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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아가씨>

영화가 시작되면 소녀들의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곧 골목을 점령한 일본군의 군홧발에 밟힌다. 이런 소리와 이미지 이후 주인공 숙희(김태리)가 우는 아기를 달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일제강점기의 가련한 소녀인가? 그럴 리가. 그녀는 다름 아닌 박찬욱 감독 영화의 주인공이다. 고아 숙희는 장물어미의 손에서 자랐으며 버려진 아기를 보살펴 일본으로 팔아넘기는 일을 하는 당찬 소녀다. 백작(하정우)은 그녀에게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넘겨받을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의 하녀로 들어가, 히데코가 백작과 사랑에 빠져 혼인하도록 꼬여주면 사례금과 함께 히데코 소유의 귀중품을 모두 주겠다는 거다. 밤이 되어서야 저택에 당도한 숙희는 자신의 방이 아가씨 방과 연결된 쪽방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한다. 실망도 잠시, 아가씨의 얼굴을 본 숙희는 깜짝 놀라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아니, 이렇게 예쁘다고 미리 말해줘야 할 것 아니야.’

이야기는 총 3부로 이뤄졌는데 각각의 부가 연결되는 방식이 단일하지 않다. 1부는 숙희를 중심으로, 2부는 히데코를 중심으로 구성해 어느 순간 1부와 2부의 시간대가 만난다. 3부는 2부에 이어져 그 이후를 다룬다. 1부와 2부가 만나는 구성이 필요했던 이유는 숙희와 아가씨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에게 사건의 이면을 알려주기 위한 것에 가깝다. 1부만 보면 숙희와 히데코가 서로를 속인 것처럼 보이지만, 2부에 이르러 관객은 스토리 밖의 관찰자가 아닌 반전을 위해 설계된 이야기의 참여자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마지막 3부는 속은 관객의 대역으로 백작 혹은 코우즈키를 내세운 보너스 트랙이다. 1860년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성 로맨스 소설 <핑거스미스>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으로 옮겨온 감독은, 소설을 차용하면서 영국과 일본을 혼합하게 된 시나리오 단계의 작업방식을 영국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공간 속에 새겨넣는다. 활자가 상상으로, 상상이 이미지로 구현되는 영화 제작 과정은 영화의 내용과 긴밀히 연결된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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