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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장르의 경계 너머' 제15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락아웃>

제15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장르의 상상력展’이 6월23일(목)부터 30일(목)까지 8일간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열린다. 올해의 가장 큰 변화는 사회, 멜로, 코미디, 공포, 액션 등 크게 다섯 장르로 구분하던 기존의 카테고리에 ‘식스 센스’ 부문이 추가된 점이다. ‘식스 센스’ 부문은 다섯 부문 중 어느 장르로도 규정되지 않거나 여러 장르를 포용하는 혼종적인 작품을 위한 필드다. 슬로건 ‘Beyond the barrier of genres’에서 드러나듯 영화제가 장르를 구분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장르의 경계 너머를 지향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식스 센스’ 부문은 영화제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부문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 <수고대> <White Island> 등을 비롯해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새로운 장르의 틀에서 소개된다.

초청부문에는 김태용 감독 단편 특별전이 마련된다. 민규동 감독과 공동 연출한 데뷔작 <열일곱>과 <창백한 푸른 점>부터 최근작인 <그녀의 전설>까지 7편의 단편과 그가 참여한 영화제 트레일러 영상 5편 등 12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여성감독 특별전에는 4회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김선민의 <가리베가스>, 10회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수상작인 양현아 감독의 <약속> 등 13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영화제 역대 상영작 중 미장센이 두드러진 작품을 선별해 다시 보는 ‘미쟝센의 미장센’ 부문 역시 주목된다. 경쟁부문 상영작 63편 중 7편의 추천작을 소개한다.

<안내견> 김주환 / HD / 2016년 / 비정성시

안내견이라는 제목에서 필시 이 영화는 장애인을 그린 영화일 거라 짐작된다. 예상과는 달리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여느 노숙인이 겪을 법한 익숙한 밤풍경이다. 불 꺼진 지하철역 계단 아래에서 잠을 청하는데 그 자리가 다른 사람의 구역이었고 결국 한밤중에 내쫓기고 마는 그런 상황 말이다. 남자는 개장수에게 개를 팔아 돈을 벌 요량으로 유기견 보호소에서 덩치가 큰 개 한 마리를 훔치는데 그 개가 하필 안내견이다. 덩치가 있으니 못해도 40만원 정도는 받겠다는 짐작과는 달리, 가게 주인은 10만원을 부른다. 덩치만 컸지 먹을 부분은 별로 없단다. 남자에게 안내견은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개이고 안내견에게 남자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데다 먹을 것을 줄 수 없는 쓸모없는 주인이다. 남자는 편의점 직원이 개에게 한눈을 판 사이 땅콩잼을 훔쳐 나온다. 이것을 개와 나눠 먹다가 개가 기절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둘의 관계는 급변한다. 노숙인 중에서도 말단에 있는 조선족 노숙인과 고급 안내견 골든 리트리버의 조합을 통해 남자와 개를 서로의 일차원적 메타포로 남겨두지 않고, 조선족에 대한 이해의 다른 길을 제시한다.

<락아웃> 현조 / HD / 2015년 / 4만번의 구타

영화는 멜로드라마적 상황을 일부러 가정하면서 출발한다. 그러나 우연한 만남이 깊숙한 구렁텅이로 변하는 것은 사랑에 빠졌을 때만이 아니다. 열쇠수리공 남자가 잠긴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낡은 집을 방문한다. 요청자인 여자는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그녀는 수리비만 내고는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얼빠진 채 남겨진 수리공이 손잡이 위에 홍보 스티커를 붙이고 떠나려는 사이, 여자가 문을 열고 수리공에게 집으로 잠시 들어와 달라 한다. 그러고는 궤짝을 가리키며 저것도 열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남자는 곧 그녀가 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건의 바깥에 있던 사람이 내부자가 되는 것은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는 것처럼 간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건의 증인이 되기 위해 스스로 사건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은 잠복한 피해에 노출된 여성들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대변한다. 영화는 열쇠수리공이 사건의 내부에 깊숙이 잠입할수록 관객 역시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안과 밖의 얄팍한 경계에 대한 질문이 담긴 작품.

<내앞>

<내앞> 김인근 / HD / 2015년 / 식스 센스

1910년 안동을 배경으로 마을 주민들의 항일운동을 그린 영화다. 일단 전기영화로 분류되지만, 텍스트와 연기로 이뤄진 재연 드라마를 보는 느낌도 든다. 항일운동과 이를 둘러싼 주민들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음에도 영화에는 자극적인 묘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고문 장면은 바위 위에 엎드려 누운 남자의 상반신과 그 위에 횃불을 든 손으로 암시적으로만 표현된다. 영화에서 드러난 가장 적극적인 저항 방식은 왜놈의 땅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임신부와 함께 온 가족이 마을을 떠나 서간도로 향하는 결기, 혹은 곡기를 끊는 단식 등 비폭력적 저항 행위로 드러난다. 영화 속 말없는 저항의 방식처럼 영화적으로도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절제된 표현이 돋보인다.

<연애경험> 오성호 / HD / 2016년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금속공장 경리인 29살 김미애는 연애가 하고 싶다’가 이 영화의 시놉시스 전부다. 그러나 막상 영화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연애하고 싶은 미애가 아니라 미애를 둘러싼 편견들이다. 사람들은 미애가 당연히 연애하고 있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모태솔로일 거라고 판단해버린다. 미애의 ‘연애하고 싶다’는 욕망은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으로 인해 ‘연애를 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으로 뒤바뀌어버린다.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왜 연애를 못할까’라는 자책과 고민에 빠지게 된 미애는 이런 생각 때문에 오히려 연애와 점점 더 멀어진다. 그녀가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나름대로 채팅을 통해 연하의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독서모임에도 가입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독서모임 사람들은 미애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부문을 잘못 설정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상황과 대사가 웃음을 안기는데, 상황을 타개할 출구가 없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라는 편견에 맞서 스스로를 바꾸지 않고도, 미애는 자신과 화해할 수 있을까.

<누구의 아이가 울고 있나>

<누구의 아이가 울고 있나> 전우성 / HD / 2015년 / 절대악몽

임신과 낙태를 둘러싼 이야기는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고, 더 말해야 할 문제다. 낙태를 반대한다는 윤리적인 잣대에 맞서 여성 개개인의 신체와 기억에 각인된 경험을 드러내려는 영화적 시도가 있어 왔다. 이때 초점이 여성의 몸과 신체에 있다 보니 임신과 낙태를 둘러싼 남성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이들의 경험은 사건의 내부와 외부 그 어딘가에서 무책임한 가해자로 표현되곤 한다. 이 영화는 마치 남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남성의 시각에서 임신과 출산을 본다. 규만은 동거 중인 여자친구 인희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희는 규만과 상의 없이 낙태를 결정한다. 인희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규만은 임신한 사람만 보면 귓가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상징적인 표현은 어쩌면 남성의 입장에서 임신이 어떻게 체험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에게 임신은 여자 친구의 부푼 배를 보는 시각적인 체험과 배에 귀를 댈 때 느껴지는 청각적인 체험 등 여성을 매개한 간접적인 체험이다. 영화는 이러한 체험을 상상적으로 재구성하고, 이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그리면서 파트너의 임신을 마주한 남성이 느끼는 소외와 죄의식을 드러낸다.

<송곳니>

<송곳니> 신종훈 / HD / 2015년 / 희극지왕

송곳니는 뱀파이어 장르에 대한 유쾌한 비틀기를 시도하는 작품이다. 100년 동안 관 속에서 잠든 채로 바다를 흐르고 흐르던 흡혈귀 이사벨이 마침내 한국의 어촌에 도착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낚시꾼을 발견한 이사벨은 그에게 달려들어 전력으로 목을 깨무는데 어쩐 일인지 피는 빨리지 않고 남자의 목에는 그저 물린 자국만 선명하다. 의아한 생각에 자신의 팔을 힘껏 깨물어본 이사벨은 그제야 자신의 송곳니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됐음을 깨닫는다. 영화에는 젊은이들이 떠나간 어촌 마을, 오프닝 시퀀스에 뉴스 음성으로 보도되는 자살공화국 한국 등 한국의 현실 속에 비현실적인 인물인 이사벨을 이식하면서 오는 그로테스크함이 있다. 먹잇감을 찾지 못해 자신의 손목을 베어 피를 빠는 이사벨의 상황은 영화의 밑바탕에 깔린 자학(또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사연과 겹친다. 뱀파이어물을 코믹하게 옮겨오되 그 속에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을 녹여낸 작품이다.

<빈 방> 정다희 / D-Cinema / 2016년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창문으로 햇살이 비치는 이른 아침. 이불보를 걷어내면 그 속에 잠에서 깨어난 ‘나’의 나신이 보인다. 이어 ‘나’의 신체 사이 갈라진 선은 방의 모서리가 된다. 신체가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여성 주체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남성의 음성과 겹치더니 이내 남성의 음성에 자리를 내어준다. 이 애니메이션은 사람이 남기고 간 기억 속의 흔적, 자국을 신체와 신체로부터 이어진 공간 속에 남아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상상한다. 점과 선, 음영 등 최소한의 것으로 입체가 평면으로, 평면이 다시 입체로 변하는 양상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감독의 공간 활용 능력이 돋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표현력에, 이를 감싸는 따뜻한 터치가 어우러진 이 작품은 사랑 이후에 남은 사랑, 존재 이후에 남은 존재의 모양을 더듬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