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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국화꽃 향기> 박해일에 반하다
공명(영화배우) 2016-06-08

공명의 <국화꽃 향기>

공명 배우(<수색역>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국화꽃 향기>

<국화꽃 향기>(2008)를 처음 본 건 3~4년 전이었던 것 같다. 부상으로 오랫동안 해온 운동을 포기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던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의 권유로 다니게 된 모델 학원에서 연기 수업을 듣던 중 영화 <국화꽃 향기>를 만났다.

영화는 지하철 장면에서 시작한다. 몇번을 봐도, 볼 때마다 설레는 장면이다. 희재(장진영)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려 할 때 동전이 굴러가 인하(박해일)의 신발에 딱 걸리고, 인하가 그 동전을 줍고 동전의 주인인 희재가 동전을 돌려받고 지나가는 모습.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던 그 잔잔한 장면이 정말 좋았다. 그 장면에서 풋풋한 대학생을 연기한 박해일과 꾸밈없는 장진영에게 반하면서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됐다.

박해일이 연기했던 인하는 지고지순하고 순정적인 사랑을 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희재가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그리고 희재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짝사랑을 이어가는 인하의 모습이다. 희재에 관한 안 좋은 소식을 들은 인하가 “원래 내 사람인데 나 혼자 고백하고 포기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사람을 정말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자책하는 장면은 가슴이 아려오면서도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었다. 나에겐 아직 이런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가슴이 절절하고 아팠다.

천천히 영화를 보다 보면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다. 인하가 희재를 구하고 나서 밤새 간호를 한 뒤 희재가 깨어나자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후배 주제에 사랑한다고 하면… 그것도 웃을 거예요?” 소속사 판타지오에 들어오기 전 나는 이 대사로 오디션을 봤다. 인하의 고백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인하의 용기와 진실함이 느껴졌다.

나는 어떤 인터뷰를 하든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박해일 선배님’이라고 답한다. <국화꽃 향기>를 봤을 때가 열아홉살 때였다. 열아홉이면 어린 나이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를 수도 있는 나이다. 그리고 실제로 아직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 <국화꽃 향기>는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뭔지 모를 먹먹함과 행복함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고, 박해일이라는 배우에게 빠지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때 결심했다. 나도 배우가 돼서 사람들에게 내가 느꼈던 감동을 돌려주고 싶다고. 부모님의 권유로 학원을 다니고, 연기 수업을 받던 나였지만 <국화꽃 향기>를 통해 연기에 더욱 흥미를 느꼈고 배우로서 성장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국화꽃 향기>는 나에게 배우의 꿈을 만들어준 감사한 영화다. 이 글을 쓰면서 영화를 다시 보니 고등학생 시절 생경한 감정으로 수도 없이 영화를 돌려보며 느꼈던 그때의 기분과 장면들이 생각난다. 연기에 대한 열정을 키웠던 그 순간들을 생각하니 또다시 설렌다.

이 글을 다 쓴 뒤에 다시 영화를 돌려보면 그땐 또 다른 느낌과 감정들이 생기겠지. <국화꽃 향기> 속 인하와 희재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아직도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물 흐르듯 흘러간 두 사람의 이야기는 내게 소중한 추억이자 꿈, 앞으로 계속해서 연기를 배워나가게 될 내 평생의 동력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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