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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포스트 4·16 시대의 충무로, 우연은 없다
주성철 2016-08-26

현실의 재난과 한국영화를 겹쳐 본 첫 번째 기억은 정윤철 감독의 단편 <기념촬영>(1997)이었다. 1997년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송일곤 감독의 <간과 감자>와 더불어 최우수상을 공동수상한 <기념촬영>은 1994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건이 있던 바로 그날 단짝을 잃어버렸던 대학생 수진이 세월이 흘러 지하철역에서 과거의 기억과 맞닥뜨린다. 오래전 아침, 깔깔거리고 웃으며 등교하던 친구들, 하지만 미처 준비물을 챙기지 못했던 수진은 친구 소연을 먼저 버스에 태워 보냈다. 그리고 그 버스는 바로 그 시간에 성수대교를 지났다. 살아남은 수진은 기억 속에서 친구를 그리워하며 그의 영혼을 달래주려고 한다. 영화는 사고를 떠올리는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좇아가는 빠르고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사회적 살인’이 벌어진 그날 아침 이후, 망각의 시간을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그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과연 그로부터 달라지고 나아진 세상에서 살고 있나.

이번 1070호 특집은 ‘포스트 세월호’ 시대의 충무로라고 해야 할까. 이른바 ‘포스트 9·11’이라는 이름으로 할리우드영화를 바라보던 시선을 가져왔다.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송형국 평론가는 “2014년 4월16일 이후 모든 한국인은 바뀌었다. 1998년 IMF 사태가 한국 사람들의 물적 토대를 송두리째 틀어놓았다면 세월호는 우리의 마음을 바꿨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한국 대중영화에 녹아들고 있다. 조정래 감독의 <귀향>에서 씻김굿이 펼쳐지는 양평 두물머리의 경우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으로 인해 진도 팽목항을 떠올리게 했는데, 조정래 감독 또한 그와 무관하게 기획된 영화임에도 그러한 유사점에 놀랐다고 했다. 기어이 딸을 구해내려는 <곡성>의 종구(곽도원)를 보면서 ‘유민 아빠’를 떠올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산을 헤매다 마지막에 발 딛고 서는 막다른 낭떠러지 또한 산과 바다의 차이는 있을 뿐,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세상과 뭍의 경계처럼 다가온 것이다. <부산행>과 <터널>이 더욱 직접적으로 환기하고 있는, 그런 불행을 초래한 원인과도 같은 이 사회의 시스템 부재 문제는 더 말해서 무얼 할까. 송형국 평론가는 힘겹게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런 곳에서, 이 시점에서, 재난영화가 만들어지고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은 어떤 뜻을 지니는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 재난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현상과 의도를 포함하는가.”

물론 정리하기 좋아하는 평론가나 명명하기 좋아하는 저널의 접근법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고종의 자녀들이 일본으로 (강제로) 건너가 고초를 겪고 있을 때(<덕혜옹주>), 일반 여성들은 위안부로 끌려가 끔찍한 수난을 당하고(<귀향>), 항일운동에 가담한 시인은 일본 생체실험의 희생자가 된다(<동주>)”고 특집 원고 중 김경욱 평론가가 올해 한국영화를 정리한 대목을 보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거기에는 이미 개봉한 <해어화>와 <아가씨>를 더해 추석 때 개봉하는 <밀정>까지, 일제강점기 영화들이 상당수 기획되었던 지난해를 떠올리게 했다. 문득 서로 다른 여러 사건들이 등장하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의 도입부가 떠올랐다. “이 모든 게 우연으로 생긴 게 아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늘 일어나고 있고,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어쨌건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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