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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을 거부하고 한곳에 모인 소녀들 <소녀와 여자>
정지혜 2016-06-15

<소녀와 여자>는 아프리카의 여성할례 혹은 여성성기절제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한국인들에게는 한 다리 건너 남의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만큼 시의적절한 이슈도 없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협적인 상황에 노출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 여성들의 현실을 살피는 것과 여성에 대한 고착된 성역할이 부른 여성성기절제를 들여다보는 건 일맥상통한다. 아프리카에서는 12월이면 여성성기절제가 관행처럼 행해진다. 전통적, 종교적 이유로 이를 긍정하는 쪽에서는 여성할례라 한다. 하지만 여성 신체를 훼손하는 이런 전통에 반대하는 쪽은 여성성기절제라는 용어를 쓴다. 영화는 일단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보자는 입장이다. 여성할례 지지자들은 소녀들이 어른 ‘여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겪어야 할 통과의례로 할례를 말한다. 할례하지 않은 소녀는 언제까지고 아이처럼 행동한다, 결혼을 하려면 할례를 해야 한다, 할례한 여성만이 남편이 집을 비워도 남편이 신뢰할 만한 정숙한 여성일 수 있다는 논리다. 가부장적 질서를 공고히 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유들이다. 이미 할례를 한 성인 여성들도 그들의 딸들이 전통을 잇기를 바란다고 한다. 관습이란 쉽게 변하기 어려운 속성의 것임을 확인시킨다.

다른 한편에는 여성성기절제에 반대하는 소녀들, NGO, 정부 기관이 있다. 카메라는 공동체가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한 관습을 거부하고 집을 떠나온 소녀들이 모인 여성성기절제 반대 캠프로 간다.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소녀들은 신체에 메스를 대지 않는다고 해서 전통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고 또 배운다. 영화가 할례냐, 여성성기절제냐에 따른 입장의 차이들을 번갈아가며 담아내는 사이 관객은 소녀들이 맞닥뜨린 고통스러운 현실을 목격한다. 영화는 여성성기절제가 행해지는 끔찍한 순간이나 두려움에 떠는 소녀들의 눈물을 담는 데는 관심이 없다. 어느덧 일상이 돼버린 관습이 어떻게 그녀들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 <안녕?! 오케스트라>(2013) 등을 프로듀싱한 김효정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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