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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액트 오브 리빙 - <나의 연기 워크샵> 안선경 감독
김혜리 사진 오계옥 2016-10-24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감독상

부산국제영화제 폐막 사흘 뒤, 볕이 좋은 서울 혜화동 한 카페에서 안선경 감독과 마주 앉았다. <나의 연기 워크샵>에서 경(서원경)과 은(김강은)이 가족사를 서로에게 들려주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이기도 하다. 카페 문을 열고 모퉁이를 돌면, 극중 연기수업이 진행된 장소인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게릴라 극장도 보인다. 그처럼 <나의 연기 워크샵>은 허구와 현실이 벽이 아닌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휘장으로 구획되는 영화다. 극중 연기 워크숍은 영화를 위한 구성물이 아니라, 2011년부터 안선경 감독이 실제로 운영해온 영화연기 교실이다. 영화 속 연기수업은 워크숍 경험의 극화라기보다 그 자체로 온전한 1기분의 커리큘럼이다. 이관헌, 김강은, 서원경 배우는 워크숍 학생으로서 영화에 참여했고 감독의 전작 <파스카>(2013)의 주연 성호준은 촬영 5개월 전 합류했다. 단, 교사 역은 안선경 감독 대신 전작 <파스카>의 주연인 김소희 배우가 맡았다. 말하자면 영화 촬영과정이 곧 초청강사의 특강이었던 셈이다. 연희단 거리패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감독과 김소희 배우는 원래 연기론이 호응하는 부분이 많아 조화롭게 극중 수업 내용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교감이란 널 완전히 맡겨버리는 것이 아니야. 상대를 완전히 믿으면서도 네가 완전히 있어야 교감할 수 있어.” “연기는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살짝 감정을 들켜주는 일이야. 그런데 너는 들키지 않는 기술을 너무 많이 갖고 있어.” 지망생들에게 그녀가 들려주는 통찰들은, 허겁지겁 받아 적고 싶을 지경이다. 김소희는 다큐멘터리적 외양을 한 이 영화에서 연기의 요정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김소희 배우가 연기하는 배우 미래는 특정 캐릭터라기보다 네 주인공에게 맞춰 거울처럼 계속 변하는 최적의 대화자다.” 한편 배우의 실명 끝자를 이름으로 따온 4인조는, 배우를 모델로 삼되 그들 안의 어떤 부분만을 이용한 캐릭터들이다. 부연하고 보니, 모든 연기가 그런 작업이긴 하다.

짐작할 수 있듯, <나의 연기 워크샵>의 시나리오 작업 과정은 독특하다. 2014년 워크숍에 참여한 이관헌 배우를 만난 후 아이디어를 떠올린 안선경 감독은 먼저 극영화를 위한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 역량이 원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위적인 픽션을 찍다가는 그들이 지닌 최고의 힘인 고유한 생기만 훼손되리라는 판단에 이르렀고, 대신 학생들이 연기수업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찍으며 거기에 따라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영화의 각 챕터가 커리큘럼 형식을 취하게 된 까닭이다. 수업의 내용과 에피소드를 토대로 시퀀스 단위의 흐름만 잡은 시나리오는 빈 잔에 가까웠고, 현장에서 비로소 채워졌다. “미리 뭔가를 주면 감정이 깨지기 쉬운 반면, 잘 건드리면 아주 맑은 소리가 나는 배우들이니 그래야 했다. 마치 크리스털 넷을 다루고 있는 기분이었다. 연기를 해야 하는데 어느새 동굴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웃음)”

비전부문의 한국영화 가운데 <나의 연기 워크샵>이 상대적으로 돋보였던 지점도 각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 그리고 그 감정을 카메라의 시선으로 변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부산에서 일부 관객이, 경험 없는 배우들을 지나치게 정신적으로 몰아붙인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안선경 감독은 자신 있게 고개 저을 수 있었다. “영화에 들어가기 오래전부터 꾸준히 교감하며 만들어갔기 때문에, 배우들이 갑자기 낯선 곳에 내던져진 상황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가슴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사람들이 좋은 상태로 대화를 나누게 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과연 <나의 연기 워크샵>의 네 주인공이 둘러앉아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한국영화 속 남자와 여자의 대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종류다. 의무감으로 남의 말을 빌려쓰지도 않고 회피하지도 않는다. 솔직하되 감상적이지 않고 서로의 안전거리를 지켜주려고 애쓴다.

안선경 감독은 본인이 하고자 하는 영화가 투자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안 후, ‘내가 만들려는 영화는 내가 구원할 수밖에 없다’는 결심으로 오늘까지 걸어왔다. 모든 것을 최소화해서 삶의 에너지만으로 승부를 보자는 해결책을 실천한 것이 <파스카>였고 두 번째가 <나의 연기 워크샵>이었다.“한 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앞에 땅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내딛는 길이었기 때문에 완성해낸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에게 더욱 큰 만족은 젊은 배우들이 영화를 만들고 영화제를 경험하면서 드러낸 변화다. 연기 수업은, 직업배우가 되기 위한 절차일 뿐 아니라 더 해방된 마음으로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한 학습이기도 하니까. “다들 작업에 대해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고 에너지도 높아졌다. 다른 영화인들과 만나면서 공감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커졌다.” 한편의 영화로부터 누가 감히 이보다 큰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

<나의 연기 워크샵>은 어떤 영화

2인4역의 연극 <사중주>를 보고 연기 워크숍에 지원한 헌, 은, 준, 경은 한달 동안 신체의 긴장을 푸는 기본 훈련부터 장면을 창조하는 단계까지, 배우 미래로부터 수업을 받는다. 헌은 내향적이고 준은 도전적이며 은은 경계에서 흔들린다. 경은 강하고 담담하다. 미래는 네 젊은이가 연기를 하기 위해 넘어서야 할 억압을 파악해 각각에게 조언한다. 수강생들에게 주어진 최종 과제는 ‘현’이라는 인물의 일기를 통해 자신이 해석한 현을 연기하는 것이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캐릭터

‘헌-은-준-경.’ 안선경 감독이 <나의 연기 워크샵>을 만들며 머릿속에 그린 벤다이어그램이다. 4인조 중 제1주인공으로서 영화를 열고 닫는 헌은, 가장 내면에 웅크린 인물이다. 반면 준은 오디션을 찾아다니고 사람을 만나는 거리의 인물이다. 은이 헌과 준 사이에 자리한다. 그녀에게는 유년으로 회귀하려는 욕망이 있지만 밖으로 끌어내줄 손을 기다리고 있다. 안선경 감독은 헌의 결핍을 사막에, 은의 그것을 조금만 누르면 물을 쏟아낼 것 같은 상태에 비한다. 이 서클의 외곽에 생활력 강한 경이 있다. 인물의 성정과 그들이 워크숍에서 보여주는 극중극 연기를 견주어보는 것도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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