쾌락’만을 생각한다. 또는 여성이 현지의 아이들을 귀여워하자, 남자는 “저런 애들은 좀도둑이니 조심하라”고 쌀쌀맞게 맞받는다. 풍경화에 등장할 만한 맑고 넓은 호수와 그 주변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낙원이 되지 못하고, 이들의 미래를 나락 속으로 빠뜨릴 것만 같다(물은 영화의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다시 중요하게 등장할 것이다).

첫 영화답게 <쾌락의 정원>은 정신을 못 차리는 흥분 속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은 히치콕의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히치콕과 레빌은 1년 뒤인 1926년 결혼했고, 이들의 신혼여행지는 ‘당연하게도’ 코모 호수였다. 히치콕 부부는 결혼 이후에도 코모 호수를 자주 방문했다. 말하자면 그들의 사랑, 그들의 영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일 테다. 히치콕 부부는 특히 코모 호수의 체르노비오(Cernobbio)라는 소도시에 있는 ‘빌라 데스테’(Villa d’Este)에서 주로 머물렀는데, 이곳은 <쾌락의 정원>에서 두 연인이 신혼여행을 보낸 장소로 등장한다. 르네상스 때 건설된 이 빌라는 현재 세계적인 명품 호텔로 유명하다.

코모 호수는 밀라노에서 기차로 대략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로마 시대 때부터 귀족들의 휴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니, 지역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인지 호수 주변의 조그만 도시들에는 동화 속에나 등장할 만한 아름다운 빌라가 곳곳에 건설돼 있다. 최근엔 할리우드 스타들이 빌라를 사들이기 시작해, 여름이면 코모 주변은 스타들과 그들을 찍으려는 파파라치들로 종종 소동이 벌어지곤 한다. 조지 클루니, 대니얼 크레이그, 마돈나, 브래드 피트, 실베스터 스탤론 등이 코모 호수 주변에 자신들의 빌라를 갖고 있다.

<로코와 그의 형제들>. 오른쪽 연인은 레나토 살바토리와 애니 지라르도.

코모 호수의 ‘도둑들’

이들 가운데 조지 클루니와 대니얼 크레이그는 영화에서도 코모 호수를 배경으로 등장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트웰브>(2004)는 전편인 <오션스 일레븐>(2001)의 한탕 성공으로 잠시 기쁨을 즐기던 오션(조지 클루니)과 그의 일당이 위기를 맞는 데서 시작한다. 카지노의 주인(앤디 가르시아)이 이자까지 붙여 훔친 돈을 다 돌려줘야 한다고 협박하기 때문이다. 오션은 로마에서 ‘황금 계란’을 훔치기로 작전을 짠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보석을 둘러싸고 ‘밤 여우’(뱅상 카셀)라고 불리는 또 다른 최고급 도둑과 경쟁을 해야 하는 점이다. 영화의 결말부, 오션과 테스(줄리아 로버츠) 커플은 경쟁에서 이긴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여우’에게 찾아가 사실은 그가 패배자라는 점을 확인시켜줌으로써 뼈아픈 열등감을 안겨주는데, 그 장면은 코모 호수 주변에 있는 ‘빌라 에르바’(Villa Erba)에서 촬영됐다. ‘빌라 에르바’는 19세기 밀라노의 제약(製藥) 재벌인 에르바 집안의 여름 별장이다. <오션스 트웰브>의 시선을 냉소적으로 읽자면, 코모 호수 주변의 화려한 저택에는 세계 최고급의 도둑들이 주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오션스 트웰브>의 냉소적 시각은 <007 카지노 로얄>(2006)에서도 쓰인다.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가 카지노에서 테러 자금을 벌어들이는 악당(매즈 미켈슨)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게 이 영화의 주요 스토리다. 본드는 겨우 악당의 작업을 중지시키는데, 이후 복잡한 과정을 거쳐 카지노의 거금이 ‘미스터 화이트’라는 또 다른 악당의 수중으로 들어가버린다. 그 악당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돈을 다 차지했는데, 그가 사는 곳이 코모 호수 주변의 ‘빌라 가에타’(Villa Gaeta)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으로, 고딕 스타일의 좁고 높은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동화에 등장하는 신비한 기사가 살 법한 곳에 사실은 희대의 사기로 돈을 번 악당이 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오션스 트웰브>가 촬영된 ‘빌라 에르바’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외갓집이기도 했다(지금 이곳은 공공건물이다). 밀라노의 제약 재벌인 에르바 집안이 그의 모계다. 결국 그 저택은 비스콘티의 모친인 카를라 에르바가 상속받았고, 비스콘티는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다. 그때 비스콘티 집안은 경제•문화계의 인사들을 저택에 초대하여, 가족들이 준비한 조그만 공연을 보여주곤 했다. 주로 간단한 연주회 중심의 프로그램이었다. 비스콘티는 첼로를 연주했다. 그 공연의 무대를 준비한 일종의 연출자가 셋째 아들 루키노 비스콘티였다. 손님 중에 프랑스 디자이너 코코 사넬이 있었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게 감각적인 무대장치와 무대의상이었다. 물론 그것도 루키노 비스콘티가 만든 것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알려진 대로다. 코코 사넬이 비스콘티를 장 르누아르 감독에게 소개했고, 비스콘티는 무대와 의상 디자인에서 솜씨를 보이며 르누아르의 연출부에서 영화수업을 시작했다(재벌 집안의 가족 공연은 비스콘티의 ‘독일 3부작’의 첫 작품인 <저주받은 사람들>(1969)의 도입부 시퀀스에서 응용되기도 했다).

비스콘티가 밀라노 주변의 호수를 비켜갈 수는 없었을 테다.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에서 권투로 막 돈을 벌기 시작한 시모네(레나토 살바토리)가 연인 리디아(애니 지라르도)와 ‘과시적’인 데이트를 하는 곳이 코모 호수의 ‘벨라지오’(Bellagio)라는 도시다. 호수 주변의 유명한 도시들 가운데 밀라노와 가까워서 그런지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이다(이곳은 또 호수의 중심이라 선박으로 모든 곳을 손쉽게 갈 수 있다). 신인 권투 선수와 매춘부인 두 남녀, 곧 최하층의 연인이 마치 밀라노의 ‘멋쟁이들’인 척 멋을 내며 호수 주변을 거닐고 있다. 이곳엔 역시 아름다운 빌라, 호텔들이 줄지어 있고, 정원에선 상류층 사람들이 점잖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들에게 하층민 커플은 불편한 존재인지 웨이터가 와서 쫓아내려고 한다. 말하자면 시모네와 리디아에게 코모 호수 주변의 화려함은 그들도 즐기고 싶은 부의 상징이자, 신분상승이라는 욕망의 대상이다.

마조레 호수, 그리고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이탈리아식 코미디’의 거장 가운데 우리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대표적인 감독이 디노 리지다. 밀라노 출신으로 고아인 탓에 친척집에 얹혀살며 자란 뒤, 정신과 의사가 된 사뭇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의사 일은 금방 관두고, 당시의 노감독인 마리오 솔다티의 연출부에 들어가 영화감독으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식 코미디의 가장 큰 특징은 로맨스의 배경에 사회비판의 주제를 날카롭게 빚어내는 것인데, 유머와 비판적인 시각을 갖춘 디노 리지에겐 안성맞춤인 장르였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코모 호수를 배경으로 찍은 작품이 <어려운 인생>(1961)이다. 로마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던 청년(알베르토 소르디)은 파시즘 시절 레지스탕스에 참여한다. 겨우 살아남은 그는 해방 이후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저널리스트가 된다. 그가 일하는 신문사의 이름은 ‘노동자’다. 사회의 부패와 부정을 고발하는 탐사보도에 전념하던 그는 일부 상류층 인사들이 탈세를 목적으로 재산을 외국에 숨겨놓은 사실을 알아낸다. 청년은 특종의 기쁨에 흥분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명예훼손죄다. 신문사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레지스탕스는 곤경에 처하고, 파시스트의 후예들은 여전히 부귀를 누리는 ‘이상한’ 상황, 하지만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종종 목격되는 ‘어려운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레지스탕스 청년이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쫓겨 도망간 곳이 코모 호수 주변의 소도시 리에르나다. 히치콕이 데뷔작을 찍던 그곳이다. 청년의 몰골이 하도 불쌍하여 방앗간에 숨겨준 현지의 처녀(레아 마사리) 덕분에 레지스탕스는 목숨을 건진다. 전쟁 중이지만 여기서 코모 호수는 사랑이 싹트는 ‘정지된 시간’처럼 등장한다. 갈 곳을 잃은 레지스탕스와 처녀는 세상에 오직 자신들만 존재하는 듯 방앗간에 틀어박혀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을 나눈다.

<어려운 인생>에서 코모 호수는 청년이 기자로 일하는 로마와 대립적으로 제시됐다. 이를테면 두곳은 사랑과 일, 낭만과 현실, 감각과 이성, 물과 돌 등으로 대조된다. 코모 호수의 에로틱한 물은 로마의 딱딱한 돌과 대조되는 식이다.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은 로마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그 상처를 코모 호수에서 치유한다. 코모 호수는 어머니의 품처럼 방황하는 남자를 감싼다.

호수에 대한 <어려운 인생>의 감정, 곧 원초적인 고향에 되돌아온 것 같은 느낌은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호수, 곧 주인공이 국경을 넘는 곳은 ‘마조레 호수’(Lago Maggiore)다. 밀라노의 북쪽엔 세개의 호수가 나란히 있다.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코모 호수, 루가노 호수, 그리고 마조레 호수가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큰 호수가 마조레(큰 호수란 뜻)다. 소설의 연인들은 호수의 이탈리아쪽 도시인 스트레자(Stresa)에서 출발하여, 스위스의 국경도시인 브리사고(Brissago)로 넘어갔다. 대략 35km의 거리이고, 둘은 8시간 동안 노를 저었다. 스위스에 도착하자, 무섭게만 느껴졌던 호수도 다시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스위스에 도착한 걸 자축하기 위해 식당에 앉아, 호수의 물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다.

마조레 호수 주변에는 영화와 관련해 잊지 못할 도시가 하나 있다. 바로 스위스의 로카르노(Locarno)이다. 브리사고 바로 위쪽에 있다(약 10km 거리). 알다시피 이곳에선 1946년 이래 국제영화제가 매년 열린다. 로카르노는 좀 과장하자면 이탈리아나 다름없는 곳이다. 스위스에 독일어권, 프랑스어권, 그리고 이탈리아어권의 세 지역이 합쳐져 있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다. 로카르노가 있는 지역은 과거 밀라노의 시뇨리아(패권 가문)인 비스콘티 집안의 영지였다. 곧 이곳의 이탈리아 문화는 초기 르네상스 때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여기선 주로 이탈리아어로 말한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는 미래의 거장을 발굴하는 데 남다른 안목을 갖고 있다. 여기서 네오리얼리즘이 조명을 받았고, 자크 리베트, 마르코 벨로키오 등 당대에 숨겨진 작가들이 이 영화제를 통해 유명세를 얻었다. 최근의 대상 수상작, 곧 황금표범상 수상작만 봐도 로카르노국제영화제의 미래에 대한 안목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3년에는 2013년 알베르 세라의 <내 죽음의 이야기>, 2014년 라브 디아즈의 <과거의 것으로부터>, 그리고 2015년엔 홍상수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히치콕의 <쾌락의 정원>. 코모 호수 시퀀스.

로저 코먼, 호수에서 꿈을 꾸다

로저 코먼은 흔히 ‘미국 독립영화계의 교황’이라고 불린다. 1960년대에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소설을 각색한 저예산영화로 단숨에 자신의 명성을 알렸다. 포가 지금도 인기를 누리는 데는 코먼의 영화가 한몫했을 테다. <어셔가의 몰락>(1960), <생매장>(1962), <까마귀>(1963) 같은 포의 소설을 각색하고, 주로 빈센트 프라이스가 주연으로 나온 작품들을 사나흘 만에 후딱 제작하여 발표하곤 했다. 적은 돈으로 빨리 찍는 것은 로저 코먼의 특기다. 그렇지만 그의 유명한 말대로 “할리우드에서 1달러도 잃지 않고 100여편을 만든” 전설이 됐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제임스 카메론 같은 감독들, 그리고 피터 폰다, 잭 니콜슨 같은 숱한 배우들을 길러낸 멘토로서도 유명하다.

그의 영화는 주로 인공적인 느낌이 그대로 드러난 값싼 세트에서 촬영됐는데, 코먼의 팬들은 그런 ‘싸구려’ 느낌의 공간을 감독의 명예로운 낙인으로 받아들인다. 대충 종이로 만든 것 같은 지하실 세트에는, 엉성한 거미줄이 걸려 있고, 신경쇠약 직전의 빈센트 프라이스가 나와서 뭔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 코먼의 호러가 시작되는 것이다. 다산성을 자랑하던 코먼은 1970년대 들어 감독보다는 제작에 주로 매달렸다. 1971년 연출한 <폰 리히트호펜과 브라운>을 끝으로 감독 생활은 하지 않았다. 그런 뒤 약 20년 만에 새로운 연출작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그의 마지막 연출작으로 남아 있는 <프랑켄슈타인 언바운드>(Frankenstein Unbound, 1990)이다.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모티브를 딴 작품이다. 과학자 부캐넌 박사(존 허트)가 실험실 사고로 1817년 스위스로 되돌아간다. 그곳에서 부캐넌은 ‘유명한 괴물’을 만든 괴짜 과학자인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라울 훌리아)를 만난다. 괴물은 이미 실수로 사람을 죽였고, 또 언제 살인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과거의 스위스 장면이 일반적인 코먼 영화와 달리 싸구려 세트에서가 아니라 전부 현지 촬영으로 찍혔다. 넓고 평화로운 호수와 주변의 푸른 숲이 대단히 아름답게 묘사돼 있는데, 이곳이 바로 코모 호수다. 부캐넌은 흠모해 마지않던 작가 메리 셸리(브리짓 폰다)를 만나는 횡재까지 누린다. 시간은 아직 메리 셸리가 소설을 쓰기 전이다. 로저 코먼의 상상에 따르면 메리 셸리는 미래의 남편인 퍼시 비시 셸리는 물론, 바이런 경과도 사귀고 있고, 미래에서 도착한 부캐넌 박사에게도 호감을 보인다. 부캐넌에게는 호수에서의 모든 일이 마치 깨어나지 않으면 좋을 것 같은 꿈처럼 전개되는 것이다.

‘꿈같은 호수’의 모티브는 시드니 폴락의 멜로드라마 <보비 디어필드>(1977)에서도 보인다. 수작이라곤 못하겠지만 <보비 디어필드>에는 <추억>(1973),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 등에 잘 드러나 있는 시드니 폴락 특유의 나른한 정서가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다. 아마 주연인 알 파치노의 개성 덕도 봤을 테다. 포뮬러 원(F1) 카레이서인 보비(알 파치노)는 동료의 사고를 본 뒤, 죽음의 강박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한다. 스위스의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료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죽음을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는 신비한 여성인 릴리언(마르테 켈러)을 만난다. 그와 함께 코모 호수를 여행하며, 보비는 알 수 없는 사랑의 마법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호수는 희미한 안개에 싸여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의 신비한 마력은 계속 보비를 이탈리아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 언바운드> <보비 디어필드> 두 작품 모두 지나치게 아름다워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코모 호수의 분위기를 극의 모티브로 잘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엔 남쪽 이탈리아의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 나폴리로 가겠다. 절세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고향이다. 그곳이 어떤지는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기행>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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