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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관계 분해하기 <데몰리션>
허지웅(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민소원(일러스트레이션) 2016-07-11

아버지는 감독이고 어머니는 각본을 썼다. 누나는 배우다. 대부는 저 위대한 폴 뉴먼이고 대모는 비명의 여신 제이미 리 커티스다. 그 자신은 히스 레저의 딸인 마틸다의 대부다. 민주당원이다. 토비 맥과이어가 <씨비스킷>을 찍다가 허리를 다치고 <스파이더맨2>에서 하차하게 되었을 때 피터 파커 역할을 대신 하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건 <도니 다코>에서였다. 몇번을 돌려 봤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본 훌륭한 영화였다. 당시 그를 보며 너는 지구에서 애늙은이 역할을 가장 잘 연기하는 배우다, 라고 생각했다. 놀란 건 <투모로우>에서였다. 이 빤한 영화에 혼자 열심히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보다 한살밖에 어리지 않은데 2004년도 영화에서 고등학생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제이크 질렌홀 이야기다.

잘 관리된 필모그래피

제이크 질렌홀은 무척 잘생긴 배우다. 속눈썹은 우리 집 빗자루로 써도 괜찮을 것 같고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은 잘 뱉지 않을 것 같은 크기의 입술을 가졌으며 적당히 좁은 미간은 이 사람의 집중력에 돈을 걸어도 괜찮겠다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빤하게 잘생긴 배우의 길을 걷지 않았다. 필모그래피 관리가 잘된 배우다. 인디영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그가 인디영화 작업을 일종의 셀러브리티 면피용 트로피 정도로 느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영화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배우 함량을 시험해보기 좋은 장르영화에 많이 참여했다.

누군가 제이크 질렌홀의 필모그래피를 관찰하다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잘생긴 배우가 왜 로맨스영화를 많이 찍지 않았을까? 무슨 소리, 그건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올리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저 그런 로맨스영화 천편에 맞먹는 박력을 가진 영화다.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홀)는 비명에 갔어도 그의 데님 셔츠와 에니스 델마(히스 레저)의 젖은 눈빛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아이 스웨어.

그의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는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무언가, 별점은 몇개, 이 따위 질문이나 작업에 곤란을 느껴왔다. 그러나 제이크 질렌홀이 나온 영화 가운데 단 한편만 다시 보는 게 허락된다면 답변이 좀 쉬워진다. 나는 두번 생각하지 않고 <조디악>을 볼 거다.

연출과 촬영, 이야기의 짜임새, 주역부터 단역에 이르기까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조율된 연기 톤, 일생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 굉장한 상찬 같은 영화인 <조디악>에서 제이크 질렌홀은 주인공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를 연기했다. <조디악>에서 배우로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건 마크 러팔로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다. 그러나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야만 하는가?’라는 관객의 질문과 <조디악>이라는 이야기의 목적에 합당한 답을 안겨주는 건 제이크 질렌홀의 연기다. 이 보이스카우트 같은 인물은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 그와 눈을 맞춰봐야만 자기 인생이 낭비되지 않았음에 안도할 수 있는 것이다.

보기 드물게 솔직한 주인공

제이크 질렌홀의 신작 <데몰리션>은 흥미로운 영화다. 일단 준수한 웰메이드 무비다. 만듦새가 도발적이지 않되 깔끔하기 짝이 없다. 누가 보더라도 아 참 잘 만들었다, 이쯤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마무리되겠구나, 하고 마음 푹 놓고 무장해제할 수 있게 만든다. 다만 이 이야기가 관객의 저마다 다른 삶과 만났을 때 자아내는 감회란 결코 빤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무언가를 자꾸 돌아보게 만든다.

주인공은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한다. 주인공은 살아남았지만 아내가 죽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인공은 도무지 슬픔을 느낄 수 없다. 아내의 죽음보다는 병원의 자판기가 돈을 먹고 초콜릿을 뱉어내지 않은 것에 더 문제의식을 느낀다. 장례식장에서도 슬픈 표정을 지어보려고 거울 앞에서 노력해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며 그저 충격이 커서 그렇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그는 정말 슬프지 않은 것이다. 이후부터 주인공의 행동이 좀 이상해진다. 그는 주변의 물건들을 분해해보기 시작한다. 그의 논리를 따르자면 ‘무언가를 고치기 위해서는 일단 전부 분해한 다음 뭐가 중요한지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주인공은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 앞으로 자기 심정이나 근황을 편지에 써보내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슬프지 않은 이유는 아내의 죽음 이전에 그들의 관계가 이미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관계가 끝난 상태에서 관계가 지속되다가 아내의 죽음으로 물리적인 관계가 끝이 났다. 그러자 비로소 이 관계가 이미 예전에 끝나 있었다는 걸 실감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그들의 관계가 틀어지고 잘못되어 끝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씩 주변의 물건들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수사적인 의미의 분해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물건을 분해한다. 큰 틀에서 볼 때, 그는 그의 결혼을 분해하고 있다. 다 분해하고 나면 대체 뭐가 잘못되었던 건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인공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보기 드물게 솔직하다. 대개 사람은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 때 학습된 대로 행동한다. 슬픈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기쁜 일이 생기면 저렇게 한다. 그렇게 행동하는 게 타인의 감정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상황을 빠르게 무마하기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학습된 대로 행동하지 않고 자기 기분이 왜 이런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찾아내길 바라고 또 끝내 규명해낸다. 그에 따르는 수많은 타인들의 오해와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말이다. 소란이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 건 주인공의 용기와 끈기 덕분이다.

영화 <데몰리션>이 즐거운 또 하나의 이유는 크리스 쿠퍼와 제이크 질렌홀이 다시 만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묘하게 궁합이 잘 맞는다. <옥토버 스카이>에서는 서로 마음이 잘 맞지 않는 아버지와 아들로 분했고, 여기서는 역시 마음이 맞지 않는 장인과 사위를 연기했다. 실제 크리스 쿠퍼는 제이크 질렌홀의 멘토이기도 하다. <옥토버 스카이> <자헤드> <데몰리션>같이 크리스 쿠퍼와 제이크 질렌홀이 함께 나오는 영화에서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반드시 저 둘의 대화 안에서 나온다(주로 크리스 쿠퍼가 격분해 있는 상황. 그는 왜 영화에서 늘 화가 나 있는가). 그에 유의해서 영화들을 다시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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